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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4일(화요일)

특집 / 영산강 八景을 아십니까?

영산낙조에서 죽림연우까지
350리길 굽이굽이 풍류와 한이 흐르는 역사의 강물
2016. 06.30(목) 22:33확대축소
영산강은 생명과 풍요의 강으로 불린다. 담양 용면 용추계곡 용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광주 나주 함평 무안을 거치는 350리길을 돌아 서해로 흘러가면서 비옥한 농토를 적시고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생산의 물줄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더러는 농토를 송두리째 핥아버린 수마로 생명과 재산을 잃어 버려야 했던 한과 설움의 강이자 핍박과 수탈을 강요받았던 한의 강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산강은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고 강을 토대로 찬란한 역사를 일으켰던 역사의 강이기도 하다.

세종실록지리지 전라도 편에는 “담양 추월산과 장성 갈재, 능주 쌍봉산에서 흘러드는 물길이 남포진에서 합수돼 무안현 동쪽으로 이르러 대굴포가 되고 다시 서쪽으로 흘러 영암군 운적산 (은적산) 기슭을 지나 목포바다에 든다.”고 쓰여 있다.
영산강의 시원인 용소가 있는 가막골은 6.25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소설 남부군의 배경지다. 영산강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는 주변에는 많은 고인돌과 옹관묘,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대량 발굴돼 그 옛날의 역사를 말해준다.

백제시대 일본과 교류를 담당하던 전초기지이자 중국과의 무역을 했던 국제무역항이 있던 나주 회진마을 풍호나루가 있다. 영산강은 백제문화의 근거지이자 후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왕건은 영산강 권역을 중심으로 한 서남해안 세력과 합세해 고려를 건국했다.
350리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면서 강의 구비마다 풍류와 시문을 꽃피운 누정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시대 정쟁과 사화로 얼룩진 시대에 정자에 벼슬길을 마다하고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후학들을 길렀던 선비의 기개가 느껴진다. 영산강변의 정자가 어림잡아 530개에 이른다니 영산강은 가히 정자문화의 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산강 팔경(八景)이란 영산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여덟 곳을 일컫는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것이 아니고 2010년 국토해양부가 4대강사업과 연계해 새로 정해졌다.

1경은 영산강의 저녁노을 하구언 둑, 2경은 곡강이 감싸고 흐르는 몽탄의 식영정, 3경은 황포돗대와 영산강 절경을 볼만한 석관정, 4경은 4계절 들꽃이 손 흔드는 죽산보, 5경은 지평선이 누워있는 나주평야, 6경은 극락강과 황룡강 물길이 손잡고 흐르는 승촌보, 7경은 ‘제일호산’이라는 한석봉의 명필 현액이 걸린 풍영정, 8경은 대나무 숲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등이다.
이들은 시적인 정취를 담은 사자성어들로 영산낙조(榮山落照), 몽탄노적(夢灘蘆笛), 석관귀범(石串歸帆), 죽산춘효(竹山春曉), 금성상운(錦城祥雲), 평사낙안(平沙落雁), 풍영야우(風詠夜雨), 죽림연우(竹林煙雨) 등으로 불린다.

《문화통》취재팀은 담양 용추골 용소를 살핀 후 대전면과 수북면 대나무 숲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대나무습지를 거쳐 광주 광산의 풍영정- 극락강- 승촌보- 새끼내 선창- 나주 죽산보-나주평야-다시 동당리의 석관정- 무안 식영정-영산강 하구언에 이르는 350리의 긴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편집자 주>


8경: 대숲에서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 (潭陽煙雨, 담양연우)

5월 초순 아침햇살이 아직 비치지 않은 새벽녘의 담양습지는 신비속의 장관이다. 사진에서나 보았던 물안개가 대나무 숲에서 흘러내리며 환상의 춤사위를 연출하고 있었다. 고요와 적막이 흐르는 습지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철새들의 날개소리가 아침의 고요를 흔들고 있었다.
이곳은 담양 대전면과 수북면, 봉산면 광주 용강동 일원에 걸친 980.575㎡(약 28.7만평)의 담양습지다. 철새 집단서식지에다 대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하천습지로는 목본류 식생이 자생하는 1등급 생태지역이다. 죽림연우 팻말과 영산강 팔경이 새겨져 있는 반대편에는 지난해 작고한 문병란 시인의 ‘담양골의 노래’가 주인의 시정신을 지키고 있다.
담양습지는 지난 2004년 환경부가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한 국내유일의 상류하천 습지다. 식물 동물 조류 등 보존된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백조류의 번식지이자 겨울철새의 월동지이다.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이면서 1급 천연기념물 제 323호인, 매새 홍조롱이, 매청다리, 도요, 깜짝, 빽빽도요 등이 서식한다. 역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2급 다묵어장어와 맹꽁이, 특정 식물 1급인 두껑덩굴, 돌외, 우산잔지, 3등급인 새박 , 물옥잠 땅비수리 4등급 자라풀 등이 살고 있다
탐방안내소에서 이미보까지는 약 3km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에게는 자연환경해설사가 숲과 조류, 물고기, 수생식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강변 둑길은 영산강 하구언까지 연결된 133km 자전거길이 있다, 풀코스가 아니더라도 십리코스, 오십리코스, 일백리 코스, 이백리코스, 도심순환코스 등이 있어 시간과 체력에 맞춰 달려보는 것도 좋은 듯하다.

7경 슬픈 전설의 극락강 언던 위 풍영정 (풍영야우, 風詠夜雨)

풍영정은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곳에 있다. 무등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서 아담한 돌계단을 오르면 오랜 수령의 고목나무, 소나무, 야생화 시누대 등이 있어 고즈넉한 정취를 전해준다. 풍영이란 이름 그대로 세상의 잡념을 버리고 세상을 음풍영월하며 지낸다는 뜻이다. 풍영정에서 바라보는 풍영천과 무등산은 현대인들에게 너끈한 안식을 전해준다.
풍영정은 조선 중기 승문원 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1503~1584)가 낙향하여 이곳 신창동에 터를 다져 지은 정자다. 칠계란 극락강의 옛이름이다. 김언거는 중종 20년 (1525년)에 과거에 합격해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승문원 판교가 마지막 벼슬이다. 풍영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정자 안쪽에는 이황 김인후 등이 쓴 현판과 한석봉의 제일호산(第一湖山)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풍영정에는 주인 김언거의 원운 말고도 지지당 송흠,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기봉 기대승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이 시를 남기는 등 현재도 47개에 달하는 현판이 걸려 있어 당시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극락강은 양가집 규수와 소금장수인 강원도 총각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며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나누는 강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풍영정에 올라 이황이 읊은 시를 되뇌어본다.

깊게 흐른 저 강물 몇 천추를 지났는고/ 오늘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낚시하네/
호탕한 그 모습 연기처럼 흘러가니/ 돌아가는 그 물결 달 가운데 떠 있구나/


6경 황룡강 물길이 합쳐지는 승촌보 (평사낙안, 平沙落雁)

승천보 야경
승촌보는 광주광역시 남구 승촌동과 대촌동을 잇는 물막이 보(洑)로 길이가 568m다. 이곳 승촌보에서 죽산보까지 24.km가 영산강 8경의 백미로 꼽힌다. 물길도 물길이려니와 봄이면 유채꽃이 들녘을 물들이고, 가을이면 강변을 따라 은갈색 억새가 드넓은 바다처럼 펼쳐져 장관이다. 여기에 굽이굽이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이어져 강변을 따라 걷거나 은륜을 가르는 재미가 그만이다. 평사낙안이라는 사자성어도 아름다운 강변을 생각하며 지어졌다. 모래톱에 내려앉은 기러기 발자국은 없고 누치, 참몰게, 치리, 모래무치 등이 평화스런 물줄기를 오르내리며 서식하고 있다.
승촌보는 ‘생명의 씨앗’인 5개의 쌀알을 모티브로 디자인 되었다. 4대강 사업의 설치 시설물 중 가장 걸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생명정신을 담아낸 조형성 때문일 것이다. 승촌보에는 영산강 문화관이 만들어져 영산강에 얽힌 역사, 문화, 사람, 시간의 이야기 들려준다. 잠자리 연부터 붕어 연 솔개연 이 충무공이 해전통신용으로 사용했다는 연까지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원근의 경관을 살피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승촌보에는 오포캠핑장이 있었는데 올해부터 일반 캠프장으로 바뀌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갖춰져 가족단위 이용객이 많다. 자전거 이용객도 평일 하루 500여명에 이르고 주말 3천여 명이 찾는 명소다. 특이 이곳에는 치안센터까지 있어 광주에서 30분만 시간을 내면 강변의 고즈넉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5경 나주평야 (금성상운, 錦城祥雲)

나주평야는 호남평야 다음으로 넓은 곡창지대이다. 나주를 관통하는 영산강은 나주 부근에서 지석천과 소규모 지류들을 합하여 넓은 나주평야를 적시며 서해로 빠져나간다. 나주는 예로부터 삼백지방(三白地方)이라 하여 쌀·면화·누에고치가 유명하였고, 연간 5만 톤 이상의 쌀을 생산하는 전라남도 제일의 곡창이다.
역사적으로 영산포는 영산강 유역과 해안지방의 세곡(稅穀)을 모아 경창(京倉)으로 보내던 영산창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512년(중종 7)에 세곡이 영광의 법성창으로 이관된 후에도 이곳에는 강창(江倉)이 존속하였다. 영산포는 1897년 목포가 개항되면서 홍어배와 젓갈을 실어 나르는 선박의 내왕이 빈번해 ‘고깃배들의 불빛이 춤을 추는 듯했다.’고 전하나 1978년 하구언이 생기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영산강 팔진미(八珍味) 가운데 어팔진((魚八珍), 소팔진(蔬八珍)이라는 것도 있다. 어팔진은 여덟 가지 맛있는 고기를 일컬으며 소팔진은 여덟 가지 채소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팔진은 미나리. 마늘, 두부, 녹두묵, 생강, 참기름, 열무, 봄동 등을 가리키며 어팔진은 또랑참게, 숭어, 빙어, 웅어, 잉어, 자라, 복어를 든다.
나주평야는 일찍이 마한 문화를 꽃피운 강으로 유명하다. 허나 마한의 경역에 들어선 백제가 신라에 제압된 이후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서로 이 강의 상류인 광주와 하류인 나주로 나누어져 호각지세를 이루었다. 이들의 쟁투는 점차 왕건 쪽에 세력이 기울어져 고려건국으로 이어졌다. 이 연장선상에서 나주는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중앙정부의 직할지역으로 영산강역을 아우르는 거점지역이었다.

4경 새벽이슬 머금은 사계절의 들꽃… 죽산보 (죽산춘효, 竹山春曉)

죽산보는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보(洑)의 이름이다. 죽산에서 동강까지의 보의 길이는 184m이며 친환경 가동보로 4.5 ㎞의 옛 강을 복원해 수변생태공원을 만들었다. 전국 16개 보 가운데 유일하게 배가 다닐 수 있는 통선문(通船門)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소수력발전소와 어도(魚道)가 개설돼 있다. 죽산보가 만들어지면서 지난 77년 영산포에서 목포까지 마지막 배가 떠난 이후 34년 만에 뱃길이 복원되었다.
봄에는 왕벚나무 꽃길과 유채꽃이 유명하며 여름에는 꽃양귀비, 가을에는 파랑 보라 분홍색 수레국화, 구절초가 운치 있게 휘날린다. 또한 은행나무와 층층나무가 유명하며 영산강 명소 다야들에는 갈대 창포 부들 달뿌리 등이 어우러져 있다, 죽산보 공원 반대편에는 강변 모래밭에 대지예술공원이 있고 이곳은 쉼터이자 생태체험의 교육장이 들어서 있다.
다야뜰에는 갈대, 부들, 창포, 달뿌리꽃 등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되었고 생태습지에는 노랑부리 백로, 황새 말똥가리 해오라기 등과 수달 삵 등이 서식한다.


3경 황포돗대와 영산강 절경을 볼 수 있는 석관정(석관귀범, 石串歸帆)

죽산보에서 더 내려가면 영산강과 고막천이 만나는 곳에 석관정(石串亭)이 있다. 석관이란 바위가 뛰어나온 돌곶을 한자어로 표현한 말이다. 이곳은 1480년(성종 11년) 함평 이씨인 이극해가 4칸 규모의 정자를 짓고 인수정(仁壽亭) 이라 이름 하였는데 1550년(명종 5년) 이극해의 증손인 신녕 현감 이진충(盡忠)이 정자를 보수한 후 석관정이라 개칭해 현재에 이른다. 이후 7대손 이시창이 보수했고 1695년에 13세손이, 1870년 이춘헌이 중건했다. 1998년 석조건물로 개축했다.
나주제일경, 영산강제일경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나주 12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석관정 아래 이별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전쟁 때마다 장정들을 실어 날랐다. 남편이나 연인을 따라왔다가 넓어진 강을 더 이상 건너지 못하고 이별하거나 강물에 투신했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영산강을 건너면 이곳이 바로 공산면 신곡리다. 사포에서 중천포를 지나온 배가 닻줄을 맨 포구였다.
한편, 영산강 주변에는 누정과 정자 5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야말로 누정이 장관을 이룬 곳이다. 호남지방에 서원이 시작된 것을 대략 16세기 후반으로 잡는다. 누정은 이보다 반세기 내지는 1세기까지를 거슬러 어림하는데 이때부터 중앙무대에는 사화가 시작되었다. 정치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이 지방의 선비들이 미련 없이 관직을 때려치우고 환고향하여 자연을 벗하면서 시회를 열고 잘못된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제자들을 기르던 직접적인 현장이 바로 누정이었다. 그런데 그 누정이 무려 530여개라니 상상만으로도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누정은 벽이나 문을 두지 않고 높게 지은 다락식 집을 이르고 정자는 이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풍류처를 말한다, 이 두 집을 합하여 누정이라고 한다. 영산강 주변에 이처럼 누정이 성한 것은 너른 영산강 유역의 미곡생산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는 먹을 것이 없어 길거리에 아사자가 빈번한 데도 지평선이 누운 평야지대를 소유한 이 지역의 선비들은 유족한 생활만큼의 풍류를 즐겼고 그 문화를 중흥시킨 문예부흥의 현장이 누정이었다.

2경 곡강이 아름다운 몽탄 식영정, 몽탄노적(夢灘蘆笛)

영산강 느러지
몽탄의 식영정에서 바라본 영산강의 곡강(曲江)은 가히 절경이다. 몽탄이란 이름부터가 ‘꿈여울’이 아닌가. 전라도에는 2개의 식영정이 있다. 하나는 광주호변에 위치한, 널리 알려진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담양의 식영정(息影亭)이고 또 하나는 이곳 몽탄 식영정 (息營亭)이다. 두 곳은 한자표기에 차이가 있다. 이곳 식영정은 정면 3칸, 측변 2칸 팔장 단층 기와집으로 특히 측면에서 보는 경관이 뛰어나며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것이다.
이 정자는 한호(閑好) 임연(林煉1589~1468) 선생이 1630년 입향 하여 강학 소요처로 지었다. 당대 내로라는 석학들의 토론장이자 시 경연장이었다. 이후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1683-1710)이 강호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임씨 강학교류 공간이었다. 임연이 무안으로 이거한 경위와 주변 경관, 정자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지은 복거록(卜居錄)에 잘 나타나 있다.
식영정이 위치한 이산리는 조선시대 마을 입구까지 물이 들어왔으며 상류에서 내려온 강물이 이곳에서 돌아서 흐르는 곳으로 물의 기운이 가득한 수태극의 자리라고 한다. 배를 묶어두는 자리로 배뫼라고도 부르며 정자 아래쪽으로 나루터가 있다.
정자의 정면에 걸려 있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현판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이니 온갖 동물이 생을 즐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겠다. 몽탄면 소재지에서 이산리 방향으로 약 2㎞지점에 있다. (소재지에서 승용차로 5분거리)


1경 아름다운 영산강 하구언의 저녁노을 (영산낙조,榮山落照)

영산낙조
이른 아침 담양 영산강 팔경의 끝인 담양연우를 보고 떠난 발걸음이 해질녘에야 영산강하구에 닿았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대나무습지에서 아침의 고요를 건드리던 철새떼들이 취재팀을 따라 왔는지 저녁노을이 깃든 하구둑에는 새울움소리가 가득하다.해질녘 갈매기 떼의 비상이 더없이 아름다운 곳, 영산강 수변공원의 백미라 할 남악수변공원의 갈대천국, 그 기다란 오솔길 데크를 헤치고 나오면 저만치 등대모양의 풍차가 이국적 정취까지를 전해온다.
여름날이면 은갈치의 찬란한 율동과 환호가 하얗게 밤을 새우는 곳. 목포 오거리 한복판에서 뒷개와 선창, 유달산과 목포역, 그리고 구도심으로 나눠진 바람의 가지들이 조금은 섭섭한듯하여 다시 모였다가 되돌아 나오는 곳. 영산강 하구언에는 ‘목포의 눈물’이 있고 낭만이 있고 멀리서 들리는 뱃고동소리까지 팔경의 대미를 장식하는 팔경중의 팔경이다.
영산강 하구언은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와 영암군 삼호면 산호리 사이를 가로막은 토석제(土石堤)로 길이는 4,351m다. 둑에는 8련(八連)의 배수갑문과 30t급의 선박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너비 6m, 길이 30m의 통선문(通船門)이 설치되어 있다. 1979년에 착공한 하구언이 1981년에 준공됨으로써 인공호인 영산호(榮山湖)가 만들어졌다. 강의 연안에 펼쳐진 일대의 207㎢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 5만 6000톤의 미곡 증산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32.5㎢에 달하는 새로운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전라남도 남서해안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지도 40년이 다돼 간다.

<문화통 취재팀>

문화통 취재팀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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