<우함칼럼> 이 시대의 ‘백년손님’은 ?
| 2011. 02.01(화) 1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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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시대의 ‘백년손님’은 누구인가. 며느리다. 아들을 결혼시켜본 시어머니라면 쉽게 동의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시어머니도 시대흐름에 따라야 한다기에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려고 애써보지만 며느리는 한사코 ‘아니올시다 ’ 이다. ‘시(媤)’자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느낀다니 어쩔 것인가.
며칠 전 ‘쿨한 시어머니’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다. “얘야, 음식 다 해놨으니 천천히 오너라.”라는 말은 쿨한 시어머니 축에 못 낀다. ‘다 해놨다’는 그 말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정답은 ‘음식 사다가 먹기로 했으니 걱정 말고 오라’고 하는 것이 ‘며느님’을 배려하는 것 이란다. 시어머니 노릇하기 참 어렵다.
집집마다 가풍이라는 것이 있다. 음식도 집마다 특별한 것이 한가지라도 있기 마련이다. 자식들은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그 맛을 느끼기 위해 꾸역꾸역 고향으로 내려오는데 ‘백화점 음식’으로 명절을 쇠야 한다니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이러다보니 이 시대 시어미들은 ‘달 무섬증’을 앓을 수 밖에 없다. 이른바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증상은 이렇다. 며느리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지냈기에 가슴이 답답해오고 아무렇게나 자란 아이들이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환청이 들린다는 것이다.
‘달 무섬증’ 또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은 대게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늙은이 냄새난다고 타박할까봐 이불빨래 하고 그릇 닦기부터 냉장고청소까지 하고 나면 삭신이 쑤셔댄다. 명절을 쇠러 오는 것이 아니라 소풍 왔다가 가듯 휑하니 떠나버려 일감만 쌓였다. 이것저것 준비했더니 ‘냉장고에서 썩혀버릴 것을 왜 주느냐“며 그냥 가버리면 음식 치다꺼리가 큰 걱정이다. 오죽했으면 ‘오는 자식 반갑지만 가는 자식 더 반갑다’는 말이 생겼을 것인가.
역(逆) 상경을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달랑달랑 선물 몇 가지 들고 내려오는 자식들의 행차와는 달리 손수 반찬통 몇 개라도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 냄새나는 것을 하나씩 챙기다보면 보따리가 커지고 군내버스와 고속버스를 번갈아 타다보니 부부간에 티격태격 할 수 밖에. 명절 뒤 끝에 부부싸움이 많다지만 늙은 부부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위로는 노(老) 시어머니, 아래로는 며느리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낀 시어머니‘ 들의 아픔이다. 옛날방식을 따르자니 며느리 눈치 보이고 며느리편을 들자니 집안이 시끄럽고…
그래도 힘이 남아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일런지 모른다. 직장생활을 한답시고 아이를 맡길 때는 가끔 드나들더니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발걸음이 멀어졌다. 논밭을 팔아 유학을 보내줬더니 아예 이민을 떠나버려 명절에도 자식 얼굴조차 못보고 지내는 부모도 있다. 자존심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자식들과 올망졸망 살아가는 친구네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등 굽은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더니 꼭 그런 꼴이다.
물론 극히 일부의 얘기일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구분하지 않고 사는 며느리들도 많다고 들린다. 그러나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목격한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며느리들은 ‘명절’말만 들어도 신경쇠약증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억지’는 이쯤에서 끝나야 한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치른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살이’까지 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서정주 시인은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노래했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으면 한다.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것’처럼 부모와 함께 명절을 쇨 날이 무릇 그 얼마나 될 것인가.
지형원< 인터넷신문 문화通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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