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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3일(화요일)

‘채식주의자’로 아시아 최초 맨부커상 수상한 한 강 작가
2016. 06.15(수) 10:34확대축소




광주 출신 소설가 한강(46)이 지난 5월 16일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작가는 물론 아시아 작가 중에서도 처음 있는 일로, 한국 문학 전체의 위상을 높인 쾌거로 평가받는다.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도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상금 5만파운드(한화 약 8,150만원)은 작가와 번역자에게 나누어 지급된다.

수상소감에서 한강 작가는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1994년 서울신문에서 ‘붉은 닻’으로 등단했다. 등단 이후 제25회 한국소설문학상, 제29회 이상문학상, 제13회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서울예술대학교 미디어창작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맨부커상 노벨·쿵쿠르상과 세계 3대 문학상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영어로 쓴 소설 중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영어권 출판업자들의 추천을 받은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위원에서 뽑는다. 이 상은 1969년 영국 부커사가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 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제정됐다. 2002년부터 맨 그룹(Man group)이 후원하기 시작하면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채식주의자


당초 부커상은 영연방 출신 작가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아우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해 격년제로 비(非) 영연방 지역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상을 줬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인터내셔날 부문을 매년 시상하는 것으로 개편됐다.

지금까지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 상의 권위를 짐작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원작 소설인 토머스 커닐리의 ‘쉰들러의 방주’, 리안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일본 출신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도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번역자 영국 데버러 스미스 큰 역할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번역의 힘을 새삼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국내의 좋은 작품들이 해외에 알려지지 못한 것은 번역 때문이었다.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2007년 출간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오늘날 해외에서도 빛을 보게 된 것은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의 역할이 크다.
스미스 씨는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소년이 온다’, 안도현의 ‘연어’와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같은 동시대 한국 작품을 번역해 영어권에 소개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스미스 씨와 한 작가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피드백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번역자와 상호작용 외에도 좋은 출판사, 훌륭한 편집자와의 만남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 오늘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한강의 작품 세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찬사는 일상적인 문학에 대한 경의를 넘는다. 비영어권 국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심사위원들이 다른 문화적 배경의 소설을 공감했다는 점에서도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의 선정 이유는 ‘채식주의자’가 지닌 소설적 성취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보이드 컨킨 기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섬세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한강은 수상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씨에게 공로를 돌리고 한국에 있는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씨는 “한강의 작품을 번역한 것은 놀라운 특권이자 그녀를 친구로 부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폭력적인 삶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단절하고, 그로인해 점차 죽음에 다가가는 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해외에서 번역 출간되자마자 인기를 끌 만큼, 주제의 보편성과 문체의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초현실주의에 뿌리를 둔 폭력적이고 관능적인 소설”이라고 평했으며 미국의 출판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채식주의자’를 올해 가장 기대되는 소설로 꼽기도 했다.

또한 2015년 영국에서 출간 당시 런던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가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리스트 2위에 올랐고, 2016년 1월에는 영국 포일스(Foyles)서점에서 소설분야 톱10에서 1위에 올랐다.
평론가인 조선대 국문과 김형중 교수는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한강의 다른 소설들도 매우 시적이면서도 ‘지독한’ 면이 있다. 작가는 하나의 주제를 대충 처리하지 않고 갈 데까지 극단으로 밀고 간다. 그런 측면에서 한강은 천상 예술가다”라고 평한다.
무엇보다 한 작가의 소설은 치밀한 구성, 섬세한 감수성, 울림 있는 주제의식이 절묘하게 교직돼 있어 독특한 아우라를 발한다. 문단 안팎에서는 장인정신에 근거한 글쓰기가 한강을 차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는 평가다.

한강의 5·18소설 ‘소년이 온다’ 주목

소년이 온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 눈을 감고 있던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문득 빠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 (‘소년이 온다’ 중에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 ‘소년이 온다’(창비·2014)가 광주의 5월을 다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무자비한 국가 폭력이 어떻게 어린 생명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대다수 어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기존의 오월문학과 변별된다.

작가의 시선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의 광주와 그 이후의 시간에 닿아 있다. 당초 이 소설은 80년 광주의 5월을 다뤄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할 당시(2013년 11월 2014년 1월)부터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소설은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부조리한 폭력에 맞서 시위현장으로 나서야 했던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을 절절하게 풀어낸다. 스토리는 5·18 당시 시위대 속에 있었던 친구의 시신을 찾는 중학생 동호의 이야기다. 동호와 함께 시위대에서 행진을 하던 정대는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중학교도 못 마치고 공장에 들어가 동생 정대를 뒷바라지 하던 누나 정미도 그 봄에 행방불명된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열다섯 어린 소년은 시신에서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한 작가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 해외 번역 출간 등을 이야기했었다.
“제가 작품을 썼다기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80년 광주를 체험했던 시민들이 작품을 썼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는 동안 저의 삶을 온전히 그분들께 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한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는 열세 살 때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보여준 사진첩”이라며 “그 사진첩에는 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참혹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비록 십대였지만, 당시 그 사진첩을 매개로 인간의 존엄은 어떠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됐다고 덧붙인다. 그녀가 인간의 폭력과 잔혹함, 그로 인한 상처와 회복의 문제에 천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은 폭력적인 진압을 핵심사건으로 서사가 전개되지만 이후 펼쳐지는 저항과 고문 등도 현장감 있게 다뤄진다.

이렇듯 소설은 무고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듯한 진심 어린 문장들로 어느덧 그 시절을 잊고 무심하게 5·18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여전히 5·18의 트라우마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무한다.
한 작가는 “이 작품은 80년 광주의 이야기지만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특정 국가나 지역에만 한정할 수 없다”면서 “인간 존엄에 대한 보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질문과 사유를 던져준다”고 강조했다.
2014만해문학상 시상식에서 부모님과 함게(창비제공)


소설가 한승원이 본 딸 한강

“그 아이는 늘 혼자 생각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 안 보여서 찾으면 자기 방에 누워 있곤 했다. 내가 ‘거기서 뭐하니?’라고 물어보면 ‘공상을 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눈빛은 꿈을 꾸는 모습이었다. 혼자만의 동화적인 몽상을 즐기던 시간이 결국 오늘의 소설가로 키우지 않았나 싶다.”
딸 한강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자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한국 문단의 거장인 한승원 작가는 전화통화에서 “딸이 출국하면서 ‘마음 비우고 떠나니 아버지도 비우고 계셔요’라고 말했다”며 “그러나 수상 소식을 듣고 나자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딸은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는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흐뭇해했다.
한승원 작가는 딸의 작품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평을 곁들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어보면 굉장히 시적이고, 서정적이며, 신화적이다. 우리 세대와는 다른 빛깔과 특질이 있는데 섬세한 문체와 감수성을 토대로 한 작품의 아우라가 (비록 내 딸이지만) 참 매력적이다.(웃음)”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중흥초등학교까지 다니다 1980년 1월 서울로 전학을 간다. 그 즈음은 한승원 소설가가 동신중학교 국어교사직을 접고 전업 작가생활을 하기 위해 상경을 한 시기다. 한 작가는 “딸은 광주의 5월을 서울에서 간접체험을 했다. 내가 광주에 내려가서 구해온 사진첩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당시의 강렬한 기억이 오늘의 ‘채식주의자’, ‘오월이 온다’와 같은 작품 창작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강은 어떻게 문학의 길로 들어섰을까.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작가들의 방은 온갖 책들로 가득하기 일쑤다. 한강은 소설과 시 등 다양한 서적으로 채워진 아버지의 집필실을 보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사실 모든 예술가가 그렇지만 작가는 혼자만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직업이다. 딸은 밤이면 새벽녘까지 타자기 앞에 앉아 소설을 쓰는 아버지(나)를 보면서 자랐다. 그 모습을 통해 작가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 지를 체득한 것 같다.”

한승원 작가는 그러면서 “만약 아버지가 작가로서 존경받지 못한 존재였다면 결코 딸은 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승원은 그동안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물에 잠긴 아버지’ 등 신화적이면서도 원형적인 작품을 써왔다. 두 부녀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로,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특이한 이력을 지닌 문인 집안이다.
“큰 아들 동림이도 소설가고, 딸 강이도 소설가고, 막내 아들 강인이는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한 뒤 소설을 쓰고 있다. 자식들을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놔두는 것이 산 교육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한승원 작가는 “내가 작가로 활동하던 70, 80년대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대부분의 작가들의 자녀들을 의대나 법대에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내 와이프(임감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학을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며 오늘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이 또한 아내와 자식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았을 거라 덧붙이면서.
“나는 문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작가적 생명력이 끊임없이 이어지려면 불도우저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소재를 잡으면 끝맺음을 할 때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한 사람의 예술가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 ‘검은 사슴’(문학동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 지성)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박성천<소설가>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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