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화의 불가사의 ‘베토벤음악감상실’
운영자 이정옥씨와 음악해설가 안철씨를 말한다
| 2010. 03.05(금) 15:47 |   |
28년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곳, 사람은 떠나고 없어도 음악은 처음처럼 흐르는 곳 ‘베토벤음악감상실(이하 베토벤)’이 바로 문화사랑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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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사람만이 술 마시는 사람들의 속가슴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베토벤을 찾는 사람만이 그 내밀한 이야기를 안다.
베토벤은 지난 1982년 금남로 1가 진내과 6층에 문을 열었다. 클래식음악을 사랑했던 김종성씨(미국이민)가 광주사람들의 가슴이 많이 아팠을 때 이 음악실을 열어 조용한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러다가 그가 미국으로 떠나고 지금의 이정옥씨(55)가 바톤을 받아 스무 해가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토벤은 비가오나 눈이오나 문을 연다. 찾는 이가 없으면 주인 혼자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찾는 이들이 줄어 월세도 못 낼 처지가 돼 문을 닫을라치면 사람들이 주머니를 털어 주인 손에 쥐어주고 말린다. 어떤 노년의 철학교수는 이곳에 철학교실을 열어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 음악으로 돕는 사람, 몸으로 돕는 사람, ‘베살모(베토벤살리기모임’ 후원회를 만들어 도와주기도 했다. 진즉 꺼졌어야 할 불이 결코 꺼지지 않고 이제 서른 해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베토벤은 광주문화의 불가사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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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베토벤에 들어서면 봄 햇살처럼 따스한 안주인 이정옥(55.베토벤음악감상실 대표)씨가 조용히 웃고 있다. 그리고 오후 7시 무렵이면 우리시대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로맨스그레이’ 안철(62. 클래식 음악해설가) 씨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봄 햇살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테이블과 의자에는 28년 시간의 흔적들이 곱게 베어 있다. 고개를 들면 무등산이 눈앞으로 걸어온다. 40여 평의 베토벤에는 7평 남짓한 ‘철학교실'과 10여 평의 ‘영화음악감상실’,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손 때 묻은 나무기둥과 붉은 벽돌들 사이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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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친구와 함께 ‘베토벤’을 인수했다. 아니 베토벤과 결혼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그녀는 아직 독신이다. 그녀에게는 음악, 문학, 종교가 그녀 삶의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특히 독신으로 살며 예술혼을 불태운 브람스를 좋아한다. 바이올린 협주곡 77번과 클라리넷 5중주를 즐겨듣는 그녀에게 베토벤은 삶의 안식이자 휴식처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음악감상실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삐거덕거리는 나무 바닥위에 얌전히 서 있는 스피커와 추억이 묻어나는 LP판들과 함께 ‘빨리 빨리’에 길들여진 세대들이 누릴 수 없는 소박한 나날들을 채색하고 있다.
2007년까지는 친구와 격일제로 일을 하다가 그마저 떠나자 2007년부터는 혼자 맡았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러나 또 그때마다 도움의 손길도 있었다. 2007년에 MBC 송기희 부장이 주축이 되어 만든 ‘베토벤 살리기 모임(베살모)’회원 80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도와주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베토벤은 오늘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채로 우리곁에 서 있는 것이다. 베토벤도 세월 따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음악 감상실에서 예술영화나 발레음악까지를 감상하는 복합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베토벤은 매주 월요일 성진기 전남대 명예교수가 진행하는 ‘니체-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철학교실이, 화․금․토요일에는 안철 선생이 진행하는 ‘화요클래식 영상음악감상회’ ‘금요발레감상회’와 ‘토요고전영화 및 문화자료 감상회’가 이어진다. 매주 1회씩 운영되는 각 프로그램은 대부분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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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클래식음악애호가이다. 현직 영어교사로서 방송에서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을 해설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CD만 3천여개, DVD도 2,000개가 넘는다.
그는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신고와 금호고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정년도 되기 전에 그만두고 아예 ‘음악 속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가 공부했던 60,70년대는 좀처럼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초등학교 시절에 여수에서 일본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NHK방송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맛을 들인 그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독교방송을 들으면서 대곡의 마니아가 되었다.
안씨의 숨은 실력은 지역방송가에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1994~2001년 봄까지 광주MBC-FM을 매주 1회씩 208회를 진행했고 2004년 12월 초부터 2007년 12월 말까지 광주KBS-FM을 3년 1개월동안 진행했다. MBC방송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에는 베토벤에 나와 음악해설을 맡았다. 그는 2003년 ‘노래의 날개 위에’애청자들이 그를 초청해 월 1회 해설이 있는 음악감상회를 열기도 했고 이곳에서 서울 KBS FM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2007년 12월 베토벤은 29인치 TV모니터와 낡은 스피커를 치우고 50인치 PDP 모니터가 들어오면서 번듯한 영화감상실로 거듭난다. 이 또한 마니아 독지가가 선뜻 내놓은 것이다.
안 씨는 이때부터 다양한 주제로 클래식 음악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베토벤 금요영상 음악 감상회’를 시작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휘자 카라얀을 비롯 탄생 150주년을 맞은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등 거장을 추모하는 프로그램과 33개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32명의 소프라노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 비제의 ‘카르멘’등 한 작품을 오페라, 발레, 뮤지컬, 애니메이션, 아이스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감상하는 집중 탐구 시간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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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는 클래식음악, 발레음악, 영화감상까지 더욱 다양해졌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그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선곡하고 편집하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 완벽주의자이기에 모르는 외래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꼬박꼬박 자판을 두드린다. 음악을 나눔으로서 세상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 조용히 자신의 길을 흘러가는 강물 같다. 클래식 음악의 조용한 선율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에서 구도자의 아우라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비단 기자만일까.
베토벤 음악감상실 (062)222-8410
편세라 기자 psr@mtong.kr 편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