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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1일(금요일)

가야금산조 국가무형문화재 김윤덕선생의 딸 김정숙씨
2024. 03.21(목) 15:00확대축소
김정숙 선생
가야금 소리에 잠이 들고 깨고 50평생 가야금과 함께
“아버지 고향 정읍에 기념관 하나 지어 훌륭한 藝脈 잇고 싶어”
딸도 한예종을 거쳐 석사과정 마치고 3대째 가얏고 맥을 이어

사람에게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숙명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환경에 동화되어가는 것일까? 많은 예술인들을 만나다 보면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달에 만나는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 이수자 김정숙(64) 씨도 가야금을 타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자랐고 그 소리가 좋아 아버지로부터 가야금을 배웠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가야금을 전공하고 50평생을 가야금과 함께 살아왔다. 무계(巫係)에서 말하는 신내림처럼 ‘소리 내림’이라는 것을 받았다고나 할까. 김정숙 뿐 아니라 손위의 두 언니도 직업예술인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가야금을 켜고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지금은 김정숙씨의 딸이 할아버지-어머니에 이어서 또 국악의 길로 들어섰다. 예술 중·고와 한예종을 거쳐 석사과정을 마치고 가야금연주자로 활동하고 하고 있다. 확실히 예술적 DNA같은 것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숙씨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녹야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 창시자이자 보유자였던 김윤덕(1918~1987) 명인의 막내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늘 아버지가 연주하시던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김정숙에게 가야금은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놀 때쯤 그는 가야금을 켜고 소리를 내면서 즐거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집에는 고(故) 황병기 선생을 비롯해 오늘날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활약하고 있는 여러 제자들이 공부하러 왔고 매일 새벽 5시 아버지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부친 김윤덕 선생


녹야 김윤덕 선생은 정읍에서 태어나 정읍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정자선(鄭慈善)에게 양금을, 김광석(金光錫)에게 가야금을, 김용근(金容根)에게 거문고, 정남희(鄭南希)에게 가야금 산조, 한갑득(韓甲得)에게 거문고산조를 배웠다. 스승의 산조 가락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독특한 연주법을 창안해 이른바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를 창시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립국악원 국악사, 국악사양성소 강사, 서울대와 서울국악예술학교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50살때인 지난 1968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예능 보유자로 지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영희·황병기 등 많은 제자 두어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는 우조, 계면조, 평조의 구분이 확실하고 단모리 가락의 묘법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또 웅장하고 남성적이면서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야금과 거문고 이외에도 양금, 설장고 등 많은 악기에 능했다, 그의 가락은 이영희(국가무형문화재) 황병기(전 이화여대한국음악교교수) 원한기(가야금산조 및 병창 명예보유자) 이재숙(한양대학교 석좌교수, 한국가야금협회 이사장) 김승희(가야금 연주자)와 딸인 김정숙에게 이어졌다. 김정숙은 어려서 가야금 보다는 거문고 소리가 좋아 아버지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가야금을 권했고 한 우물을 깊이 파다 보면 다른 악기도 다 잘하게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야금에 전력했다. 물론 거문고도 배웠다.
가야금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정숙 씨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운영하던 종로의 가야금 연구소에 나가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웠다. 당시 국악 중학교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아 일반 중학교에 다니며 가야금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바람에 서울대를 포기하고 한양대 국악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를 잘하고 가야금 잘하는 학생으로 이미 유명세를 떨쳤다.
때문에 교수가 진행하는 KBS라디오 국악방송의 리포터로 활약하기도 했고 소문이 나면서 KBS 텔레비전에도 리포터로도 활동했다. 당시 왕영은이 진행하던 뽀뽀뽀 진행까지 섭외가 들어왔으나 방송유혹을 떨쳐내고 다시 국악의 자리로 돌아와 가야금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영희 문화재 가야금 산조 첫 이수자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수제자로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보유자로 지정된 이영희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첫 이수자가 되었다. 이후 10여 회의 독주회를 열었다. 그의 소리는 성음이 좋고 여자이면서도 아버지처럼 웅장하고 남성적이다는 평을 받곤 했다. “김윤덕류 가야금산조의 최고 명인은 이영희 선생님이십니다. 아버지께서도 생전 많이 칭찬하셨고 제자인 제가 보기에도 저희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실력을 갖추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은 청출어람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되뇌며 선생을 닮고, 뛰어넘어보고자 했으나 아직도 부족하다고 겸손해 했다.
김정숙이 김윤덕의 딸이자 실력을 갖춘 이수자로 알려지면서 그에게 가야금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수강생을 다 받지 못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과로로 쓰러질 뻔한 경우도 두어 차례 겪을 정도로 상승기류를 탔는데 결혼과 함께 활동이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 모교인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음악 지도법 등을 습득했고 내친김에 성균관대 행정대학원에서 국정관리학과까지 마쳤다. 이후 여러 대학교와 고등학교, 국악원 등의 강사 생활을 하면서 연주회를 계속했다. 가야금 연주 활동을 계속하면 할수록 활달하고 당당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딸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를 기념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그의 남매는 1남 5녀인데 오빠는 국악의 길을 걷지 않았고 손위 두 언니가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결혼하면서 예술가의 길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은 자식은 혼자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의 모습


그래서 1989년 녹야 김윤덕 명인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이사장을 맡으면서 녹야국악단과 녹야국악관현악단 단장, 김윤덕향제줄풍류보존회 대표, 녹야 우리문화봉사단 대표, 녹야청소년가야금영재단 예술감독 등 아버지를 기리는 사업에 온몸을 바쳐 일하고 있다. 김정숙은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정읍까지 내려가 생가를 발굴하고 생전 좋아하시던 용인으로 내려와 기념사업을 하기 위해 부지도 마련했다.
그러나 기념관을 짓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우선은 각종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빨리 기념관을 짓고 김윤덕류 가야금 산조와 향제줄풍류를 계승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지만 만만치 않고 일부에서는 아버지의 고향인 정읍에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어 고민이 깊다.

“아버지 고향 정읍에 기념관 짓고 싶어”
그런데 용인으로 내려오자마자 최초의 용인 전문예술단인 용인예술단의 초대 단장을 맡는 바람에 이 일이 주춤해졌다. 욕심도 많고 한번 마음을 먹으면 기어이 이뤄내는 김정숙은 국악 불모지 용인에 국악의 씨앗을 뿌리면서 아버지를 기념하는 녹야국악단, 녹야국악관현악단, 영재단, 향제 줄풍류보존회 등을 만들어 이끌어 가고 있는 것.
“가야금을 계속할수록 아버지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예술가인가를 새삼 깨우치게 됩니다. 지금 개최하고 있는 녹야전국예술제를 더 확대, 발전시키고 부친의 국악사랑과 정신, 그리고 그 섬세한 기교를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현재 녹야김윤덕명인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불철주야 녹야 기념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김정숙은 첫째도 녹야이고, 둘째도 녹야이다.

그러면서 이영희 선생님. 황병기 선생님 등 훌륭한 제자들이 많아 이분들과 함께 기념사업을 펼쳐나가면서 아버지의 자랑스런 딸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김정숙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50평생 가야금과 함께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 때문이리라.

주요약력
1960년 서울출생
1983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1998년 한양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 졸업
2006년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국정관리학과 졸업
1987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23호 가야금산조 첫 이수자
1989년~현재 녹야김윤덕 명인기념사업회 이사장
(녹야국악단, 녹야국악관현악단단장, 김윤덕향제줄풍류보존회 대표, 녹야 우리문화 조찬모임대표, 녹야 우리문화봉사단대표,
녹야 청소년가야금영재 재단 예술감독)
1998년~1999년 용인예술단 초대단장
2000~2001 한양대 동문 가야금연주단 창단 (악장, 현 자문위원)
2001년~현재 녹야 국악관현악단 단장 겸 예술감독
2016년~현재 녹야 전국예술축제 총감독
2019년~현재 은성아그로파크 주) 문화기획단 예술감독
2020년 용인시장 표창
2021년 용인시 문화상 수상
2021년~현재 지묵당 세계 차 축제 예술감독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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