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문화수수께끼> 무안 망운면 피서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현재의 皮西里라는 지명은 ‘세상을 피한다’는 避世里에서 변해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는 망운면 東岩廟·水島 장조단과 관련
| 2024. 12.26(목) 10: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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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안군 망운면에 있는 피서리(皮西里)라는 지명의 유래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피서리는 망운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져 있다. 간척사업(톱머리와 청계면 도대리의 머구리 섬과 연결)으로 농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은 바다와 접하여 있다. 피동·피서·용호 마을은 무안국제공항 부지로 흡수돼 용교·조산 ·정착·톱머리 등 4개 마을만 남아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피서리라는 지명은 주산인 솔개산을 중심으로 피난지의 동쪽을 나타내는 피동리와 피서리로 나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에 따르면 영광군 망운면 율리(栗里) 피동촌·피서촌으로 나와 있어 조선후기부터 있었던 이름으로 보인다. 때문에 6.25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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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피서리는 지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무안문화원이 지난 2017년 간행한 마을조사 자료에 따르면 피서라는 지명은 피세(避世)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조선중엽 국정이 혼란하고 민심이 소란하여 뜻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 이곳이 세상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여겨 정착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문화通이 지난 2021년 가을호(통권 40호) ‘전라도문화수수께끼’에서 무안군 운남면 동암리와 신안 수도의 큰봉산 중턱에 사도세자 사당과 석단(石壇)이 있는 까닭을 추적한 결과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유배되었거나 피신해온 사람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들이 세상을 피해 한적한 망운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전혀 황당하지 않다.
여기서 잠시 조선조의 당파싸움에 관해 살펴보자. 인조반정(1623년)으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송시열 송준길 등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한다. 노론의 거두는 송시열, 소론의 거두는 윤 증이다. 영조가 집권하면서 다시 노론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시파(時派), 벽파(僻派)로 나뉘는데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파를 시파, 영조의 처사를 옹호하는 파를 벽파로 부른다. 벽파는 노론계이며 시파는 남인과 소론계를 일컫는다.
시파와 벽파의 대립은 소론·노론의 대립으로 번져 심화 되었다. 영조 말에는 영조 즉위에 공이 많은 노론의 벽파가 우세했으나, 정조 때에는 장헌세자를 동정한 소론인 시파가 득세하였다. 그 뒤 순조 때에는 다시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1801년(순조 1)의 신유박해(辛酉迫害)를 계기로 시파인 소론과 이에 동조한 남인 세력은 몰락하고 노론 독주 시대가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고 보면 영조 때 사도세자를 옹호했던 소론과 시파들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망운으로 숨어들었고 이후 정조가 즉위하고 장헌세자가 장조왕으로 추대를 받게 되자 이곳을 떠나 중앙으로 되돌아간 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동암묘와 수도의 장조단을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똑같이 마을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선몽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동암마을에서는 정조가 왕위에 올랐던 그해 동암마을의 촌로(村老)인 성(成), 이(李), 박(朴)씨의 꿈에 마을 앞에 배 한 척이 나타나더니 한 귀공자가 배에서 내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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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도세자인데 원한이 사무친 채 나라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이곳에 이르렀다. 이곳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내 영혼이 이곳에 머무는 것이니 그리 알라.”
그래서 꿈을 꾼 세 사람이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보니 까만 궤(櫃) 하나가 떠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제단을 쌓고 모시니 이것이 동암묘의 첫 번째인 단이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아담한 제단을 세우고 매년 정월 초하루에 사도세자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신안군 임자도 수도(水島)에도 같은 사연의 사도세자의 단(壇)이 있다. 수도는 임자면 수도리의 부속 섬으로 물이 많아 ‘수도’로 불린다. 섬 중앙에 있는 산의 중턱에 사도세자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
임자도는 백제 때는 고록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압해군의 영속인 염해현, 고려시대에는 임차현 소속이었다. 조선초기에는 영광군에 편입되었다가 후기 들어 나주목으로 이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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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에는 숙종 때인 1711년 임자진의 설치와 함께 임자 목장이 개설되어 말 175마리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임자도 목장 폐쇄를 결정한 임금은 정조(1752~1800)인데 이곳에 사당이 있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가 임자도 목장을 폐쇄한 것은 정조의 효성을 안 일부 신하들이 사도세자의 제사 비용 조달을 위해 건의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이상의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면 영조시대 나라가 혼란할 때 사도세자의 죽음을 슬퍼했던 선비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동암묘와 장조단을 설치하고 넋을 기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정조가 즉위하면서 이들이 중앙으로 되돌아갈 때 마을 주민들에게 동암묘와 장조단을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소홀히 하면 마을에 해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마을 사람들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도세자의 제사를 지내는 일에 소홀하게 되었는데 마을에 가뭄이 계속되고 역병이 번져 마을 사람들이 죽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또 마을 사람들 꿈에 사도세자가 다시 나타나 혼백을 소홀히 한 때문이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이에 마을 사람들은 고종 11년 1874년 제단을 새롭게 단장하고 농사일이 한가한 한식날을 택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후에도 또 한 번 마을에 재액이 생기자 1918년 사당을 세워 면민들이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현재의 동암묘는 1971년에 중건한 것으로 이때 묘정비도 건립하게 된다.
<문화통 취재팀>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