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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일요일)

“평생 그린 그림 고향에 기증하고 죽고 싶다”

6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중국 흑룡강성 이건의 화백
2013. 01.04(금) 13:18확대축소
68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이건의 화백
고향, 그것은 영원한 그리움의 샘이다. 수많은 추억들이 샘솟는 우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지지리 가난했던 시절, 작은 이불 하나로 겨울을 나면서 살과 살을 부비며 살았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굴뚝에서 그리움이 연기처럼 솟아오를 것만 같은 곳, 고향.

다섯 살의 소년에게 고향, 아니 돌아올 수 없는 고국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다섯 살 때 가난을 피해 떠났다가 68년 만에 돌아온 고향, 그 산하가 그리워서 평생을 화폭에 담았던 노(老)화백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다. 이제 차라리 고향이 낯설지만 지리산 자락의 폭포소리는 여전히 남도 땅 곳곳을 울리며 2013년의 새해를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국화가 이건의(李健義) 선생. 정확히 말하면 중국화가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 국적의 한국화가다. 그가 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났다가 68년 만에 자신이 그린 많은 그림들을 안고 고향 땅을 밟았다.

“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제가 고향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들을 고국에 기증하려 왔습니다. 고향사람들이 이렇게 잘사는 것을 보니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딸과 사위와 함께 고국을 찾은 이건의 화백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조용조용 말을 이었다.
“ 제가 고국 땅을 밟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이번 고국 방문도 중국정부와 대한민국 통일부의 도움이 없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고국을 방문한 사연은 이렇다. 1939년 구례군 간전면 간문리에서 태어났던 이건의 화백은 다섯 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중국 흑룡강성으로 떠났다.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 화백의 가족은 그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6.25가 끝난 뒤 북한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전쟁복구 인력이 많이 필요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 그곳에서 2년간 거주하다가 다시 흑룡강성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이곳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이 화백은 중급전문학교(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의 미술간부 배훈반(培訓班)을 졸업했다. 또 심양의 로신 미술학원 중국화반을 수료하고 가목사 대학 기초의과대학 회도실 주임(고급 실험사)를 역임하고 현재 미술대학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가대사전, 중국 당대미술가명인록, 중국 역대서화평가 대사전에도 등재된 유명화가이기도 하다.

또한 중국 동방문화연구회전시회에 입상한 데 이어 중화인미술작품집 표지화 작가, 중국 산동예술박람회 금상, 중국 미술가협회 중국화 300가전 입상, 중국 소수민족미술작품전 은상을 수상한데 이어 최근에는 제 18차 중국인민대표자회의가 주최한 작품 공모에서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비림박물관, 중국미술가협회, 북한 묘향산 국제우호전시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흑룡강성 미술관, 하얼빈시 미술관, 심천시 미술관 등에서 여섯 차례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이처럼 화려한 화력(畵歷)을 지녔으면서도 이 화백의 중국생활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딛는 것이었다. 더 활발한 작가활동을 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적상의 이유로 국가대전 출품이 어려운 경우가 빈번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도 오가는 고향땅도 이렇게 어렵게 밟아야 했다.

이 화백은 언제부턴가 이런 외로움을 견디면서 그림을 모으기 시작했다. 주로 대작 위주의 그림을 남겨 고국에 기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중국화도, 북한화도 아닌 독특한 개성을 머금고 있다. 실사(實寫)를 바탕으로 하면서 중국화의 준법들을 자유롭게 구사해 힘이 넘친다. 특히 하늘을 나는 새가 세상을 내려다본 시점인 조감법(鳥瞰法)으로 그려놓은 풍경화와 금방이라도 물을 쏟아낼 것 같은 은 폭포수, 그리고 설경(雪景)은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 제가 평생 그린 그림들이 고국에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특히 그림을 공부하는 젊은 후학들에게 작으나마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화가로서 뿐 아니라 인생살이에도 성공한 편이다. 산부인과 의사를 부인으로 맞아 자녀들을 잘 키웠다. 큰 딸은 광저우에서 성형외과 의사이고 막내딸도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건의 화백과 딸 사위


그는 어쩌면 마지막 일 줄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딸과 사위를 대동하고 고국을 방문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를 만나 대작을 기증하고 광주에서는 황영성 광주시립미술관장을 만나 작품기증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나눈 바 있다. 또한 영암 아천미술관(관장 유수택 )에도 들러 그림 1점을 기증하고 임은순 학예실장과 농촌지역의 사립미술관 운영실태와 정부의 지원 등에 대해서도 깊은 얘기를 나눴다.

“작품기증에 따른 절차가 마련되는 대로 가족 모두와 다시 한 번 고국에 나와 말만 들어도 가슴 뭉쿨한 우리나라, 우리고향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대한민국의 진산 지리산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보고 싶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지형원 발행인>


지형원 mtong@mto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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