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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7일(금요일)

"5월 격전지 한복판에 평화와 휴식이 흐르는 문화시대 활짝"

이영철 아시아문화개발원장 인터뷰
2012. 03.23(금) 15:27확대축소
이영철 아시아문화개발원장
-15년 만인가요? 제2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다시 광주에 오시니 반갑습니다. 15년 만에 다시 본 광주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들려주시지요.

-광주가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훨씬 커지고 활력적이고 게다가 매력을 겸비해가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저에게는 광주와 어떤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우연한 초청으로 15년 전 광주비엔날레에서 기획자로 왔을 때 무진장 열심히 했어요. 헤럴드 제만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거물급 기획자, 초대형 학자들을 대거 초청하거나 참여시켰고 국제심포지엄에서 아시아성의 문제를 탈식민화의 관점에서 다루었어요. 가야트리 스피박, 슬라보에 지젝, 폴 비릴리오, 마틴 제이, 나오키 사카이, 첸쾅신, 미건 모리스, 로렌스 그로버스버그 등이 그들이었고 이제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문화발신지로써 입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사 이래 그리고 현재 전세계의 문화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업으로 알고 있어요. 15년 전에 저는 ‘탈중심’을 비엔날레의 이념적 가치로서 내세웠는데 지금 광주는 아시아중심이란 단어에 온힘을 쏟는 듯합니다. 이것이 정체성에 대한 심리적 강박에서 나온 것이 아니길 기대합니다. 미국에서 소수계의 정체성 논리로 눈부신 활동을 하다 일찍 작고한 저의 친구의 이런 말이 있어요. “정직성 앞에서는 정체성이 발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인데, 정체성이 광주에서 함부로 오용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백남준 선생도 “문화적인 애국은 정치적인 애국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말을 한적 있어요.
2회 광주비엔날레를 전세계에 금방 알려지게 만든 주인공인 헤럴드 제만은 그 용어가 ‘트릭키’하다고 말했어요. 아시아문화중심에서 중심이란 단어가 주변, 타자를 만들어내는 괴로운 용어이기 때문에 ‘역점’이란 말로 바뀌면 좋겠어요. 허세부리지 않고 솔직하고 힘차다는 뜻이 국제 협력을 이끌어내는 점에서 좋아요. ‘아시아문화역점도시’.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아시아문화개발원이란 제목도 문제가 있어요, 문화를 개발한다는 발상이 중심 논리와 통해 있거든요. 지금 시대에는 개발하면 오히려 중심이 안됩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렀네요.

-아시아문화개발원 초대원장을 맡으셨는데 이곳에서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게 되며 문화개발원장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 서로 전혀 몰랐던 이병훈 추진단장께서 이 자리를 저에게 맡겼을 때, 저는 이것인 ‘천명’이라고 직감했습니다. 소통 불통과 생명 경시의 세계에서 백남준이 평생 고뇌하며 유쾌하게 걸어 나간 그 길에 새겨진 스피릿을 온 세상에 펼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다만 약속된 제 임기가 3년이기 때문에 영원히 할 것처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연임을 믿지 않습니다. 일단 시급하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을 향해 총력을 기울이는 일이 우선이고 그 과정에서 광주시를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 도시로 만드는 방식에 대해 다각도에서 연구할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문화의 전당이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 국제적인 문화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아시아 유럽을 위시하여 외국인이 사무공간에서 5명에 한명 비율이 되어야 한다고 보며, 콘텐츠로 먹고 살려면 한국의 우수한 인력이 예술 분야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영역과 어울려 세계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합니다. K-POP 안에 이상과 비전, 리듬을 더욱 크게 불어넣어 지구 위를 돌며 글로브 댄스를 추게 하는 것이 백남준의 드림이었어요, 칭기스칸과 존 레넌의 정신이 살아오고, 민주와 인권의 가치, 그리고 백남준의 꿈이 한데 어우러지는 방식으로서의 새로운 K-Pop의 탄생. 그것이 개발원의 미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시아문화전당과 가까운 광주시 사동과 양림동 일대가 아시아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나요. 참고로 이 일대는 100년 역사의 수피아여고, 기독병원을 비롯 선교사 사택 같은 근대문화유산이 많은 곳이어서 아시아지역과 공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여기에 대한 견해는?
-돈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해요. 지금 우리는 시간을 마구 훼손하고 있어요.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흔적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니까요. 식민화, 근대화의 경험을 한 아시아 국가들과 시간의 결을 함께 호흡하는 중요한 역사적인 장소라 봅니다.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 건물과 아시아문화전당을 연결해 아시아 각국의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품격 있는 문화지구로 조성해 가는 방향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광주시에서는 동명동의 분위기가 좋아보여요,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시민 예술체험장 운영 등 대중문화활동의 중심지로 활성화시켜, 전당 주변이 문화예술의 생산․유통․소비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거리로 되살아나기를 기대합니다.


- 이 원장께서는 전시기획자로서 광주비엔날레, 백남준 미술관 전시기획 메가 이벤트를 해오셨을 뿐 아니라 안양의 특정지역을 문화적으로 리모델링한 ‘안양프로젝트’를 성공시키셨는데 그 사업에 대한 개요와 추진 방법, 그리고 그런 프로젝트를 광주에 적용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그것은 조각공원을 만들어달라는 안양시의 요구를 바꿔서 신개념의 환경예술프로젝트로 전환시킨 사례입니다. 공공시설물을 예술작품으로 조성하고 모든 작품을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아마도 거의 국내 최초의 국제적인 공공예술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네요. 광주가 그런 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낡은 것을 잘 보존하는 리모델링의 기술을 시민들이 배워나가는 일상 생활 문화 운동이 펼쳐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신도시에 간판 규제, 색상 및 스케일부터 철저히 규제하고 단정하고 유머러스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섬세하게 고려하는 도시 개발 정책이 요구됩니다.

- 평소 남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특히 남도음식에 애찬론자 이기도 한데 ‘숲 밖에서’ 남도음식을 바라보았을 때 안타깝거나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남도음식은 풍부한 식재료와 손맛을 통해서 국내외적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젓갈을 많이 사용해 짠맛이 좀 강한 것 같아요, 건강을 많이 따지는 요즘에는 젓갈이 점점 기피 음식이 되고 있어요. 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의 맛이 점점 옛 맛이 아닙니다. 맛이 좀 순하고 편해지면 좋겠고 기품 있게 그리고 ‘탈한국적’으로 될 필요가 있는 개성적인 프리젠테이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음식의 가짓수도 확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식사할 때 분위기가 조금은 정갈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광주에는 문화적 랜드마크가 없는데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광주폴리와 예술의 거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 지금 설립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바로 랜드마크입니다. 화기 충만의 무등산에 ‘거대한 균형’을 만들어주는 수의 기운으로 가득 찬 아시아문화전당. 땅 밑의 흑천으로 내려가 해와 달과 별을 보는 것이 은총이 되는 그런 문화의 시대가 광주에서 펼쳐지는 순간, 한국 정치의 어두운 현대사가 마지막으로 씻겨나가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처절한 격전지의 한복판에 평화와 휴식, 그리고 정서적 쾌감이 넓고 깊게 드리워지는 그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전당은 한국에서 유일하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지하의 대형 문화 시설입니다.
그 내부를 쓰임새 좋게 구획하고 공간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건축 용어로 영어‘폴리(Folly)’에 너무 힘을 주는 그 제스처가 좀 별난 취향이라고 할까. 지금 거리에 있는 것들은 실질적으로 이용 가능한 폴리라기보다는 환경조형물에 가깝습니다. 또 예술의 거리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정말 예술적인지 정직해질 필요가 있어요. 도심은 폴리형 구조물을 만들기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합니다. 거리 가구는 좀더 만들 수 있겠지만요, 무얼 자꾸 만들어 생색을 내지 말고 시간을 잘 간직하고 그런 가운데 맵시를 내는 방식을 연구하고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내용물과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시아문화개발원장으로서 지역민들, 특히 지역의 오피니언리더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글쎄요. 섯부른 견해일 것 같아 망설여지는데요.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하자면, 성찰적인 근대화, 혹은 비판적 지역주의의 관점에서 속도를 조절하고 타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정신, 그리고 감각적으로 유연하고 생동하는 삶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광주의 으뜸 가치는 민주, 인권, 평화를 지향하는 도시의 이미지라 보는데 그 가치는 광주 중심의 사고와는 좀 다른 것이라 봐요. 전지구적 변화와 연결 속에서 도리어 중동 지역의 민주화 운동과 연결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태도의 정치’를 발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과 광주 사이에서 경제적 이권이나 정치적 술수 등에 휘말려 상호 갈등하는 광주가 아니라 좀 더 의지가 굳고 명석하고 착한 광주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게 되길 바래요.

주요 약력
1998년 이후 현재 계원예술대학교 교수(전공 분야: 현대예술창작과 기획)/백남준아트센터 초대 관장(2008-2011)/1회 안양공공예술예술프로젝트(APAP) 총감독/2회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2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전시기획실장)/독일 ZKM 국제심사위원, 에치고 츠마리 트리엔날레 운영위원, 경기문화재단 이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자문위원 등 역임.

대담 지형원 대표

박원지 기자 mtong@mtong.kr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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