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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일요일)

因綠 / 茶人 황기록 - UCC회장 신점표

찻집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의형제의 연 맺어
30년 茶緣… 茶자료관 茗友堂 설립 후원
2016. 06.14(화) 10:22확대축소
30년 다연을 맺고 있는 황기록 선생과 신점표 회장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 혈연, 지연, 학연이나 부부간의 인연처럼 생래적이거나 만들어지는 인연도 있고 우연하게 맺어지는 우연도 허다하다.
인연 가운데는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있는가하면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악연도 있게 마련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서로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악연은 반대로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선연(善緣)도 때로는 해를 주기도 하고 악연(惡緣)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연이듯 악연이듯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가름침도 전한다.

茶人 황기록(77. 黃紀綠) 선생과 건설사업가 신점표(48. 申点票) UCC그룹 회장은 좋은 인연의 사람이다. 찻집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30년을 이었으니 전생에 한참 깊은 인연이었을 것이다. 나이 차이도 30년이나 된다. 신 회장은 실제로 황기록 선생의 장남과 같은 또래다. 의형제의 연을 맺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여전히 형님이요, 동생이다.
신 회장은 황기록 선생을 가리켜 “황차 같은 분”이라고 말하고 황 선생은 아우 신 회장을 가키려 “당산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답한다. 깊은 신뢰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에 두 사람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황차 같은 분, 당산나무 같은 사람”

황기록은 차인이기에 앞서 화가다. 개인전을 다섯 차례나 가졌고 한국미협의 고문이자 한국수채화작가협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젊어서 몸이 좋지 않아 차를 가까이 하다가 예술의 거리에 ‘마당’이란 찻집을 냈다. 2년 뒤 지금의 문화전당 자리로 옮겼는데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짜리 청년 신점표를 만난다. 그가 지금의 부인이 된 아름다운 처녀와 찻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젊은이들은 전통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다. 때로는 바둑을 두면서, 때로는 차 대신 대포를 마시며 세대가 다른 두 사람은 각별히 친해질 수 있었다. 황 선생이 찻집을 그만 둔 뒤에도 같이 야생차를 따러 동행하면서 형제의 정을 깊이 새겼다.
명우당


신 회장은 25살 때 강산건설이라는 일반건설업을 설립했다. 그러다 99년 중도건설이라는 종합건설회사를 출범시켰다. ‘시선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만들어가는 젊은 기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무섭게 뛰었다. 염주체육관 내 다목적 체육관 공사를 비롯해 조선이공대 기숙사 신축공사를 했고 곳곳에 중도 다이아빌과 자체브랜드인 블루시안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역량있는 사업가’로 떠올랐다.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지역사회를 위한 일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그 첫 사업이 차 자료실 개관이다. 물론 그가 차 자료실에 뜻을 둔 것은 황기록 선생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 이미 차의 매력에 깊숙이 빠져있었고 차와 관련된 자료들도 상당수 수집된 상태였다. 이렇게 해서 2005년 명우당(茗友堂)이란 차 자료관이 생겼다. 회사 형편에 때문에 장소를 몇 차례 옮겨야 했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현재는 광주시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로 옛 그랑비아또 용봉점 건물 1층에 있다.

자료관 명우당에는 한국차의 역사자료 가득

명우당에는 한국차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부터 차제조법, 차를 만드는 다구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초의선사 전집을 비롯해 응송 스님, 박영희 스님의 차에 관한 책, 민속자료와 광주의 역사에 관한 자료 등도 갖춰져있다. 광주·전남 차인들은 물론 다른 지역 차인들도 찾아오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지역사회를 위한 두 번째 일이 장학사업이다. 2005년 JDF (Jung Do Family) 장학회를 설립해 2006년 25명, 2007년 42명, 2008년 41명에게 장학금을 주었고 2011년 재단법인 심신장학회로 개칭해 장학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장학회의 선발 방식도 독특하다. 공부를 못하거나 가출하는 아이들, 가난하고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전발해 장학금을 준다. 기금은 4억 정도이지만 이자 보다 몇 배나 많은 액수를 현금 출연하여 중학생 중·고·대학생, 대학원생을 지원한다.

신 회장은 2015년 새로운 방식의 건설업 형태의 협업조직인 UCC(United Constration Companies)를 만들어 구산건설, 주) 심산건설, 주)이오스, 토르시디(유) 재) 심산장학회, 월드종합건설(주) 제이디건설(주) 등을 거느린 그룹(UCC)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총 매출이 4천억원을 돌파해 전국 건설도급순위 500위권에 들기도 했다. 신 회장은 황기록 선생과의 인연 말고도 현재 심산건설의 이상일 대표와도 형제의 정을 맺어 그의 호를 따서 심산건설과 심산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항상 다정한 형제로 살고 있는 두 사람


여기서 잠시 황기록 회장의 이야기를 들쳐보자. 그는 여수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퇴하고 군대에 입대했다가 광주로 올라왔다, 아무 연고도 없었기에 때로는 막노동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20대 후반에 실내장식 일을 시작했으나 돈을 벌지는 못했고 몸이 좋지 않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일본유학을 하고 돌아온 조카로부터 일본차 이야기를 듣고 차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전통찻집을 열었고 찻집이 인연이 돼 한국제다 고 서양원사장 등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렇게 하여 1985년 무등차회를 결성하게 된다. 중요 멤버가 장복룡 임춘평 강도순 강덕순 창미자 황성빈 심경문 등이다. 또 90년에는 광주지역 차회의 원조인 요차회(樂差會)에 가입해 잔일을 도맡게 된다. 창립멤버가 고 이강재, 고 서양원, 향토사가 박선홍, 언론인 김정호, 김동현·박광순 교수 등이다. 또 이 무렵 전국규모 차인들의 모임인 사)한국차문화협회가 결성되는데 여기서도 많은 일을 한다. 창립회원은 고 이강재, 고 서양원, 인천의 고 이귀례, 감승희 등이다. 초대 이사장을 이강재씨가 맡았다가 이원홍 전 문공부장관-이귀례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차회는 차를 만들어 만시며 차이야기를 하는 격조 있는 모임이다. 황기록은 요차회의 일을 맡아 진행하면서 오랫동안 소식지를 만들었는데 이 자료들을 모아 요차여담(樂茶餘談)이란 책을 펴냈다. 또 자신의 차생활을 회고하는 ‘초생(初生)을 따다가’란 책을 내기도 했다.

황기록은 이제 우리지역의 차인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현재도 요차회의 부회장을 맡아 일하면서 명우당 후원회원들에게 전국의 차회 관련 소식과 정보를 이메일로 전하는 배달부이기도 하다. 오는 6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은암미술관에서 문화가 있는 날의 행사로 차이야기를 강의할 계획이다.

“차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차 때문에 신 회장 같은 좋은 동생도 만났고 전국의 차인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차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황기록 선생의 회고다.

차가 좋아 차에 깊숙이 빠져 살았지만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찻집 문을 열었던 80년대 중반에 다시 붓을 잡았다. 5년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려 89년 광주 궁동갤러리에서 유화전을 열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유화가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 수채화로 바꿔 지금껏 수채화작업만 하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깊은 맛이 스며있는 수채화가 자신의 성격과도 맞았다. 이후 상계갤러리, 무등갤러리, 광주시립미술관 서울분관인 라이트갤러리, 은암미술관 등에서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했는데 조금 거짓말을 보태 ‘솔더 아웃’ 이었다. 전국의 차인들이 한 점씩 거들어 주었다. 그래서 힘을 내 또 다시 차밭을 누비며 부지런히 현장사생을 다녔다.

말없이 눈빛만 보고도 심정 헤아려

그는 한때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7호 이연채 명인과 가까이 지낸 적이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남도의 전통음식에 많은 공부를 했다. 훗날 이연채 명인의 음식자료들을 모아 ‘남도의 전통음식’이란 책을 엮어내기도 했다. 이 때 익힌 음식솜씨가 훗날 사생회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한국수채화협회, 광주사생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현장 사생을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된장과 간장만 있으면 언제든지 현장에서 채취하여 즉석요리를 해내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라는 것. 차를 우려낸 뒤 찻잎을 묻혀 내기도 하고 산에서 나는 나물이나 약초를 뜯어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반찬을 내놓기도 한다.
황기록 선생 작업실


2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화실도 건물주가 거저 내어주었다. 그래서 1년 동안 그린 그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선물로 드린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니 그림으로 답하는 것이다. 올해 희수를 맞은 황화백 주변에는 조용한 사람들이 많다. 차인들도 그렇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조용조용 성찰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슬하에 2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고려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회사에 나가고 둘째는 조선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디자인사업을 하고 있다. 연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고 있지만 낮에는 그림이 있어 외롭지 않고 밤에는 황차가 있어 고즈넉하다.

한편, 신 회장은 완도출신으로 일찍이 광주로 이사해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광주대 공대, 고려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전남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슬하에 는 1남 2녀를 두었다.

명우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영락없는 형제다. 사업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당산나무’처럼 든든하고 깊은 맛의 황차처럼 향기가 깊다. 오랜만에 만나도 “별일 없제?” “식사는 하셨오?” 그런 옛날식 인사가 끝이다. 눈빛만 보고도 서로를 알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炯>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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