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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목요일)

마지(麻紙) 만드는 사람 이찬식
2021. 06.09(수) 11:02확대축소
40년 외길… 대한민국 유일의 麻紙 장인
‘질김성, 광택성, 운묵성, 굴절성’ 최고 산업화 모색해야
“길쌈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문화의 아름다운 발자취


평생 한 사람의 정인(情人)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몇십 년 외길인생을 살아온 사람,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조상 대대로 해온 일이라 사명을 갖고 그 길을 걷는 사람. 성취 여부를 떠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성공과 실패를 돈의 가치로만 따지는 세상에서 모름지기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한없는 경의를 보낼 필요가 있다.

평생을 마지(麻紙) 연구에 바쳐온 보성의 이찬식(77. 李贊植) 선생도 그런 분 가운데 한사람이다. 호가 마광(麻狂)인데 물어보나 마나 ‘마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닥종이로 만드는 종이를 한자 한지(韓紙)라고 대마(大麻)로 만드는 종이를 마지(麻紙)라고 한다. 대마로 천을 만들면 마포(麻布)다.
보성군 복내면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농업학교에 다녔고 그 시절에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했다. 면(面)에서 대학생이 한 명이나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에 대학까지 마친 엘리트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 잠깐 동안 바깥나들이를 한 것을 빼고 50평생을 마(麻)연구와 생산, 보급에 바쳤으니 가히 마광(麻狂)이라 할 만하다.
아내 윤창숙 씨의 친장잡에서 살며 마지를 연구하는 이찬식씨 부부



“대한민국의 마는 세계적인 보물입니다. 몇 년 전 문화재청이 마지에 대한 성분을 분석한 결과 섬유의 질김성, 광택성, 운묵성, 굴절성 등에서 최고의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를 근거로 세계 98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페이퍼협회에 한국의 마지를 등재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일을 추진하던 문화재청 직원의 실수로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한국 마지의 우수성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화지, 중국은 수목지이고 한국에서는 한지 순지와 혼합지, 대마지(大麻紙)를 생산하는데 이 가운데 마지의 가치가 가장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마지 만드는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마포를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면 쉽다. 삼은 3월 초에 파종하는데 마포용은 6월 말에 수확하고 종이를 만드는 것은 7월 중순이나 20일께 베어낸다. 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 강한 재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지는 닥지로 마지는 대마로 만들어
6월 말께 마를 베어 4.5톤 정도를 수증기 보일러에 넣어 4시간가량 쪄서 김이 나가면 묶었던 줄을 풀어서 완전히 식힌다. 그 후 겨릅대(저릅대)와 인피를 분리하여 건조시킨 뒤 삼베만 추려서 물에 담근다. 이후 도패로 문질러 삼베를 벗겨내고 다시 건조시켰다가 물에 담가 손톱으로 가늘게 쪼갠다. 이것을 물에 담갔다가 삼을 이어서 물레에 돌려 실꾸리르 만들고 +자형 돌 것에 감아 타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타래를 물에 담가 양잿물에 넣으면 하얀실이 되고 다시 +자형 돌 것에 감아 씨줄(실꾸리)과 날줄을 만든다.
대마 껍질을 벗겨내 가지런히 추리는 아낙들


마포의 폭은 37.5 ㎝, 1필이 20자이고 한 통이 12필이니 240자가 되는 셈이다. 베는 날줄의 수에 따라 4새(32줄), 5새(40줄), 10새(80줄), 보름새 (120)줄 등으로 나뉜다. 10새 이상은 궁중에서 사용했고 서민들은 주로 4새나 5새를 썼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실이 드문드문하기 때문에 값이 싸고 안동포는 10새 이상을 쓰기 때문에 비싸다.
대마지를 만드는 과정은 베어서 찌고 건조하는 것까지는 베와 같다. 건조된 대마를 1㎝나 1.5㎝로 잘라 물에 담갔다가 불으면 도칠로 여러 차례 두들겨 짓이긴 뒤 전주 한지 공장으로 보내서 한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종이를 만들어 낸다. 보성 복내에서도 마지를 만들 수 있지만 주암댐 상류라 공장허가가 나지 않는 데다가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전주 한지공장에 맡겨 생산하고 있다.

마상 500㎏이면 마지 약 100연을 생산하는데 마지 100장이 1연이니 10,000장을 만드는 양이다. 마지 1연에는 60만원이어서 한 장에 6천원 꼴이다. 한지 순지는 15,000원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있다. 참고로 한지 혼합지는 한 장에 1천원, 중국지는 600원 정도다.
마는 대마, 저마, 황마, 아마가 있는데 저마는 모시를 생산하는 것이고 황마는 황해도에서만 생산된다. 아마는 유럽에서 생산되는데 주로 로프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마로 만든 실꾸리



전국 서화가들이 극찬하는 마지

이찬식 선생은 초창기 마지 홍보를 위해 자연지와 탈색지 샘플을 만들어 전국의 서화가들에게 보냈는데 특히 서울지역 예술인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우선 먹의 번짐이 좋고 작품의 보존성에서 매우 우수하다는 반응이다. 해마다 서울. 경기지역의 서화가들이 마지의 가치를 인정하고 주문해오고 있어 꾸준히 마지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해 자긍심이 크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특히 지역에서는 ‘흔한 것’으로 치부하는 바람에 산업화 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음에도 사장시키고 있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평생을 마와 함께 살아온 이찬식 선생은 대마의 삼대는 가루로 빻아 건물 내부의 미장재로 사용하면 더없이 좋다고 말한다. 화학물질이 전혀 없어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아토피 등의 피부염에도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종이는 종이대로, 삼베는 삼베대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너무 가볍게들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이찬식-윤창숙 부부


또 하나는 곡성 돌실나이가 문화재 지정을 받았다가 무형문화재 타계 이후 후계자가 없어 취소된 것도 너무 안타깝다고 말한다. 후손이 그 맥을 잇거나 아니면 마을에서 오랫동안 기능을 익혀 맥을 이어가야 하는데 결국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 취소돼 버리고 이제 섬유 문화재는 안동밖에 없는 실정이다.
여기서 잠시 마광 이찬식 선생의 삶의 되돌아보자.

그가 한국의 대마에 깊이 삐진 사연은 이렇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1년이 지나도 발령이 나지 않았다. 내용을 알아본 즉 부친의 죽음과 관계가 있었다. 부친이 여순사건 때 경찰에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거꾸로 좌익활동이란 누명으로 연좌제에 걸려 채용이 안된 것.
부친의 타계로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던 이찬식 선생은 큰집으로 양자를 가는 바람에 3대 독자가 되어 7개월 만에 의가사 제대를 하고 돌아와 직업 일선에 나섰다.

전공이 농업경영이어서 경영을 배우기 위해 서울 크라운 제과에 들어가 1년반 동안 특수판매팀을 조직해 운영했다, 이후 이리 보배소주에 스카우트 되어 9개 지역을 담당하는 판촉부장으로 일했고 광주 전남매일신문 사주가 운영하는 구본식품 판촉담당으로 대전·충남북, 경남·북을 담당하는 지사장으로 발령받아 1년 반 근무하게 된다. 구본식품에 들어간 것은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신문기자의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에는 형님 소유의 문중 땅 14만 평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초지 5㏊, 논 1㏊, 밭 5㏊를 개간해 벼, 보리, 밀, 깨, 콩 작물과 염소, 소, 돼지 등을 길렀다.
농업경영을 전공했던 그는 일찍이 친환경농업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하고 75년 농림부 산하 특산물 연합회를 결성했다, 전남지회장을 거쳐 전국회장까지 지내게 되는데 잘못했다가는 공금을 손댈 것 같아 8개월 만에 회장직을 사임하고 36살 때부터 대마에 올인했다.

부인 윤창숙 여사 친정집에서 연구
자신의 고향은 복내 봉천동 들몰인데 주암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되는 바람에 부인의 친정집 거주하면서 마 연구에 집중하게 된다. 부인 윤창숙(74, 尹昌淑)씨는 이 마을에 태어나 70년 넘도록 이 집에 살고 있다, 남편이 마지 연구에 전념하는 자람에 마를 소재로 한 전통의상 장인이 되어 5개국에서 패션 쇼를 갖기도 했다. 윤씨는 특별히 패션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면 친정어머니로부터 배운 바느질 솜씨로 세계인의 무대에 섰던 것. 지금도 다례복(茶禮服)을 직접 만들어 체험학습하는 아이들에 입히고 가르치기도 한다. 이찬수 선생은 아내 덕분에 광주·전남 의상연합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건국대 고부자 교수 등과 연합해 한국 전통의상 발전에도 공을 세웠다.

“아버지의 삶 헛되지 않아” 그말 듣고 싶어
“파란 많은 한평생을 살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평생 매달려봤고 나름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자긍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전에 세 가지의 일은 꼭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첫째는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마무리 되어 아버지를 해원(解?)해 드리는 일, 둘째는 대마의 산업화가 이뤄져 대한민국이 섬유강국이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삶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딸만 다섯인 딸 부자 아버지는 다섯 사위 가운데 한 명에게라도 마지(麻紙)의 맥을 잇도록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자신의 세대에서는 ‘시절인연’이라는 것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마의 우수성이 인정돼 세계만방에 나부끼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평생 우리 것을 사랑했던 이찬식 선생은 지금도 손글씨로 마지의 생산과정을 기록해 놓았다. 또 이를 홍보하기 위해 직접 쓴 편지글이나 사용자들로부터 받은 후기까지도 꼼꼼히 모아 놓았다. 또 전국의 서화가들의 자신의 마지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보내준 작품을 표구하여 복내면 행정복지센터 2층 ‘生居福內’ 갤러리에 기증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찬식 선생은 “삼이나 누에, 목화 등의 섬유를 원료로 베나 모시, 명주를 짜는 길쌈은 우리 민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아름다운 문화의 발자취다.”면서 “누군가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잇고 지켜갔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과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글: 지형원 발행인, 사진 임철진 사진작가>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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