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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6일(수요일)

우영인 보성 우종미술관장
2018. 12.19(수) 23:21확대축소
우영인 우종미술관장
“젊었을 때는 그림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좋은 미술품 많이 소장해
대대로 국민사랑 받는 미술관 만들께요”

누군가가 말했다.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고. 세상의 모든 이파리들이 꽃으로 피어나니까 봄이라고.
‘두 번째 봄’의 어느 날 보성 우종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참으로 맑았다. 하늘이 맑으니 산도, 물도 맑았다.
스물 두어해 전, 언론사 문화부장으로서 미술관장이 아닌 주부 우영인 여사를 만난 적이 있다. 우리지역 최초의 서양화가 김홍식(金鴻植) 선생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여수에 들렀는데 개량한복을 입은 40대 중반의 우영인 여사는 부잣집 안주인의 넉넉함이 느껴지는 좋은 인상이었다. 차분함과 자상함, 여유가 주는 배려까지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언론사를 떠난 지 한참의 세월이 지났고 우영인 여사(69)는 보성C.C에 있는 우종미술관의 관장으로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여인에게 가장 멋진 직업이 뭘까? 당사자들이 인정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미술관장이 아닐까 싶다. 리움의 홍라희 관장. 아트선재센터 정희자 관장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11월의 어느 가을날, 니트 원피스 차림의 우영인 관장과 미술관 앞 벤치에 마주 앉았다. 바로 곁에는 수백 년 된 모과나무에 노란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여기에 노랗고 붉은 가을단풍과 따사로운 햇살까지.
우종미술관 입구


- 참 행복해 보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 미술작품 때문에 힘들었는데 그들이 말년에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줄 몰랐습니다. 우선 미술관장으로 일하다보니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리고 서울로 부산으로,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세상을 걱정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 우종미술관은 우종문화재단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사립미술관들처럼 허덕이지 않는다. 전국에 많은 사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지만 우종미술관처럼 크게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실제로 평생을 미술품이나 골동품들을 모았다가 전 재산을 털어 미술관 문을 열었는데 계속해서 투자를 해야 하니 고민이 깊다. 또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해 지원이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박물관은 돈먹는 하마”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 절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돈 먹는 하마입니다.”
목돈을 들여놓아도 온데 간 데가 없다는 것이다.
우종미술관은 우종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미술관인데 우종문화재단의 이사장이 우영인 관장의 남편이다. 주)와이엔텍이란 꽤 규모가 있는 회사를 경영한다. 그 안에는 환경과 건축 관련 몇 개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회사에서 매년 수익 가운데 일부를 문화재단에 기부함으로써 큰 어려움 없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좋은 작품들을 많이 소장해 외국의 유명 미술관처럼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사랑받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남편과 저의 소망입니다.”
우영인 관장 부부는 그래서 틈만 나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을 둘러보고, 때로는 해외 유명 경매장에도 나가 직접 작품을 구해오기도 한다. 특히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미술작품의 위대함, 미술관 운영자의 사명 같은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도자기 전시실


보성군 조성면 대곡리 산 49번지. 우종미술관 정문에는 한국 1세대 조각가 민복진의 ‘가족’이란 대작이 미술관으로 안내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역시 코지 다나다의 ‘당근과 채찍’이란 묘한 여운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일본의 조각가 코지 다나다는 오랫동안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선상의 ‘소년과 소녀’들을 테마로 작업해온 작가다.
- 우종미술관이란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나요.
- 사실은 시아버님 존함이 박우종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친정아버지의 함자가 우종수여서 시댁과 친정 쪽에서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남편인 박용하 회장이 아버지를 많이 존경했고 자신에게 미술품에 관한 눈을 뜨게 해준 아버지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우종미술관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말한다.

-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젊은 시절 미술품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는데 무슨 말씀인가요?
- 남편이 허구한 날 그림만 사서 들고 오는 것입니다. 대청은 물론 안방까지 그림이 빙 둘러 있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쪽으로 치워 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호통입니다. 또 밤늦게 그림을 들고 와서는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워 그림을 들고 있어보라고 하지를 않나, 그림을 그만 가져오라고 했더니 사무실에 감추어 두었다가 아예 트럭으로 싣고 들어오지를 않나 정말로 사람을 귀찮게 했습니다. 흉보는 것 같습니다만 시아버님이 물려주신 재산을 팔아서 미술품을 구입한 적도 있다니까요.
백순실 작가 전시장에서


그렇다. 박용하 회장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보고 자랐다. 부친이 여수에서는 가장 큰 주조장을 경영했기 때문에 화가들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전시회에 나가 그림을 사거나 아예 한 두 달씩 집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도록한 화가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지역 최초의 서양화가인 동경미술대학 출신의 김홍식 작가의 작품도 몇 점 소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레 그림에 눈을 떴고 처음에는 우리지역의 유명한 동양화가 작품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소치, 미산, 의재, 남농, 청당, 도촌, 천경자 등의 대작이 많은 이유다. 중간 중간에 선물용으로 많이 내보내기도 했지만 귀한 작품들은 그대로 소장하고 있다.

동서양화, 해외 작품 등 1천여점 수장
마르크 샤갈·앤디워홀·데미안 허스트 작품도

그 다음에는 수집취향이 서양화로 바뀌어 이중섭 김환기 오지호 이우환 선생을 비롯해 현재 생존해 있는 원로작가들의 작품도 상당수 구입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지역의 컬렉터가 마르크 샤갈, 나라 요시토모, 앤디워홀 , 데미안 허스트 등 해외의 현대작가들에까지 손을 뻗치는가 하면 해외 유명 조각가나 도예가, 오래된 국내 고가구까지 광범한 영역에 걸쳐 작품을 수집했다. 판화작품으로는 베르나르 뷔페, 피카소, 호안 미로, 페르낭 레제 등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 현재 수장고에 있는 작품이 줄잡아 몇 점이나 될까요?
- 1천여 점은 넘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가격을 정할 수 없는 국보급 작품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귀한 작품은 깊숙이 보관하고 있어 저도 잘 모릅니다.
보성 우종미술관은 이런 방대한 컬렉션을 토대로 해마다 굵직한 기획전을 열어 전국의 미술애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지방 미술관에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기획전들이다.
소장작품들(위에서 좌로) 샤갈의 '연인과 붉은 꽃' 천경자 '모래섬의 마드모아젤'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 앤디워홀 '필크 마릴린' 야오이 쿠시마' 무제' 김환기 'morning star'


지난 2008년 개관기념전으로 ‘현대미술의 발자취’라는 주제로 국내외 현대미술 걸작들을 선보였다. 또 2013년에는 ‘꿈꾸는 샤갈과의 동행전’을 가져 경향각지의 언론에 보도되었고 지난해는 ‘근대미술의 여정’전을 개최해 지역민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한국근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또 ‘한국의 격동기 속에 핀 꽃’ ‘일본 근현대 작품전’ 등을 개최했으며 지난 11월부터는 이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백순실 작가를 초대해 ‘Ode to music’ 전을 열고 있다. 개인초대전보다는 굵직한 기획전을 주로 하고 있으며 지역작가 초대전은 개관이후 매년1회씩 개최하고 있다.

- 그림이 조금 보이십니까?
- 사실 처음에는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잘 몰랐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참 수고했다고 생각했는데 차츰 좋은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추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박용하 회장은 오래전부터 추상에 관심을 갖고 추상작품 수집에 관심을 기우려 이우환, 정상화, 김환기 등의 작품은 상당히 귀한 것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 눈에 들어 간택(?)
역사교사에서 종갓집 며느리로

개인사가 궁금했다.
-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 저는 두 번째 선이었고 그 분은 첫선이었는데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 시아버님과 시고모를 먼저 만났는데 시아버님이 어찌나 예뻐하시던지 마음이 열렸습니다. 신랑감은 고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내려와 첫선을 봤습니다. 마음에 들었든지 서울에서 구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려왔어요. 대학에서는 독어를, 대학원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는데 전혀 정치적이지는 못합니다.
우영인 관장의 집안 얘기가 궁금했다.

- 원래는 아버지가 대전에서 사셨는데 일본에 유학을 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일본 유학중 학도병으로 끌려갈 뻔 했다가 금강산으로 탈출해 이곳에서 2년여를 보내셨습니다. 금강산 생태를 조사하면서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후 구례에서 어머니와 살면서 지리산을 국립공원 1호로 지정한 주인공이십니다. 돈벌이에는 관심이 없고 지리산 산악회장, 섬진강보호협회장 등을 지내셨는데 유학에서 돌아와 잠시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을 뿐 평생을 돈을 쓰고 사신 분입니다.

우영인 관장은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임시교사로 구례에서 잠시 역사 선생을 하다가 그해 선을 보고 결혼한 것. 아무것도 모르고 종갓집 며느리로 들어가 매년 수차례의 제사를 지내는 등 많은 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 시아버님이 참 우애가 좋으셨어요. 아버님의 형제가 2남 8녀인데 특히 작은아버님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작은 아버님은 일본유학을 한 인텔리인데 항상 아랫목에 앉게 하시고 서울로 돌아가실 때는 모든 귀한 것을 싸서 보내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참으로 형제의 우애가 보기 좋았습니다.
남편 박용하 회장과 함께


박회장은 요즘 클래식 음악에 빠져
여수상의 회장하면서 KBS와 여수음악제 주최

우관장은 박회장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박회장의 사업을 이어받아 회사를 경영하고 있고 큰 딸은 대기업의 과장으로, 작은 딸은 출가하여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요새 그냥반(박회장)은 클래식 음악에 푹 빠졌습니다. 여수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일하면서 KBS와 공동으로 KBS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여수음악제를 두 차례 열어 여수를 클래식의 본고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여수상공회의소는 물론 개인적으로 1억원이 넘는 돈을 후원하는 행사입니다. 최근 전국최대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여수지역에 통영국제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버금가는 전국최대, 최고 수준의 음악축제로 성장시키겠다는 생각이다.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여수음악제는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와 웅천친수공원, 산업단지, 여수시청 등 도처에서 다채롭게 진행된 4일간의 음악축제로 올해행사는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인 지휘자 요엘 레비(Yoel Levi)가 공연 감독을 맡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 교육부문 음악감독을 맡았다. 요엘 레비는 아틀란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았고 프랑스 벨기에 이스라엘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다.

이번 클래식 시리즈에서는 전통클래식 음악연주로 유명한 독일 만하임 체임버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아드리엘 김이 지휘를 맡고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이 협연했다. 특히 지역의 클래식 연주단체 앙상블 여수와 합동 연주도 하고 꿈나무들을 선발해 키워가는 미래형 축제다.
오케스스트라를 지휘한 아드리엘 김은 '앙상블 여수'와의 협연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고 박회장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엄청난 일을 박회장이 평생을 살면서 맺어온 좋은 인맥이 있어 가능했다. 오랜 세월 좋은 분과 인연을 맺고 문화재단이 미술관의 이사로 모시면서 지역발전의 견인차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얘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박회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고 우영인 관장 역시 함께 살다보니 문화예술에 종횡무진이다.
- 수장고로 가볼까요
두툼한 열쇠를 열고 들어가니 항온항습기의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꽤나 넓은 장고에 작품들이 가득했다. 종류별로 책꽂이처럼 잘 정리해 언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수장고에도 좋은 작품이 많지만 더 귀중한 작품은 더 깊숙한 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18홀 대중제 골프장과 호텔 ‘다향’

한편 우종미술관이 있는 보성 주월산 산자락에 위치한 보성컨트리클럽은 전장 6,280m의 정규 18홀 규모의 퍼블릭 골프장이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계단형으로 설계돼 모든 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조경이 잘되어 마음이 편안하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순천 광양, 광주에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골프텔로 이용되는 호텔 ‘다향’은 아늑한 파라다이스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모과나무에 매달린 노란 모과 몇 개를 따주시는데 이 대목은 영락없는 시골 외숙모 같은 모습이다.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행복한 가을소풍이었다.

글 지형원<문화通 발행인>, 사진 임철진<사진작가>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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