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클래식의 깊은 맛 함께 느꼈으면”
문화신포니에타 이끄는 정병열 단장
| 2010. 03.22(월) 14:50 |   |
|
그는 참으로 엉뚱한 사람이다. 전남대 공대출신의 공학박사가 내로라는 뮤지션들이 모인 신포니에타의 단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전력을 아는 사람들은 전혀 엉뚱하지 않다고 받아들인다. 우선 그가 고교시절부터 관현악반 활동을 했고 광주시향의 전신인 시민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여기에 한국미술제 초대작가 예술대전 추천작가, 광주시전 서예부 입선, 광주서가협 주최 광주서예전람회 입선 등을 통해 이미 예술적 재능을 널리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깃발만 잡아 달래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랬다. 7년 전 그가 서울에서 한국구조물연구소장으로 일하다 고향으로 내려오자 가까운 지인이 신포니에타의 단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출범만 도와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가 깃발을 들기로 작정한 것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음악인들이 많은데 공연기회가 없어 안타깝다는 얘기를 듣고 즉답 했다.
그렇게 시작한 문화신포니에타는 광주클래식음악의 선도자로서 그 명성을 확보하였다. 곳곳에서 초청해주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후원해주는 ‘동지’ 들도 하나 둘씩 생겼다.
공학박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정단장은 ‘클래식은 어려워’ 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작은 시골마을이나 시골학교, 관공서, 기업체 등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문화향수권은 누구나 다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단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모닝음악회’라는 것을 열기도 했다. 이는 주부들을 위한 음악회다. 처음에는 “누가 아침부터 음악을 들으러 공연장에 오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막상 시작하자 호응이 좋았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회사 나간 뒤 느긋하게 클래식을 접하려는 여성애호가들이 의외로 많았다. 클래식에 스토리텔링을 더하니 재미가 더해졌다. 그렇게 10회가 넘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가 기획한 공연은 대부분 무료공연이다. 높다고 생각하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춰 편하게 즐기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카자흐스탄 정 추선생 음악회도 개최
2006년부터는 광주국제음악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 음악제에서는 광주출신으로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선생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었고 이듬해에는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으로 통하는 정추 선생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 추 선생은 구 소련의 음악가 사전에 올라와 있는 인물로 차이코프스키 음악 계보에서 4대째에 속하는 작곡가라는 해설이 붙어있다.
그는 특히 정추 선생의 곡을 연주하는 음악회 수차례 열었다. 이런 인연으로 국내에서 정추선생에 관한 자료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우연한 자리에서 정 추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가슴을 때렸다. 그는 곧바로 카자흐스탄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광주 출신의 망명 작곡가 정 추 선생의 마음은 시베리아 겨울 추위처럼 얼어있었다. 여러 사람들과의 부질없는 약속에 실망한 나머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통했다. 정 추 선생은 고향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연주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광주시청에서 망명가의 이름을 건 음악회를 광주에서 열었다. 정 단장이 아니었더라면 묻혀버렸을 줄도 모르는 이름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급기야 올해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未行 (미행), 망명자 정추'가 EBS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 모든 성과의 기초가 정병열 단장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기까지 그는 많은 희생을 해야 했다. 물론 ‘희생’이란 단어는 그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은 아니다. 그는 다만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신포니에타 창단 첫 해에는 사비만 1억원이 넘게 들었다. 해외교향악단을 데려와 행사를 치루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또한 그는 ‘수업료’라는 말로 가름한다. 그리고 항상 조용하고 털털한 웃음으로 지나쳐버린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
그는 보람도 컸다고 말한다. 정단장의 본업인 건설기술자문 분야에서 경쟁이 있을 경우에 가능하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는 정단장 손을 들어주는 곳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고 한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에서도 매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아내의 도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매년 자기 주머니를 털어 수 천만원을 쓰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단장의 아내는 지금껏 묵묵히 남편을 지켜보며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최근 국악이나 클래식은 실용음악에 비해 등한시 되고 있지만 음악의 근간은 클래식입니다. ”
이런 신념으로 살고 있는 정 단장은 지금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또 사무실 한 켠에는 피아노와 더블베이스도 오래된 친구처럼 놓여 있다. 해마다 열리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음악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한다. 때문에 음악계에서 아는 사람도 많다. 광주시향 전신인 시민교향악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시향 첼리스트 이승희, 바이올린 수석 김금아, 단무장 지춘섭 씨 등과도 만나 음악운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정단장의 2010년 꿈은 크다. 올해는 지역출신의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상당한’ 수준의 입장료를 받는 음악회를 준비 중이다. 실력 면에서나 자질에서 결코 외부지역에 뒤지지 않은 광주출신의 음악가들을 더 이상 ‘무료 음악회’에 세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이 자존심을 지키고 새로운 문화풍토를 조성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문화신포니에타가 출범할 때 가진 첫 마음으로 돌아가 신인 음악가들의 공연무대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 한다. 정 단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 7년간의 노하우가 쌓여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흰머리를 쓸어 담으며 웃는 ‘쉰살 소년’ 같은 미소에서 광주 클래식 음악의 밝은 선율이 느껴진다.
편세라 기자 psr@mtong.kr 편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