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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6일(화요일)

화순 너릿재라는 이름은 왜 붙여졌을까?

널빤지처럼 넓고 평평한 고개… 板峙·너른재에서 너릿재로
조광조·김삿갓·동학군과 5.18 시민군들이 넘던 역사의 길
2021. 01.13(수) 14:52확대축소
널빤지처럼 평평한 너릿재
화순 너릿재 옛길이 ‘걷고 싶은 전남의 숲길’ 가을길로 선정됐다.
전남도는 산림자원 가운데 치유의 숲길을 계절별로 선정했는데 가을길은 담양 ‘추월산 수행자길’, 화순 ‘너릿재 옛길’, 영암 ‘월출산 기찬묏길’ 이 뽑힌 것이다.

아름다운 숲길은 공모를 통해 접수받아 설문조사와 전문가 현장심사 등을 거쳐 계절별로 3개씩 모두 12개소를 선정했다. 봄길은 구례 ‘지리산 밤재부터 현천마을길 구간’, 목포 ‘유달산 천년 숲길’, 곡성 ‘섬진강 둘레길’ 이 뽑혔으며 여름길은 보성 ‘제암산 더늠길’, 영광 ‘물무산 둘레길’, 목포 ‘고하도 해변 숲길’, 겨울길은 진도 ‘첨찰산 난대숲길’, 광양 ‘달뜨는 길’, 고흥 ‘팔영산 치유숲길’ 등이다. 전라남도는 12개 숲길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고, 전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숲길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걷고 싶은 전남의 숲길 ‘가을길’ 선정

너릿재는 화순읍 이십곡리에서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무등산에서 장불재로 이어져 남쪽 수래바위산과 지장산 소룡봉 사이를 통과하는 재다. 현재는 국도 29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무등산에서 화순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는 산이 분적산(412.5m)으로 광주 남구와 동구, 화순읍의 경계를 이룬다. 남구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치마봉(205m)에서 쥐봉(195m)을 걸쳐 분적산으로 연결된다. 분적산은 다시 정광산(353m)~건지산~죽령산을 지나 지석강으로 이어진다. 남구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산지는 옥녀봉(233m)에서 금당산~황새봉(187m)~화방산~송학산~봉황산 지나 황룡강으로 낮아진다.
너릿고갯길


분적산 능선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동구 용산, 월남동, 내남동으로, 서쪽으로는 금당산 능선을 경계로 풍암동, 남구 송암동과 구분되고 남쪽으로는 화순 세량리와 남구 양과동으로 구분된다. 분적산 아래 내지마을은 6명의 판서를 배출한 육판리로다.
지명의 유래는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北距光州界板峙距路九里) 북쪽으로 광주와의 경계에 있는 판치(板峙)까지 가는 길이 9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판치는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이다.”고 수록되어 있다. '판(板)'은 널빤지를 의미한다.

화순 너릿재 옛길이 언제부터 생겼으며 그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문화통 취재팀은 화순군과 향토사학자, 그리고 문헌 등을 토대로 이름의 유래와 역사를 찾기로 했다.
너릿재 옛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화순과 보성 등지에서 광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이 고개를 넘어야 했기 때문에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기록을 더듬어 헤아리면 1519년 기묘사화로 능주 유배길에 오른 정암 조광조(1482~1519)도 너릿재를 넘었을 법하고 쉰일곱 살에 전라도 땅 동복에서 숨을 거둔 김삿갓(1807~1863)도 이 고개를 지났을 것이다.

또 동학농민혁명 (1894년) 당시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많은 동학군이 너릿재 아래 이십곡리에서 학살을 당했는데 이때도 수많은 널(관)이 이 고개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능주 출신의 한말 의병 양회일(?~1908)이 이끈 의병부대도 1907년 화순을 점령하고, 너릿재를 넘어 광주로 가려다가 여기에서 매복한 관군에 붙잡혔다.

너릿재의 아픔은 광복 직후에도 있었다. 1946년 8월 화순탄광의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가 미군과 경찰의 총격으로 1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1950년 7월에는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된 사람들이 너릿재 인근에서 학살됐다. 9월에는 광주형무소 재소자들이 끌려와 너릿재를 넘어 화순읍 교리의 저수지 근처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1980년 5·18의 상흔도 깊이 패어 있다. 너릿재는 5·18 당시 고립된 시민군이 광주의 상황을 외부로 알려 항쟁을 확산시킨 길목의 하나다. 당시 너릿재에는 공수부대가 주둔했으며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5월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나온다. 택시운전사 김사복과 힌츠페터가 광주를 탈출하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넘고 터널을 지났다. 너릿재에는 5월항쟁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왜 너릿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여기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앞서 기록한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해방 직후, 그리고 5.18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널(관)이 지났다고 하는 것이다. 실재로 너릿재는 대낮에도 도적이 나올 정도로 험했다. 60년대에도 농부가 양동시장에서 소 판 돈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다가 죽임을 당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도둑이 많아서 행실이 고약한 사람에게 “칼 들고 너릿재나 갈 놈”이란 말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릿재 정상에서 바라본 화순읍 시가지


또 하나는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가파르고 구불구불하지만 고갯마루는 널빤지처럼 널찍하고 평평해서 ‘너른 재’에서 ‘너릿재’로 변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너릿재 정상에는 검문소가 있었으며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화순, 보성 등지로 가는 여객버스가 이 길을 지났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운행을 멈춘 날이 많았다..
너릿재에서 화순읍내로 내려가는 오른쪽 마을이 압촌이고 신터널 끝자락 왼쪽 마을이 이십곡리인데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압촌(鴨村)마을은 오리 압(鴨)자를 쓰는데 사실 오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화순읍과 너릿재까지가 오리(五里)라는 말인데 거리의 오리를 가축인 오리로 오인하여 압(鴨)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순의 문화연구가 강동원 선생은 “겨울철이면 작은 쥐오리가 떼지어 날아들기 때문에 압촌이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십곡리(二十谷里)도 원래는 ‘숨은 동네’라는 말이 ‘스물 동네’ 로 잘못 전해져 이십곡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재로 너릿재 정상은 넓고 평평해 산길을 오른 사람들이 심호흡을 하는 곳이다. 특히 전망대에서 만나는 320년 느티나무 고목이 옛길의 정취를 더해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읍내 풍경도 장관이다.

연둣빛 봄과 가을 단풍, 겨울 설경까지

너릿재의 봄은 연둣빛 봄물이 가득하다. 4월엔 기나긴 벚꽃 터널이 환상경을 이루며 여름에는 시원한 산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아름답고 붉은 상사화가 지천에 깔려 있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노란 털머위도 만추의 운치를 더해준다. 겨울은 편백과 소나무가 연출하는 원시림의 설경이 장관이다.

숲길에는 편백과 벚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많다. 들꽃도 지천이다. 아름다우면서도 호젓한 숲길이다.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의 운치는 더할 나위가 없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너릿재 도로와 화순읍내 풍경도 장관이다. 옛길은 차량은 다니지 못하고, 사람과 자전거만 오갈 수 있다.

전라도관찰사 성임, 김현승, 김여랑 등 30개 詩碑

구터널에서 너릿재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30여 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조선초기 전라도관찰사 성임(成任, 1421~1484)이 전라고 관찰사로 있을 때 쓴 ‘광주읍루’ 시비가 너릿재 정상에 세워져 있다. 성임은 1464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했었는데 영광출신 기생 ‘부춘화(富春花)’와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도 전한다.

‘광주읍루’ 라는 시는 이렇다.
전라도 관찰사 성임이 쓴 '광주읍루'


광산은 형세 뛰어나 아름다운 곳
옛날을 생각하는 듯 유연하여라
府라 일컬은 건 어느때였을까
광주로 승격된 그 해를 묻노라
한천은 뛰어나 한도(一道)에 웅장하고
풍성한 民物속에 어진이가 많아라
서쪽 마루끝이 넓음을 깨닫고
높은 루에 올라 짧은 글로 칭송하노라

한편, 너릿재에 세워진 시비들은 지난 2000년 광주동구문화원(원장 이현채)이 광주동구청(청장 박종철)으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너릿재 신터널이 뚫린 데다 시비길에서 너릿재 옛길로 오르는 길이 가파라서 찾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 안타깝다.

“그냥 너릿재가 아니라 화순너릿재라고 불러야”

화순 사람들은 그냥 너릿재가 아니고 화순 너릿재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터널이 경계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용연마을 재2수원지에서 흘러나오는 물길과 광주-화순간 도로가 만나는 선교를 기준으로 하여 모두 화순지역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너릿재 터널은 광주시와 화순을 연결하는 통로다. 구 터널은 1971년에 준공되었고, 1992년 왕복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되었다. 너릿재 신터널은 2007년에 준공되었다.

너릿재 터널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구터널은 총 길이 400m, 폭 10m, 유효 폭 9m, 높이 6.5m이다. 신터널은 총 길이 620m, 폭 10m, 유효 폭 9m, 높이 6.6m이다.
신터널이 건설되어 화순은 물론 순천, 고흥, 보성, 장흥 등 전남 동남부지역에서 광주광역시를 연결하는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문화通 취재팀>

지형원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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