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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8일(화요일)

22. 영광 군남면 동간리
2019. 12.14(토) 12:11확대축소
정면이 안채 기고 왼쪽이 쌀 곳간, 오른쪽이 결혼식을 올린 뒤 초례를 치르던 신방
150년 역사의 연안김씨 매간당 고택과 삼효문 그대로 원형 보존
입향조 이후 문과 17명, 무과 3명, 효자 3명을 배출한 명문

문화通이 장기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는 전남의 마을 1박 2일은 훌륭한 인물의 탄생지나 종가고택, 민속자료나 문화재 등이 남아 있는 마을을 찾아가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코너다. 벌써 20여회가 넘었는데 영광은 처음이다. 영광 군남면 동간리 연안(延安) 김씨 외간종중 종가인 매간당(梅磵堂) 고택을 찾은 날은 그야말로 천고마비의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11월 초순이면 가을걷이가 한창일 터인데 들판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가을걷이를 끝냈고 군데군데 하얗게 포장된 사료용 볏집단을 실어 나르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요즘은 농사를 거의 농기계로 짓기 때문에 논 50마지기 정도는 부부가 싸목싸목 쉬어가면서 할 수 있고 소나 가축 몇 마리만 키우면 연 수익이 5천만 원은 된다고 하니 시골생활도 겁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

매간당 고택은 영광읍에서 염산방면으로 7.8km 가다가 외간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돌아 소나무가 심어진 하천둑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면 오른쪽에 솟을 대문이 보인다. 마을 앞에 차를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니 가슴이 툭 트인다. 뒤에는 나지막한 안산이 마을을 감싸고 앞에는 군남과 불갑의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고택 입구 늙은 석류나무에 매달린 석류송이가 깊은 가을을 일러준다.

매간당 고택은 연안 김씨 영광 입향조인 영(嶸, 1540~1598)의 셋째 아들 인택이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곳 영광군 외간면 (군남면 동간리)으로 피신하게 되는데 후손들이 크게 번창해 외간종중이라 부른다.
외간종중의 가장 큰 자랑은 삼효문(三孝門)이다. 사랑채 입구에 세워진 삼효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자형’이며 아래층은 대문, 2층 누각형 솟을대문인데 마치 큰 사찰의 대웅전을 보는 듯하다. 이 솟을대문은 입향조로부터 2세, 7세, 8세가 효성이 지극했다’하여 고종의 명으로 세운 것이다. 팔자기와 지붕으로 양 날개에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삼효문이란 현판글씨는 흥선대원군의 큰 아들이며, 고종의 형인 이재면(李載冕)의 글씨다.
삼효문 전경


여기서 잠시 연안김씨가 영광에 들어와 살게 된 경위를 알아보자.
영광의 연안김씨는 직강공파(直講公派)의 후손으로 파조는 승(昇, 8세, ?~1464)이다. 직강(종5품)이란 성균관 교수직의 벼슬을 지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승은 의정부참찬을 지낸 문익공 여지(汝知, 7세)의 셋째 아들로 세조 6년 별시문과 을과에 3등으로 급제해 봉정대부 성균관 직강 지제교(조선시대 왕이 내리는 교서의 글을 짓는 일을 맡아보던 관직)를 지냈다. 사후 자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예문관 대제학이 증직되었다.

12세 부사과 영이 불갑에 터를 잡아

직강공의 현손인 12세 영이 영광으로 내려와 영광사람이 되는데 이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중부(仲父) 세공(世功, 1521~1586)이 무과에 급제하여 명종 16년(1561년) 영광군수로 부임할 때 따라온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영성 정씨(丁氏, 지금은 압해정씨로 통합)와 결혼하여 불갑에 터를 잡고 살다가 서울로 올라가 벼슬살이를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속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영광으로 돌아오는데 큰 아들 인흡(仁洽, 13세)은 영광군 백수면 장산리에 터를 잡아 장산종중을 이루고, 둘째 인개(仁漑)는 둘째 외삼촌 정희삼을 따라 창평현 나산리(담양 수북면 나산리)로 이거하여 나산종중을 이뤘다. 셋째 인택(仁澤)이 어머니와 함께 영광 군남 외간리에 정착하여 외간종중을 이룬다. 영의동생 곤(崑)이 평안도 박천으로 이거해 박천 종중을 이뤘다, 11세 세근(世勤)이 평택으로 건너가 평택종중을 이룬다.
이 같은 사실은 영의 큰 처남인 정희맹의 일기 가운데 임진왜란 당시 영과 세 아들이 서울에서 영광으로 내려온 기록으로 확인 된다.

매간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234호

다시 외간종중 이야기로 돌아가자. 셋째인 인택의 아들 진(진 王+眞, 14세)과 현손 상립(17세, 相立)은 생원, 5세손 훤(18세, 煊)은 별서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를 지냈고 훼(火+亘)와 그 아들 재택(19세, 載澤)은 무과에 급제하여 각각 통훈대부행고원군수와 훈련원첨정을 지냈다. 25세손 종관(鍾琯)은 문과에 급제하여 고종 때 통정대부 비서감승을 지냈다.
그리고 인택의 아들 진(王+眞)과 6세손 재명(19세 載明)과 7세손 함(20세,䤴 )은 효성이 지극하여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는데 바로 삼효문이다. 2층 누각형 바깥대문이다. 옆으로 대문 1칸을 두어 평상시에 사용하고 삼효문은 집안의 중요한 의례가 있을 때 열게 된다.

현재의 종택은 고종 5년 1868년에 건립된 것으로 안채 사랑채 사당 안대문 바깥대문 마굿간 헛간 찬광 장독대 연못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후기 지방 상류층의 주택구조와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집으로 1998년 국가민속문화재 제 234호로 지정돼 있다.
과거에는 연안김씨 종택이라 불렀는데 현재는‘매간당(梅磵堂) 고택으로 이름이 바꿔었다. ‘매간당(梅磵堂)’이란 산속 물가에 핀 매화라는 뜻으로 남이 알아주건 말건 소박하게 지조를 지키며 산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고택은 김시수(22세, 金詩秀, 1802~1837)의 처 진주 강씨가 아들 김사형(23세, 金思衡, 1830~1909)과 함께 지은 것으로 강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시할아버지 김함과 홀시아버지 김석연(金奭淵, 1780~1830)을 잘 모시고 길쌈으로 부를 축적한 열녀로 알려진다. 외간종중이 대지주로 성장한 것은 바로 김사형 김종관(25세, 金鍾琯) 대에 토지를 확대하면서다. 매간고택 앞에는 만석꾼이었던 연안김씨 소유의 대저택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다른 지역으로 걸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옛날에는 집을 뜯어 옮기는 것을 ‘걸어간다’고 말했다.

매간고택은 풍수지리상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으로 학형국이라고 하는데 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랑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서당, 마부집, 연못을 배치했으며 중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아래채가 있고 사당은 안채 뒤편에 있다.
특이하게도 안채 옆에 톡 튀어나온 ‘□자형 건물’이 있는데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다음, 신랑신부가 첫날밤 자는 초례신방이었다고 하며 또 집사(머슴)가 살던 호지집이란 것이 있다. 안채 좌측에는 목욕탕, 우측에는 화장실이 있으며 아래채의 곳간, 창고, 뒤주, 땔감 창고가 있다, 쌀창고 곳간은 일제강점기에 쌀창고를 이중으로 만들어 식량을 보존했으며 뒤뜰에는 감나무와 접시꽃, 여인들이 머리감던 창포가 심어져 있다.

삼효문에는 효자 세 사람 명정(命旌)

삼효문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14세 (孝子贈廣進士贈通訓大夫司僕寺正延安金之閭顯廟朝 己酉命旌), 19세(孝子通德郞 延安金載明 之閭 高宗 己亥 命旌) 20세(孝子贈通政大夫禮式院左掌禮延安金 之閭 高宗 己亥 命旌) 현판이다.
14세 김 진 효자 명정


이들의 효행을 살펴보면 김 진은 70세에 색동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하다 상을 당하여 3년간 죽으로 연명해 1669년 효자로 명정되었고 사복시정이 증직되었다.

김재명은 김훤의 아들로 부모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던 중 호랑이가 나타나 다른 짐승들을 막아주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효자로 명정되었다. 또 김함은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하여 부모를 병구완해 1899년 효자로 명정되었다.
19세 김재명 효자명정

이 종택의 효자문은 고종 때 과거급제 하여 승지를 지낸 25세 김종관 대에 지었다, 김종관은 고종 때 종묘제사에 축문을 쓰고 독축을 하던 사람으로 고종으로부터 3명이나 효자 명정을 받았으니 효자각을 지으라고 명하여 삼효문을 지었다고 전한다.
사랑채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가 매간당, 우측에 익수재, 좌측에 구간재라 쓰여 있다. ‘익수재(益壽齋)’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오래 산다는 뜻이고 ‘구간재(龜澗齋)’란 거북이는 산골짝에 흐르는 작은 도랑물도 조심한다는 뜻으로 매사에 작은 일에 조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채의 주련도 다른 곳과는 달리 나무에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전각을 해서 붙였다.
20세 김 함 효자 명정


사랑채 뒤편에는 서당이 있고, 그 아래에는 연못이 있는데 연못 옆에는 연자방아와 우물이 남아 있다, 솟을대문 입구에는 가마와 마부가 사는 집과 마구간, 농기구 보관소가 있다.
사당에는 조상들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있었으며, 고택에서 대대로 물려온 교지·관복·호패, 김사형이 고종황제에게 올린 상소문 등 100여 점의 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전한다.

동간리에는 한 때 연안 김씨 120여호가 자작일촌을 이뤘으나 현재는 서너 집만 남아 있고 종택도 후손들이 지키지 않아 날로 쇠락해가고 있다. 다행히도 거주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나 주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외간중중 15대 종부로 50년간 고택을 지켜온 김소희 여사(82)는 “자나 깨나 고택의 풀 걱정” 이라면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으니 다른 군처럼 군에서 관리인을 파견해 풀이라도 해결해주었으면 소원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소희 종부는 한때 열다섯 식구가 살았던 정든 집인데 몸이 늙어 관리할 수 없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한편, 외간종중(外澗宗中)은 입향조 12세 사과공 영의 3자 첨지중추부사 인택(仁澤)이 영광 불갑면에서 군남면 외간리로 이거한 이래 외간 강진 장흥 무안 흥덕 등 5개 문중이 있다. 본 종중에서는 문과 2명 무과 2명 소과 4명 효정(孝旌) 3기 등 문무효 3덕을 구비한 향리의 명문으로 명성이 높다.

장산종중(莊山宗中)
장안종중 제각 청용제

입향조 영의 장자 의령 현감 인흡(仁洽)은 임란 때 창의하여 군량미를 모아 적을 토벌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손이 없어 동생의 장자를 양자로 맞았는데 위(14세, 瑋)가 과거에 급제하여 영천군수를 지냈다. 병자호란 후 벼슬을 버리고 영광으로 돌아와 백수면 장산리에 터를 잡아 장산종중을 이루다

이후 350년 동안 후손들이 가계(家系)를 이어 가면서 직강공파의 장자 역할을 해왔다, 장산종중에서는 문과 3명. 무과 1명을 배출했다. 한때 120여 호가 자작일촌했던 터라 마을 입구에 ‘연안김씨세거비’가 세워져 있고 현대식 재실과 영천군수 위와 후손들의 묘가 평장되어 있다.

나산종중(羅山宗中)
입향조 영의 둘째 아들 인개(仁漑)는 영광에서 차외숙 정희삼을 따라 창평현 나산리(담양군 수북면 나산리)로 이거하여 세거지를 이루니 나산종중이다. 나산 재동 만화동 정읍 갑향 남원 무정 연동 순창 화순 고창 등 11개 문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문중 가운데 15세 부사 수오(粹五)는 수북학구당에서 학문을 닦아 과거에 급제해 종성도호부사를 지냈으며 3자 호(灝, 16세)는 증광문과에 급제해 사헌부장령(정4품)을 지냈다.

호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현달하여 장자 상면(相冕)은 상의원첨정, 둘째 상규(相圭)는 신천군수, 셋째 상옥(相玉)은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황해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넷째 상신(相紳)은 식년문과 갑과에 급제하여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재동대감댁이라 불렀으며 나산종중은 수오공 이하 문과에 12명이 배출되었다.
또 상옥의 손자 재순(載順, 19세)이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으며 재기(載器, 19세)는 정시문과에 급제했고, 상면의 손자 재두(載斗, 19세)가 정시문과, 재익(載翼, 19세)이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지를 지냈다. 재익의 아들 진(鎭, 20세)이 증광문과에, 전(銓)은 정시문과에 급제했다. 문과급제자 이외에도 생원·진사과 등을 통해 관직에 나아간 인물이 많다.

그래서 담양수북에는 인개공이 터를 잡은 세거지와 삼현사 서원자리에 다시 세운 모현재와 삼현사 유허비, 그리고 가정재 등의 유적이 있다.

삼현사(三賢祠)는 담양군 수북면 나산리에 있던 서원으로 김도(金濤, ?~1378) 와 두 아들 문정공 김자지(金自知)와 문익공 김여지(金汝知)의 학덕과 절의를 추모하여 호남유림들이 세운 것이다.
삼현사는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하던 사재(思齋)라는 서재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으로 건립연대는 1827(순조 27)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삼현사 상량문 끝에‘崇禎紀後四丁亥後孫撰謹(숭정기후사정해후손선찬근)이란 표기가 있기 때문이다. 삼현사는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에 따라 빈터만 남게 되었는데 후손들이 1906년 유허비를 세우고 1915년 선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모현재(慕賢齋)란 이름의 서재를 다시 세웠다.

유허비문에는 “나복산인 도(濤)와 두 아들 문정공 자지, 문익공 여지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던 삼현사가 있었으나 서원이 훼철돼 이를 안타깝게 여긴 수연(壽淵, 21세)과 사영(思英, 23세)이 유허비 건립을 주창함에 종친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뜻을 모아 유허비를 건립한다.”고 쓰여 있고 비문은 23세 자한대부 전의정부찬정 사준(思濬)이 썼다.
담양 나산 입행조와 후손들을 기리는 가정재


가정재(柯亭齋)는 나산종중 입향조 인개가 선조(宣祖) 때의 혼란과 광해군의 폭정을 피해 담양 나산으로 내려와 훈도를 지내다 아들 위(瑋), 손자 수오(粹五), 증손 호(灝), 현손 상옥(相玉), 상신(相紳) 등 대과급제만 12명에 이르니 인개공을 추모하기 위해 경향각지의 종친들이 뜻을 모아 1996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에 건립했다.

또 수북에는 위, 수오, 호, 상신 등 4명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했던 수북학구당이 남아 있다, 이 수북학구당에서는 연안김씨 4명, 단양 우씨 1명, 의령 남씨 1명 등 6명이 문과에 합격했고 무과에도 압해정씨 정무영, 정희 등 2명이 합격해 모두 8명이 대과에 급제한 사립학교이다. 학구당은 국내 여러 곳에 있었으나 현재는 담양에만 수북학구당과 수남학구당(고서)이 남아 있다.

수북학구당은 1473년 박씨 남씨 진씨 등 세 성씨가 힘을 합해 만들어 50여 년 간 수많은 유생들을 수학해오다 호식(虎食)을 당하여 문을 닫았는데 1709년에 연안 김씨 단양 우씨 압해 정씨(丁) 성주 이씨등 4개 성씨가 당초의 학구당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건립해 후학 요람으로 사용했다 한다.

1769년에는 창평 현령 윤광순이 주민들과 함께 복원하였고 1966년 또 한 차례 보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수북학구당은 정면 4칸의 목조 팔작지붕이다.

취재에 동행한 25세 후손 김종곤 씨는 “정말로 훌륭한 조상을 모셨는데 후손들이 미약하여 면목이 없다.”면서 “살아생전 조상들의 유적이라도 잘 관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한 달이면 두세번씩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불갑에는 三慕齋와 입향조의 묘
영광 입향조 영의 묘소


불갑면 우곡리에는 입향조 영의 재실과 묘가 있다, 이곳은 사괴공 영이 정씨와 결혼하여 터를 잡은 곳으로 후손들이 조선조에 문과 17명, 무과 3명이 급제해 명문가를 이루자 영 부부와 세 아들인 인흡, 인택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 삼모재(三慕齋)다. 영의 10세손 택수(澤洙)가 함평현감으로 있을 때 1892년에 건립했다.

묘지는 삼모재 뒤편 불갑산 자락 연봉정에 있는데 입구에 비석이 있고 양쪽에 문인석을 안치했다. 왼쪽에는 큰아들 인흡의 묘가 있고, 언덕 너머에 막내 인택의 묘가 있다. 둘째는 담양 수북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인근의 월산면에 묘가 있다. 불갑산을 뒤로 하고 앞쪽으로 넓은 농토가 보이는 양지바른 터이다. 매년 양력 첫째 주 일요일 제향한다.

연안 김씨는 22개 파조로 이뤄져

연안김씨는 한국의 토성으로 시조는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하다가 형은 북빈경(강릉)에, 아우는 시염성(연안)으로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연안 김씨 7세 도(濤)는 문정공 자지(自知) 문익공 여지(汝知) 학지(學知) 치지 (致知)등 네 아들을 두는데 자지가 9형제, 여지가 3형제, 학지가 형제, 치지가 4형제를 두어 모두 18개 파조를 이루고 윗대에서 4개 파조가 있어 모두 22개 파조로 이뤄졌다. 직강공의 묘역과 영모재는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에 있다.
연안김씨 파종회 워크숍 참가자 들


22개 파 중의 하나가 직강공파로 파조 승(昇,8세)이 종5품 성균관 교수직을 지내 직강공파라 부른다. 승은 슬하에 석현(錫賢) 석철(錫哲) 석보(錫輔) 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 석현이 수원부사, 석철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석보가 현감을 지냈다.
이 가운데 둘째 석철(1458~1533)이 1510년 삼포왜란이 일어났을 때 진압하였으며 이후 제주목사, 한성좌윤,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 가선대부 수지중추부사 겸 훈련원사 등을 지냈다,

그는 시문에도 밝아 중종 때 승지로 내원에 들자 임금이 앞에 매어 있는 백마로 시제를 내자 이런 시로 답하였다. (청강시화)

白馬閑嘶繫柳條(백마한시계유조)
백마는 한가히 버들가지에 매여 있고
將軍無事劍藏뤴(장군무사검장초)
장군은 일 없어 칼이 칼집 속에 있구나
國恩未報身先老(국은미보신선노)
국은은 아직 갚지 못했는데 몸이 먼저 늙고
夢踏關山雪未銷(몽답관산설미소)
꿈속에 변방의 산 밟아보니 눈이 아직 녹지 않았네.

직강공 승의 장자 석현의 아들 엽(曄)이 후손이 없이 종제인 형(泂)의 차남 세공(世功, 무과에 장원하여 영광군수,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을 입양하였으나 그 후 자손이 끊기거나 무단 되었으며, 셋째 석보의 후손도 절손되었다.
직강공의 2자 지중추부사 석철(錫哲)은 10세 양천현령 형(泂)을 낳았으며 형은 세적 세공 세근 3형제를 두었다. 종3품 지방무관직을 미전진 첨절제사를 지낸 11세 세적은 부사과(副司果) 영과 곤(崑을 두는데 큰아들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 세공을 따라와 영성정씨와 혼인하여 불갑에서 살면서 세 아들을 두었다.

한편, 연안김씨 는 고려말부터 조선조까지 문과 171명, 무과 174명, 왕비 1명, 정승 6명, 대제학 3명, 청백리 3명 호당 6명 등을 배출 국내의 명문가로 번창해왔다.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 계축옥사의 화를 당한 연흥부원권 김제남, 좌의정을 지낸 김안로 등이 연안 김씨이다.

직강공파의 근현세의 인물로는 김창영(26세, 金昌泳, 1898-1964)는 일제통치에 반대하여 신학문을 거부하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선대의 전통을 지켰으며 종가의 가산이 적몰되었던 것을 환수받아냈다. 김석주(27세, 金碩柱,1916-1980)는 일본 유학을 통해 해방정국 정계에 투신해 활동하다가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정치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낙향해 청년계몽운동과 마을
부흥운동을 벌였다, 마을에 공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의 동생 복주(27세)가 연안김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장산종중에서는 노벨과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김빛내리(28세)가 유명하며 외간종중에서는 전북대학교 교수 김기주(27세) 조선대학교 학장 김윤영(26세) 김근 전 연합뉴스 사장(27세) 등이 있다. 또 나산종중에서는 김종출 전 광주보병학교장(25세) 김 휘 전 광주문화방송 편성국장(25세) 등 있다. 또 로케트전기 사장을 지낸 김광영 (26세) 김동영(26세) 등이 나산종중에 속한다.

연안김씨 대종회를 이끌고 있는 김복주회장은 “참으로 훌륭한 선조들을 모셨는데 후손들이 미약하여 면목이 없다.”면서 “그래도 종훈인 숭조(崇祖) 돈목(敦睦) 계후(啓後) 덕목을 잘 지켜 가문의 무궁한 발전과 명망을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취재에는 김병주 직강공파 회장 (27세) 김수영 부회장(26세) 김태주 상무이사(27세) 김교영 사과공파 종회장 (26세) 김을주 이사(27세) 등이 사료를 제공하고 현지취재에 동행했다.

글 : 지형원<문화통 발행인>
사진 : 임철진<사진작가, 편집위원>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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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 마을 주요기사
22. 영광 군남면 동간리21. 함평 대동면 상옥리 옥동
20.순천 주암 죽림리·주암리19.나주 문평면 오룡리
18.나주봉황 철야마을17. 담양 창평 삼지내 마을
16 .해남읍 연동15.광산 임곡 너브실
14.장성 맥동·필암마을13.창평 장화리 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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