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오센집을 아십니까/

전일빌딩 후문 앞 ‘봉구네 김밥’자리…광주지역 비구상 미술인 아지트양
수아 배동신 강용운 등‘삼바가라스’가 만나던 ‘술과 예술의 토론장’

2017. 03.27(월) 11:29

양수아 배동신 강용운(좌로부터)

오센집을 아십니까?
오센이란 오씨(吳生員)라는 뜻이다. 한때 배용준을 가리켜 욘사마라고 했는데 욘사마는 배용준의 용(龍)자에 우리말로 ‘님’을 뜻하는 사마(さま)의 합성어다. 사마는 높임말이고 센은 예삿말이다.
따라서 오센집은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이다. 요즘의 실비집 같은 곳이었다. 지금의 전일빌딩 옆 ‘봉구네 김밥’자리인데 크기는 그때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 드나들던 사람들의 기억이다. 이곳은 주로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공무국 직원들이 일을 끝낸 뒤 잠깐씩 들러 목을 축이던 곳이다. 가끔 편집국 기자들도 들렀지만, 기자들은 어쩌다 들르는 곳이고 주로 공무국 직원들이 석간(12시 발행)작업과 내일 자(字) 일부 간지를 끝내고 납을 씻어내기 위해 돼지고기 안주에 막걸리를 들이키던 곳이다.

그러나 보통 직장인들의 퇴근시간 이후에는 어김없이 이용객들이 교체된다. 물갈이가 되는 셈이다. 저녁시간 이후에는 주로 예술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비구상 미술인들이 가장 많았다. 거의 날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양수아 (1920~1972)였고 배동신(1920~2008) 강용운(1921~2006)이었다. 양수아 배동신은 동갑이고 강용운이 한 살 아래였지만 ‘잘 싸우는 친구’였다.
오센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과 오른쪽에 탁자가 3개씩 있었다. 오른쪽 첫 번째 테이블은 요즘으로 말하면 계산대였고 바로 곁에 조리대가 있었다.

“갈 때마다 양수아 선생이 계산대 옆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지요. 혼자서 왔을 때는 주인인 오센을 앉혀놓고 뭔가 얘기를 하면서 열변을 토하곤 했습니다.”
양수아와 오랜 교분을 쌓은 데다 둘이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던 언론인 위증(84)의 증언이다.

위증은 한국일보 목포주재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뒤 한국일보 광주지사에서 일하다 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겨 정년퇴임했다. 이후 지방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했으며 한국일보에 근무할 때는 미술에 각별한 관심이 있어 전국 최초의 미술잡지를 기획하기도 했다.

“양수아 배동신 강용운 등이 모이면 오센집은 술집이 아니라 예술토론장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주로 특정화가나 특정한 작품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서로가 자기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옆에서 보면 싸운다고 할 정도로 열정적 이었지요”

오센집을 가리키고 있는 언론인 위증 선생

3마리 까치라고 하여 ‘삼바가라스’라 불려

위증은 이들 세 사람을 가리켜 ‘삼바가라스’라고 불렀다고 했다. 3마리의 까치라는 뜻인데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양수아는 저순도의 경성 사과주를 좋아했는데 그러나 파는 집이 거의 없어 오센이 이 술을 구하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과주를 못 구하면 진로 포도주나 막걸리를 즐겼다. 그러나 배동신은 맥주를 좋아했고 강용운 소주파였다. 이처럼 좋아하는 술이 달랐지만 이들 ‘삼바가라스’는 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술이 거나해지면 노래 가락이 흘러나오는데 맨 처음은 늘 양수아가 ‘빨간마후라’를 시작했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 빨간 마후라를 목에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마라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양수아가 3절로 된 이 노래를 시작하면 배동신과 강용운이 3절까지 따라 불렀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일종의 ‘오센집의 노래’였다. 양수아가 별세했을 때 미술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는데 그날 장송곡이 바로 ‘빨간 마후라’였다. 배동신은 ‘눈물이 연기 나네’라는 노랫말이 나오는 곡을 많이 불렀다고 전한다. (조규일 화백)
“양수아 선생은 취해 있었지만 말에 품위가 있었고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멋지고 근사해 아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위증은 양수아 선생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소유자였다면서 훌륭한 예술혼을 다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아쉬워한다.

또 그가 기억하는 오센은 매우 속이 좋은 사람이다. 항상 졸고 있는 듯한 얼굴이지만 그 까탈스런 사람들의 주정(?)을 한마디 불평 없이 들어주었던 따스한 사람이었다는 것.
양수아가 좋아하는 경성 사과주는 주로 김종일 최종섭 박상섭 등이 공급(?) 했다. 전남일보 문화부장이던 임병성, 소설가 한승원, 서양화가 장지환 김용복 우제길, 김종일 명창준 등이 드나들었고 강연균도 가끔 들러 술값을 내고 가곤 했다. 당시 술값을 가장 잘 낸 사람은 마음씨 좋은 박상섭이었다. 서양화가 조규일은 박상섭이 들어오면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오늘 술값은 누가 낼 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수수께끼 참가자의 대부분이 “박상섭”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술내기는 싱겁게 끝나곤 했다는 것.

1970년 후반 전일빌딩 부근 약도

이 무렵 이들 ‘삼바가라쓰’는 ‘아름다운 무법자’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 올 때는 미리 파출소장이 술병을 가져와 주면서 제발 시내로 나오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또 통금에서도 이들 3인은 무사통과이고 집으로 모셔다(?) 드릴 정도로 특혜(?)를 누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당시는 예술인들을 대접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양수아가 술을 얼마나 좋아했으며 사심이 없었는지는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양수아는 술·담배를 너무 많이 피운데다 이빨에 한반도 지도모양의 충치가 있었다. 오센집에 들렀던 어떤 의사가 요즘 돈으로 50여만 원을 주면서 이빨을 하라고 했는데 이 돈으로 술을 먹어버린 것. 얼마 후 이 의사와 맞닥뜨리자 입술을 벌리지 않고 말했다가 들켜서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1차는 오센집, 2차는 감나무집 3차는 장동 ‘도깨비 대학’

전일빌딩 부근에는 오센집 말고 또 하나 술집이 있었는데 바로 구 동구청 뒷골목의 영흥식당 부근의 ‘감나무집’이었다. 오센집에서는 주로 막걸리를 팔았고 감나무집에서는 맥주를 팔았다. 오센집은 혼자서 장사를 한 작은 가게인데 반해 감나무집은 여종업원이 2.3명이 있었다. 그래서 주머니가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특별한 날에는 황금동 콜박스 옆 기미코네 집에도 들러 기분을 내기도 했다.

오센집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감나무집에 들러 맥주 한잔 더 마시고 가는 곳이 금남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던 강용운의 집이었다. 강용운의 집은 장동 55번지로 지금의 장동로터리 연합빌딩 옆에 있는 일본식집이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술꾼들이 강용운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예술적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이 들이 닥치는 날은 장동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도깨비 대학’이다. 새벽까지 떠들면 뭔가 토론하는 것이 마치 대학 강의실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우제길 작 '오센집의 추억'

강용운은 당시 사범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살기가 괜찮았다 고향에 남겨둔 논밭도 있어 먹을거리가 제공되었다. 이들이 닥친 날 뒷바라지는 어김없이 강용운의 부인 김수경 여사(92)의 몫이었다. 일본집 한 가운데에 거실 같은 큰 다다미방이 있었는데 이곳이 강용운의 작업실이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공간이기도 했다.
“귀찮은 날도 많았지만 그 양반(강용운 교수)이 워낙 친구들을 좋아한 데다 우리 집이 그래도 조금 넉넉한 편이다 싶어 싫은 소리하지 않고 심부름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기세등등하던 분들이 한분도 남아 계시지 않아 아쉽습니다.”
김수경 여사, 아니 올해 아흔 두 살의 할머니의 눈가에 물기가 젖는다.

1965년~1972년까지가 전성기

이 지역 비구상 미술의 개척자인 양수아 강용운, 그리고 비구상미술은 아니지만 일본유학파로서 이들과 함께 한 배동신 등 이른바 ‘삼바가라쓰’가 오센집을 중심으로 예술적 격정을 쏟아낸 시기는 대략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라고 할 수 있다. 양수아는 일본유학을 마치고 해방직후 목포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53년 목포에 양화연구소를 개설하고 56년 광주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해 목포를 떠나면서 미네르바 다방에서 부부전을 가졌으며 58년 제2회 현대작가미술 초대전(조선일보), 66년 개인전, 71년 첫 서울전 (국립공보관화랑)을 가졌다. 이후 다시 광주와 여수에서 개인전을 한차례씩을 갖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 세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오센집을 열심히 드나들던 시기는 50년대 후반에서 1972년까지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의 화단은 잘 다듬어진 그림을 배격하면서 강렬한 추상주의와 기하학적 추상주의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 초 축소주의 및 대중예술과 함께 하는 단색화법으로 이어졌다.

양수아는 보성 겸백초등학교 4년과정을 졸업하고 고모가 사는 일본 시모노세끼로 건너가 히코시마 소학교 5,6학년을 마쳤다. 이후 시모노세키 중학교 미술부에 들어가면서부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도쿄의 유명 삽화가 미야모토 사브로(宮本三郞)의 문하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정통 순수회화 공부를 제의 받는다. 이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3~1946년 만주 안동의 만주일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지환 작 '오센집의 추억'

그가 비구상미술에 빠져든 것은 가와바타 미술학교 3년을 마칠 무렵 도쿄는 1차 대전 후의 아방가르드나 다다이즘이 밀물처럼 범람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형태와 색감의 변주로 이야기되는 그림의 틀을 거부하고 비구상의 거리로 뛰쳐나와 고독한 예술의 뒤안길을 걸어갔다. 때문에 그는 생전에 단 한 번의 영화로운 예술의 활화산을 피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미술사적 측면에서 추상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연 작가다. 1948년 겨울 광주미국공보원에서 가진 이 개인전은 우리나라 현대회화사의 미술사적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이는 해방 후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비구상작품인데다 국내 첫 비구상전이라는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전쟁기간 동안인 1951년에는 지리산에 입산, 빨치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성격이 매우 내향적이었으며 현실을 거부하고 규격을 싫어했으며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심심하면 오센집에 앉아 주인과 젓가락 칼싸움을 하면서 툭툭 내뱉던 말속에는 철학이 스며 있었다고 한다.
배동신은 이 무렵 진도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왔다. 좋게 말해서 전업 작가였지만 그림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어서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진도에서 올라온 뒤 얼마 안 돼 일본인 아내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귀국하는 바람에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마사에가 떠나버린 뒤 배동신은 그야말로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사에에 대한 연민과 등에서 칭얼대던 어린 딸,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를 더욱 절망과 나락으로 내몰았다. 그럴 때마다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동전을 넣고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짱, 마짱”와타나베 마사에를 부르는 소리는 처절했다. 그때마다 술을 마시며 제목도 모르는 가곡을 불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 유학시절 마사에 의 누드를 나무판에 그린 유화작품과 그녀의 모습을 새긴 판화 1점을 꺼내 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아내가 떠난 뒤 그리움과 굶주림, 외로움으로 날마다 술에 빠져 급성간염으로 쓰러져 적십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때 달려온 여인이 살레시오 여고 음악교사로 재직하던 전남여고 시절의 미술부 제자 김영규였다. 조대 음악과 박기석교수로부터 입원소식 듣고 달려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배동신은 아름답고 가식이 없는 해맑은 소년의 모습이다. 낡은 청바지에 유리창을 넘어 다니고 문교부장학관이 올 때도 교탁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가르치던 선생님. 김인규는 그런 배동신을 보면서 자신도 예술가가 되기로 작정했다. 서울대 음대에 진학해 살레시오 여고 교사로 돌아왔던 것. 그녀는 배동신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위대한 천재가 쓰러질 것 같은 생각으로 1958년 결혼을 하게 된다. 배동신의 나이 38세였다. 신혼살림은 광주여고 옆 2층집에 차렸는데 1층은 피아노 교습소로, 2층은 살림방과 화실이 두었다. 김인규의 피아노교습소는 광주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들이 몰렸던 학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의 개인전이나 단체전 참여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50년대의 기록은 거의 없고 68년 ‘수채화창작가회 창립전 초대회장’ 황토회 창립전 참가(1970년), 구상전 추대회원(1972년) 등이 전부다.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3년 서울신문회관에서 20회 전시회를 가졌고 그 이듬해 일본 동경 미술가 화랑(9월)과 오사카 한국화랑 개인전, 그리고 1976년 서울 회화랑에서 제 23회 개인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게 된다.

1959~1960년 강용운-오지호 비구상미술논쟁 유명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강용운(1921~2006)은 동경제국미술학교에 유학, 4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1947년 전남여고 교사로 부임한다. 이후 추상미술의 외로운 길을 걷다가 목포에서 양수아를 만나 추상회화의 화우를 얻게 된다.
1949년 광주사범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긴 뒤 이듬해 광주 미국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57년과 1958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 초대전’에 잇달아 출품하면서 중앙화단과 교류했다. 1960년대 초 한국예총 전남지부 1,2대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의 ‘오리진’ 부산의 ‘혁’과 함께 3대 한국 비구상미술 그룹의 하나로 꼽히는 에뽀끄 (1965년)가 발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전남도전 준비위원,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초창기 이 지역 서양화단의 지도자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59~1960년 강용운이 오지호와의 전남일보(현 광주일보)에 40여회에 걸친 ‘구상-비구상논쟁’은 전남현대미술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로 기록되고 있다. 오지호의 ‘비구상미술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맞서 벌인 이 지역 최초의 미술논쟁이었다.

한편 이 지역 비구상 미술의 텃밭이 되었던 에뽀끄가 창립된 것은 1964년 2월 광주 YMCA 2층 강당에서 열린 박상섭 최종섭 명창준 비구상 3인의 전시회가 계기가 되었다. 오지호-강용운의 비구상 논쟁이 있은 데다 전남도전에서의 비구상 미술 푸대접 등으로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비구상 3인전이 열리자 비구상 미술운동의 구심체로서 에뽀끄 창립을 결의했다.
창립멤버로는 이들 3인과 함께 이세정 엄태정 김종일 김용복 조규만 등 모두 8명이었다. 그러나 창립전에는 박상섭과 엄태정이 출품하지 않아 6명이 참여했다. 창립 직후 우제길, 최재창 박봉화 장지환 조옥순 등이 새로 가입하면서 새로운 활기를 보였다. 특히 창립 10주년이 되는 73년에는 한국 비구상미술의 선두주자인 김구림, 하종현, 하인두, 김영주를 초대한 가운데 전람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서울 명동화랑 초대전을 제의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오센집은 1959년 강용운-오지호 논쟁을 계기로 비구상 미술인들이 결집하는 장소로 자리를 잡게 되며 에뽀끄 창립을 계기로 그 세력이 크게 확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이른바 ‘삼바가라쓰’가 주로 출입했던 이곳에 에뽀끄 멤버들이 드나들었던 1965~1972년까지가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오센집은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날마다 만났던 한 사람이 너무 쉽게 떠나버린 뒤의 공허함, 인생무상 같은 것들이 이집을 드나들던 모두에게 엄습했을 것이다.
“양수아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은 서울전이 생각 밖으로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위증은 “양수아 선생이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달리 서울전에 많은 애착을 가졌는데 실패하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오센집과 Y살롱은 광주의 문화중심지

위증은 ‘양수아의 서울전 꿈을 돕기 위해 그의 그림에 자신이 시를 쓰고 글씨는 송곡 안규동, 평보 서희환 등이 글씨를 써서 ‘유목민의 본적지’라는 제목의 시화전을 열었다. 여기서 ‘유목민’은 양수아를 일컫는 말이다.
위증의 ‘빗소리’라는 작품은 이렇다.

누가 나의 오랜 미명 쪽에서
흐느끼고 있는가.
이제 겨우 떠나야 옳을 때
비가 내린다.
이 돌연한 사월의 출처를
나는 안다
아주 잊어버려야 한다.

이 시화전은 당시 솔드아웃이 되었다. 양수아를 돕기 위해 기관장과 기업인들이 한 점씩 사주었던 것. 위증은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작품값을 수금하여 양수아 선생의 부인 곽옥남 여사에게 전달했고 드디어 대망의 서울미문화원에서 서울전을 갖게 된 것. 70년대 초 신석정 시인의 시화작품이 3만원이었는데 양수아 작품도 그와 비슷한 수준에 팔려나갔다.
그러나 서울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서울의 김종일 화실에 칩거하면서 얼마간 술로 세월을 보냈다. 김종일 화실은 이대입구 육교 옆에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간 사람들이 주로 드나들며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던 ‘아는 형님’의 집 같은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부인 곽남옥 여사가 서울로 올라가 모시고 내려왔는데 마치 가출한 아이를 찾아가지고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위증은 지금도 그날의 모습이 선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떠나버린 뒤 오센집은 물론 광주가 참으로 쓸쓸해졌다고 회고했다. 마치 전쟁 막 끝난 것처럼 교교해졌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 오센집은 흔적도 없고 마음씨 좋은 오센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해 불행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광주미술계 일부에서는 60,70년대 광주 Y살롱과 함께 광주문화의 한 축이었던 오센집에 표지석을 남기고 ‘오센집의 추억’을 떠올릴만한 전시회라도 갖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서양화가 장지환씨는 “이 지역 비구상미술의 텃밭이었던 오센집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문화적 발상”이라면서 ‘오센집의 추억’전 기획은 지역 미술계에 커다란 의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형원 발행인>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