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귀숙 첫 시집 ‘둥근 길’

아프고 힘든 삶에서 길어 올린 존재들의 힘

2019. 01.25(금) 17:48

2016년 <광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귀숙 시인의 첫 시집 『둥근 길』(문학들 刊)이 출간됐다. 문학들 시선 049번째로 발간된 이 시집은 3부로 나눠 60여편의 시를 상재했다, 1부는 ‘비올 바람’ ‘내 코끼리의 상아’ ‘ 바탕화면’ ‘해질녘을 요리한다’ 등 17편이, 2부는 ‘둥근 길’ ‘ 노랑무늬 영혼’ ‘ 빈집’ ‘ 빗소리 변주곡’ 등 19 이 실렸다, 또 3부에는 ‘출렁이는 봄’ ‘ 물빛 기도’ ‘ 에덴의 서쪽’ 등 18편을 담았다.

허풍빌라에서 내른/ 수백억 상속녀가 떨어뜨리고 간/ 셀 수 없는 동그라미의 말들/ 낄낄거리다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꽃뱀의 뱃속같은 후미진 골목을 후진으로 /나오는 오늘 일진은 구부러진 끗발이다/ 금요일을 발광하는 네온사인을 비켜선/ 그림자 하나, 손을 번쩍 들었다/ 뒷자리에 앉자마자 응얼거리는 목소리/ 메아리로 읽어야 하는 목적지자/ 번져 읽을 수 없다/ 붉은 신호등 하나를 넘으며 자정의 경계를 넘었다/ 어떤 넋두리라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 갈림길 마다 좌회전을 외치며 흐려진 그림자/ 젖은 넋두리에 수몰된 길을/ 재탐색 하라고 네비가 얼굴을 붉힌다/ 붉은 기운이 부족한 사납금만큼 미터를 올리고/대낮처럼 훠한 불면의 광장을 지나/늙은 벚꽃나무 떨어뜨리는 흐린 시간들/ 지나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길/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 네비가/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표제작 ‘둥근 길’ 전문

취객을 싣고 자정의 경계를 넘어버린 택시운전사가 “어떤 넋두리도 용납되는 할증의 시간”에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길을 헤매다가 “더 이상 택시로는 갈 수 없는 길”에서 내비가 멈췄을 때, 시인은 노래한다. “그림자의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렸다”.
지루하고 어려운 삶의 이면에서 문득 올라오는 손가락 끝에 만월이 걸린 풍경은 아름답다.
실은 사람들의 삶 전체가 바로 그 버림과 버리지 못함과 울음과 웃음의 연속일 것이다. 이울음이 바로 그의 시편들을 날렵한 언어적 공교함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힘이요, 이것이 문귀숙의 진면목이다.

문귀숙 시인은 진도에서 태어났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6년 <광남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박원지 기자 mhtong@hanmail.net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