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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30일(화요일)

수건입춤 허순선 교수

물 흐르듯 부드럽고 깊은 계곡을 휘젓는 ‘柔弱於水’의 춤
태평무·처용무·향당무 이수자 …50년간 박금슬 춤맥이어
2023. 03.27(월) 15:36확대축소
지난해 7월 광주시 동구 동명동 민들레 소극장에서는 ‘허순선의 춤사윗길’ 이란 공연이 있었다. 춤도 추고 춤에 관한 이론도 설명하는 이른바 렉쳐콘서트 형태의 공연이었다.

민들레소극장은 광주의 대표적인 민중극단인 극단 ‘토박이’의 상설극장으로 오랫동안 예술의 거리에 있다가 두어 해 전 동명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연극이나 공연은 소극장에서 보는 것이 최고이다. 연희자의 얼굴표정과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으니 온전히 무대에 빠져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객석은 100여 석이 조금 넘었다. ‘허순선의 춤사윗길’ 공연은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내가 찾은 두 번째 공연에는 60여 명의 관객이 자리했었다. 무대에서 보면 오른쪽 앞자리에 앉아 평생 박금슬류 춤을 배우고 지키고 가르쳐온 허순선(許順善, 70) 교수의 춤 세계와 춤 이야기에 몰입해보기로 했다.

허순선 교수가 펼쳐 보이는 여러 가지 춤사위 가운데 가장 핵심은 ‘수건입춤’이라는 것이다. 시나위 가락에 조그만 깁 수건을 손에 들고 발의 디딤과 돋움, 그리고 들숨, 멎숨, 날숨이 깊은 멋의 몸짓 하나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춤이다. 입춤이란 호흡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출하여 주로 서서 추는 즉흥춤으로 맨손으로 추면 맨손입춤, 수건을 들고 추면 수건입춤이라고 부른다.

허순선이 작은 수건 하나를 들고 무대에 나타났다. 작은 무대는 온통 어둠에 갇혀 있었고 허교수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이 따라다님으로 무대는 고요함 그 속에서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칠순이라면 아직은 노인이라 일컬을 수는 없으나 무대를 자유자재로 뛰어다닐 나이는 아닌데 고요와 회오리바람이 오가며 조용했던 극장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몰아넣었다.
수건춤


춤이 끝났을 때 어디서부터인가 박수 소리가 시작되었고 필자는 박수를 보내는 대신 문득 도덕경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란 단어를 떠올렸다. 물은 비록 한없이 약하지만 어떤 강함도 그를 이겨내지 못한다‘라는 의미다. 마침 올해 광주광주비엔날레의 주제로도 선정된 유약어수는 ’물처럼 부드럽게 여리게‘라는 풀이가 붙어 있지만 그 속에는 물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 허순선교수의 춤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서 이 말이 떠나지 않았다. 더러는 조용한 시냇가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움이, 때로는 깊은 계곡을 휘젓으며 폭포가 요동치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경험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연희자도 아닌 필자의 손이 촉촉했다. 극도의 긴장감 뒤에 오는 이완의 순간이랄까.

극장을 나오면서 그동안 한국의 전통춤에 편견을 가졌던 것이 부끄러웠다. 발레나 현대무용, 한국무용 가운데서도 스피드하면서도 격정과 스토리가 있는 창작무용 예찬론자였는데 전통무용에도 철학적이고 의학적인 요소가 숨어 있는 매력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허순선이 평생을 춤 인생으로 살아온 데는 박금슬이란 큰 산이 하나 있다. 박금슬(朴琴瑟, 1922~1983, 본명 김길남)은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정자선(1972~1949) 정소산(1904~1978) 천월스님으로부터 춤을 배운 한국무용의 대가이다. 안타깝게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기 전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타계하고 말았지만 그의 춤맥은 김광숙(1945~, 전북무형문화재 48호 예기무 예능보유자) 허순선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박금슬은 천월스님으로부터 불교춤을 배웠는데 재능이 뛰어나 불교춤 예능보유자 지정이 논의되기도 했고 교방계열의 입춤으로 신청하기 위해 ’춤동작‘ 이란 저서를 출판한 바 있다.
허순선 교수 춤사위


허순선과 박금슬의 인연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여중 강사로 춤을 가르쳤던 김광숙이 박금슬에게 춤을 배우던 시절 어린 허순선에게 박금슬의 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허순선이 박금슬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사대부고 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다. 1969년 제자인 김광숙과 동남아로 떠났던 박금슬이 태국에서 무용을 가르치며 눌러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1977년 스승인 김광숙의 소개로 박금슬 문하에 입문했다. 그러니까 허순선에게는 김광숙과 박금슬이 모두 스승인 셈이다.

허순선은 박금슬이 불의의 사고로 타계할 때까지 6년여 동안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박금슬에게 춤에 관한 많은 것을 묻고 배웠다. 허순선은 후에 ‘박금슬 한국무용 용어연구’ ‘박금슬 춤사위 용어 정립에 관한 연구’ ‘박금슬 입춤연구’ 등을 통해 박금슬 춤사위 용어를 바탕으로 모든 한국춤의 춤사위를 누구나 객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립하였다. 즉 민속에서 나온 춤사위 용어들은 구전으로 전해온 관계로 방언으로 된 것, 앞이나 뒤의 말이 생략되어 말이 안 되는 것, 잘못 들은 것 등의 용어들을 바르게 정리하여 구전으로 전해온 용어에 신체 용어와 방향 용어를 붙여 어떤 동작을 하여도 춤사위 명을 순수한 우리말로 말할 수 있게 하였다.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허순선의 개인사를 들어보자. 허순선은 진안 출신의 허재득(許在得)과 무주가 고향인 김순남(金順男)의 6남매 중 막내딸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찍이 전주로 이사해 진안에서 인삼농사를 지으면서 전주에서 메리야스 공장을 운영하며 자녀들을 뒷바라지했다.

허순선이 맨 처음 춤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담임교사였던 육옥희 선생(육완순의 언니)이 일찍이 재능을 발견해 춤을 가르쳐주었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무용교사(심재준)의 눈에 띄어 무용을 계속했다. 중학교 때 수건춤으로 전라북도무용경연대회 수석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특상을 받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학생의 날 기념 전국경연대회’에 전라북도 대표로 나가 박금슬류 입춤으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그가 박금슬을 만난 것은 한 참 뒤의 일이지만 이미 김광숙을 통해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재능을 인정받아 이화여대 무용과에 어렵지 않게 입학했고 대학 생활은 무용용어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학년 여름방학 때 김매자(金梅子)교수가 지방의 춤사위 용어를 조사해오라는 숙제를 내준 적이 있는데 허순선은 김광숙이 주고 간 박금슬의 릴 테이프를 들으며 많은 용어를 배워 훗날 이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허순선교수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전남대 사대부고 교사로 특채되었다. 교내 체육대회에 세계 각국의 민속무용을 선보였는데 부속 중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허순선을 아끼는 선배 교사의 권유로 매주 토요일 서울까지 오가며 석사학위를 받았다. 항상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가 오는 법. 석사학위를 받고 나자 광주대학교 김인곤 이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전임교원으로 초빙해주었고 전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1984년부터 광주대학교 유아교육과, 생활체육과,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로 34년간 근무하다 정년했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남아 있다. 광주대 교수시절 전남대 교수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는데 남편은 허교수가 무용을 학문적으로 승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반려자였다.

허순선 교수는 진정한 무용가이자 무용학자이다. 그동안 14회의 개인발표회를 가졌고 ‘한국의 전통춤사위’와 ‘한국의 춤사위의 무보틀’ 등 16건의 연구논문과 13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무용연구에 관한 열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금슬의 문하에 들었을 때는 나란히 한의사였던 작은 아버지 허재숙(許在淑)으로 부터 한의학을 배웠고 이때 들숨과 멎숨, 날숨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온몸으로 추는 춤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춤을 출 때는 뼈 삼천마디를 모두 움직여서 추어야 하고, 신명이 너무 넘쳐서도 안되고 고요해서도 안된다는 것. 장삼자락을 걷어 올릴 때는 태산을 걷어 올리듯 기풍이 서려야 지상과 우주가 소통하는 화합의 춤 맛을 출 수 있다는 의미도 깨달았다.

또한 박금슬, 김광숙, 김매자 이외에도 김천흥(1909~2007) 양태옥 (1918~2003) 안채봉(1920~1999) 일응스님(1920~2003) 이석동(1920~2010) 강선영(1925~2016) 박은하(박형봉 1935~현재) 유청자(1944~현재) 등을 스승으로 모시며 춤을 배우고 춤의 용어들을 주워 담았다.

이같은 노력이 인정돼 국가무형문화재위원, 전남도 무형문화재 위원,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위원,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 경기문화재 제34호 향당무 이수자 지정을 받았으며 미래춤학회 학술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허순선은 많은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했지만 그의 춤의 본류는 박금슬의 춤이다. 박금슬의 바탕춤과 입춤, 수건춤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해낸 것이다. 시나위 가락에 밑몸사위, 윗몸사위, 온몸사위 순서로 춤을 추기 시작하여 입춤으로 이어진다. 입춤은 춤의 기본자세를 익히는 춤, 흥이 나면 일어나서 제일 먼저 추어야 할 춤으로 바탕춤과 함께 모든 한국춤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저서


허순선이 추는 입춤은 바탕입춤 (밑몸사위, 윗몸사위, 온몸사위, 바탕춤), 맨손입춤(굿거리가락 맨손춤, 살풀이가락 맨손춤), 수건입춤 순으로 추는데 “들숨, 날숨, 멎숨의 묘미를 살려내야 우리춤의 춤태와 매력을 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우리의 한국무용은 고려와 조선시대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감각적 육체의 미를 부정하였고 육체의 노출은 금기(禁忌)로 되어 왔다. 이러한 영향 아래 춤이 정형화(定型化)된 것이 궁정무용(宮廷舞踊)이고 민속무용은 한국무용 고유의 원형(原型)을 살리면서 경쾌하고 변화무쌍한 춤이다. 그러니까 궁정무용은 춤의 가락이 우아하고, 선(線)이 고우며 몸가짐이 바르지만 동작의 변화가 적어 다양하지 못하다. 반면 민속무용은 원초의 자연스런 가락이 잘 보전된 것이다. 민간신앙과 세시풍속(歲時風俗) 중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싹트고 움터서 발전한 춤으로 어떠한 격식이나 일정한 법도(法度)가 필요치 않고 서민들의 정서와 소박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춤이다. <炯>

■주요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졸업
전남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박사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전남무형문화재위원(2010~현)
국가 무형문화재 위원(2018~2020)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위원 (2013~2019)
미래춤학회 학술부문 대상 (2004)
황조근정훈장(2018)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1998)
국가무형문화재 제39회 처용무 이수자(1999)
경기문화재 제34호 향당무 이수자(2015)

■연구
한국의 전통춤사위(1991,1996)
쌍채 걸북춤(1996)
한국의 춤사위와 무보틀(2005)
기초 한국무용(2014)
박금슬 한국무용 용어 연구(1984)
영산재 작법 중 착법무에 관한 연구(1987~1989)
쌍채 걸북춤에 관한 연구(1995)박금슬 춤사위 용어 정립에 관한 연구(1997)
안성 향당춤에 관한 연구(2001)
한국춤에서 호흡법의 의미 (2002)
한국춤의 무보틀 연구(2004)
한국춤의 숨새틀 연구(2005)
박금슬의 입춤 연구(2008)
박은하의 민속무 중 법고무 연구(2000)
박은하의 남도 깁수건춤 무보의 특징(2012)
한국무용 기본춤사위 구조와 용어(2013)

■개인발표회 14회

■은사>
박금슬(1922~1992), 김천흥(1909~2007)
양태옥 (1918~2003), 안채봉(1920~1999) 일응스님(1920~2003), 이석동(1920~2010)
강선영(1925~2016), 박은하(박형봉 1935~현재)
김매자 (1943~현재), 유청자(1944~현재) 김광숙(1945~현재)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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