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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목요일)

<현동칼럼> 나이 들어 돌아갈 ‘고향집’ 있나요?
2021. 09.14(화) 10:42확대축소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한 후배가 광주로 이사 왔다. 서울에 수십 년 살다 귀향한 셈이다. “나이 들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수 십 년 모았던 책을 정리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3천5백여 권이나 되는 책 중에는 전문서적도 꽤 있었다. 여기저기 도서관에 ‘기증 하겠다’ 전화해보았으나 다들 손사래를 쳤다. 결국 지나다니는 고물상을 불렀다. 전부 털어 단돈 7만5천원, 파지 값이다.

‘책을 열면 미래가 열린다’는데 책은 닫아놓으니 짐만 된다. 책 하나 버리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수십 년 사귀어온 친구와 지인들, 모임들, 잘 다니는 병원, 약국, 먹거리 집, 길거리, 산보 다니는 공원길 등등, 익숙한 관계와 익숙해진 공간을 떨쳐버리고 낯선 환경이 되어버린 고향으로 집을 옮겨온 의지가 대단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향은 낯선 환경은 아니다. 고향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널려있고 아직 옛 친구들도 남아있다.

그런데 왜 다들 일자리를 떠나 백수가 된 후에도 고향으로 못 돌아오는가. 20 여 년 전 ‘원로들 왜 안돌아오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고향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인가? 고향을 위해 한 일이 없기 때문인가?” 국회의원, 장차관을 역임한 지역출신 고위직들이 퇴임한 후 서울에 눌러 살면서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풍토를 질타했었다. 고향의 덕을 입어 높은 지위를 누린 원로들은 ‘빚 갚기 귀향’이라도 했어야 옳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향에 빚을 안진 보통사람에게는 귀향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없다. 본인들도 고향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인지 귀향생각이 별로다. 헤아려보니 내 고교동기 4백 여 명중 3분의 2가 서울에 살고 있다. 나이 들어 귀향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서울 비싼 집 팔아 고향 싼 집으로 이사 오면, 여윳돈이 생겨 여행도 다니고 좋겠다.’ 세상물정 모르는 소견일까. 한 친구는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이 없으니 고향에 갈 일이 없다고 고백한다.

‘서울에 사는 타향인들 중 70%가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딜 가나 자기 집 안마당처럼 살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가 신인류로 추앙받는 4차 산업혁명시대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 고향이던 시대에서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 되는 세상이다. 이제 부모가 아침저녁 쓸고 닦던 고향집이 있는 곳만 고향으로 그리워하던 세상은 지난 것 같다.

세계일주 유람선이라도 식량과 연료를 충전하기 위해 항구에 정박해야한다. 유목민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현대인일수록 마음속 깊이 고향을 그리워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음의 고향이다. 고향집을 가지지 못한 현대인은 고향을 잃어버린 이방인 병에 걸린다. 중학생 때 유학 가서 26년 만에 변호사로 귀국한 방송인 서동주는 “외국에 나가서도 이방인이었는데 고향에 와서도 역시나 나는 이방인이다. 어딜 가야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하다”고 토로한다.

“인생이란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행”. <백경>을 쓴 허만 멜빌이 한 말이다. 모든 여행은 목적지가 있다. 멜빌은 여행 같은 우리인생이 향하는 최종목적지가 ‘고향집’이라고 말한다. 인생여행 출발점도 고향집이지만, 최종 목적지도 고향집이다. 같은 집은 아니다. 출발점은 부모 고향집이지만 우리가 향하는 종착점은 내가 주인인 고향집이다. 곧 떠나야할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어 아침저녁 쓸고 닦는 내 집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서있는 곳이 모두 참이 될 것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제선사의 말씀을 새겨본다. 서재를 쓸고 닦으며 책을 날마다 한 두 권 씩 골라 내버린다. 편안한 주인이 되기 위한 수련이다.

김종남<언론인>


김종남 위원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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