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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일요일)

안백순 이헌서예박물관장

함평에 秋史박물관 설립 신중하게 검토
이퇴계 이율곡 한석봉 등 2천여점 수집
2015. 01.22(목) 14:01확대축소
이헌박물관 안백순관장
2014대한민국국향대전이 열린 함평에서는 함평군이 생긴 이래 최대의 문화행사가 열렸다. 추사 김정희 선생(1785~1856)의 글씨 46점, 현판 9점, 묵서화 4점, 간찰 10점, 기타 2점 등 모두 70여점의 작품이 함평군립미술관에 전시된 것이다.
이 전시회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찾아와 관람했다. 추사를 흠모하는 몇몇 사람은 전시장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큰절로 예를 갖추고 전시를 관람하는 등 그 어느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숙하고 경건한 전시가 계속되었다.
전시작 가운데는 추사체의 원류가 되는 서한시대 예서의 필의를 담은 <추사필첩> 등 희귀작품을 비롯해 <도화도원도(桃花桃源圖)> <6곡병풍>, 수억을 홋가하는 목판현판 ‘무량수각’ 그리고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등과 주고받은 편지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추사, 남도에서 만나다’전이 함평에서 열린 것은 함평 나산 출신으로 서울인사동에서 이헌서예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헌(奇軒) 안백순 관장(82)의 큰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추사전시를 요청했으나 지방에서는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었는데 안병오 함평군수, 안수웅 함평군립미술관자문위원이 서울까지 올라와 간청한 것. 값비싼 작품들인데다 보험료와 작품훼손 우려 등이 있어 지방전시를 꺼려왔으나 고향의 요청마저 물리치기 어려워서 응한 것이다.
안백순 관장은 “고향이라는 말이나 고향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 아니냐”면서 “평생을 수집한 작품을 고향에 맨 먼저 선보이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전시기간동안 여러 차례 함평을 찾은 그는 고향에 서예박물관(추사박물관)을 설립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함평군에서도 적극적인 노력을 펴고 있는 상태다.
사실 그에게 고향은 아픔이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두 번 성묘하기 위해 오갈뿐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 수대를 거쳐 누려온 집안의 영화가 아버지 대에 들어 몰락했고 이로 인해 형제들도 어렵게 공부하고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원래 안백순 관장 가계는 수 천 석의 농사를 짓던집안이다. 증조부 만암(晩岩) 안인환선생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인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사사하고 우국지사 심석(心石) 송병순(宋昞珣)과 교유하던 선비다. 또한 할아버지 안 당 선생은 나산면장과 평의원을 지낸 유지다. 월촌(越村)하긴 했지만 안종일(安鍾一) 광주광역시 초대교육감과 같은 집안이다. 그런데 부친 대에 들어 가문이 몰락하면서 모두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 고향은 아픔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곳’이기도 했다고 술회한다.
안백순은 증조부 슬하에서 추구(抽句) 동몽선습(童蒙先習) 등을 배웠기 때문에 문방도구나 전적(典籍) 등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청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내고 조대부고와 전남대 상대가 목포에 있을 때 이곳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이후 자잘한 일을 하다가 1967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에 들어가 동산문화재 등록과 문화재매매업자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다.
‘사법경찰관리와 그 직무법위에 관한 법률’ 제정도 그가 맡았고 도난당한 수종사 금동불상 6점도 환수했다. 또 1973년 경주박물관에서 분실된 금관과 일괄유물 그대로 환수하기도 했다.
문화재 관련 업무를 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유명한 선비나 서예가들의 작품이 홀대받는 것이었다. 60년대 들어 도자기는 비싼 가격에 매매되고 목공예품은 개조되어 구라파나 미국 등지로 팔려나갔지만 서화를 거들떠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서는 파지가 되어 가구나 벽속의 속지로 사용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또한 소중한 역사 자료들을 훼손시키는 것은 선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서예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추사-도화도원도


40여년 동안 서예작품 2천여 점 수집

맨 처음 수집한 작품이 석파(石坡) 대원군(大院君)의 간찰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천원이면 좋은 작품을 살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때부터 2만원 남짓 받는 월급에서 2,3천원 씩을 떼어 주로 서예작품만 수집하기 시작했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이라 가족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고 진품이 아닌 것이 있을 경우에는 낙망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옛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접을 수 없어 40여년 수집가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작품이 2천여점으로 현재의 이헌 서예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가운데는 이번에 함평에서 전시된 추사의 작품 70여점 이외에도 50여점이 더 있으며 추사 작품만큼은 호림박물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알려진다.
그가 추사에 집중한 것은 그의 인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 뿐 아니라 실학자로서 서예가로서 보여준 고매한 인품에 끌려 그의 작품이 어디에 있다는 말만 들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상당수의 작품은 인사동에서 만난 것들이지만 시골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르내렸다. 35세 때 산 간찰은 30만원으로 자신의 일 년 반 동안의 급여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한번 고서화에 맛을 들인 사람은 “쫛쫛쫛도 판다”는 말이 있듯이 돈을 빌려서라도 사 모았던 것이다.

“수집된 작품들은 내 분신이자 자식 같은 마음 들어”

“정말로 발품을 팔아 사서 모은 것들이기에 자식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안백순 관장은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작품 하나하나가 돈의 가치를 떠나 가족이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라 말했다.
이헌 서예박물관에는 추사 이외에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인물들의 간찰이나 작품이 많다. 알려진 대로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는 이황과 이이를 가리켜 ‘청조문학의 일인자’로 평가한 바 있다. 한석봉과 안평대군의 서예작품도 열심히 수집해놓았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매일 인사동 이헌서예박물관에 나가 일일이 작품을 살피고 혹여 먼지라도 내려앉으면 손수 닦기도 한다.
안백순 관장은 지난 84~8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한국고미술협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고미술협회는 진정한 애호가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어 권위도 대단했다. 이곳에서 작품을 감정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면 밤새워 토론하는 등 “참으로 보람을 느끼던 때”였다.
“이번 ‘추사, 남도에서 만나다’전을계기로 고향에 자주 오다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친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고향을 떠났지만 그래도 각자 열심히 살아서 작은 성공이라도 이뤄냈기에 고향에 뭔가 남겨두고 싶기도 합니다. 여건이 마련되면 나산지역이나 함평읍내 어디에 서예박물관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안백순 관장은 “고미술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라면서 “행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질 때 좋은 문화시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술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추사-효우성경

이번 특별전은 추사의 시기별 글씨와 문인화, 서예가와 문인화가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서화가 추사의 삶’, 서론과 시문, 경학사상을 담은 ‘서예와 문학, 경학사상’, 가족에게 그리고 제자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추사가 보낸 편지’,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소치 허련 등 교유관계를 보여준 ‘추사와의 만남’등 소 주제로 나눠 전시되었다.
10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된 이 전시회는 무려 1만여 명이 관람, 국화축제를 더욱 빛냈다.
한편 추사 김정희 선생은 충남예산에서 태어나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우도 암행어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24세 때 연경에 당대의 큰 학장 완원, 옹방강,조강 등을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40년대 제주도와 북청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학문에 힘을 썼고 서예에서는 중국과 우리의 서예를 녹여 추사체를 창립, 독특한 추사체를 완성 하였다. 또한 “그림에도 책에서 풍기는 기운과 글자에서 배어나오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을 강조했던 진정한 선비이기도 했다.
제주도 유배지에 있을 때 이상적이 보내준 책 선물로 받고 세상인심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받고 제자인 이상적의‘세상의 권력과 이익의 도도한 흐름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권세나 재력의 잣대로 나를 대하지 않았던’마음을 <세한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너무 유명하다.
추사는 금석학자로서 함흥 황초령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풀이하고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라며 ‘진흥’이라는 이름도 왕의 생전에 사용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추사 김정희는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져 베이징으로부터 불경 400여 권과 불상 등을 가져와서 마곡사에 기증하였으며 71세 때 세상을 떠났다.
문집으로 ‘완당집’저서로 ‘금석과안록’, ‘완당척독’ 등이 있고 작품에는 ‘묵죽도’, ‘묵란도’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오영진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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