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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3일(화요일)

우암학원 조용기 학원장(學園長)

100세 시대의 진정한 롤 모델… 아흔 넘어 인간학 강의하는 ‘상록수’
지금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담배꽁초 주우며 “감사 합니다”
2016. 09.10(토) 10:17확대축소
우암학원 조용기 학원장
“세상 떠나는 날까지 일하며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삶 살고 싶어”

너무 잘 알기에 두려울 때가 있다. 마치 의사가 가족이나 유명인사를 진료할 때 더 긴장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학교법인 우암학원 조용기(趙龍沂) 학원장을 만나 뵈러 가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흔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도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에게만 있는 ‘조용한 위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더러는 선문답 같은 것도 있을 터인데 잘 헤아릴 수 있을까 겁도 났다. 엄살이 아니다.

9순의 조 학원장은 옥과 전남과학대학교 본관 2층 자그마한 방에서 대담자를 기다리고 계셨다. 커피향이 참 좋았다.
“500원짜리 동전 한 닢을 손에 들고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은 조 학원장이 남부대학교와 전남과학대학교에서 ‘조용기 인간학’을 강의할 때 묻는 물음 가운데 하나다. 조 학원장의 회고록 ‘길을 찾아서’를 독파(?) 했기에 첫 번째 질문은 쉽게 통과했다. 그 답은 엽서를 사서 받은 사람이 평생을 잊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 이었다. 모든 것을 비워낸 속기(俗氣)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맑은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번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전히 새벽 5시가 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교를 한 바퀴 도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지요. 그냥 도는 것이 아니라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담배꽁초나 휴지를 주어 쓰리기 통에 버리고 간단한 아침운동을 하는데 4,50분이 걸립니다.”
조 학원장은 육영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하루도 청소를 걸러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적어도 ‘우리가 지나간 자리’라도 쓰레기가 없도록 하자고 강조하면서 손수 실천해 온 것이다.
“학교에 나와서는 강의록을 쓰는 것이 첫 번째 일이고 두 번째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고 답했다. 사람마다 나이에 걸맞은 일이 있고 그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남에게 짐이 되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용기 학원장은 2008년 자신 명의의 아파트까지도 학교법인에 기탁했고 결재난이 없어진지도 수년이 되었다. 그래도 매일 학교에 나와 청소를 하고 구순을 넘긴 지금도 남부대학과 전남과학대학에서 매주 2시간씩 ‘조용기 인간학’ 이라는 제목으로 2학점짜리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강의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휴강을 해본이 없다고 했다.
내용이 궁금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이야기들입니다. 더러는 읽었던 책 가운데서 감명이 깊었던 대목을 내 인생에 비교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실시해 ‘내가 너라면 이렇게 하겠다.’라는 조언도 해줍니다. 딱딱한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주어 한없이 고맙습니다.”
조 학원장은 지금도 2시간의 강의를 하기 위해 최소한 7,8시간을 준비한다고 했다. 지금도 이면지에 빼곡히 메모를 하고 한 대목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강의록을 봐 가면서 수업을 한다고 했다.

곱사등이었던 알렉산더 대왕, 다리를 절었던 셰익스피어, 청각장애인이었던 에디슨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했는지,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하늘을 나는 것은 협동을 통해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함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숙명을 믿으나 긍정적인 사람은 숙명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 등이다.
좌우명이기도 한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 앞에서

이들 강의록을 한마디로 말하면 가훈이자 좌우명이기도 한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로 집약된다. 이 세상 어떤 책에도 없는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형과 나를 불러 세우고 빗물이 내리는 처마 밑에 손가락을 받쳐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손을 내리고 처마 밑에 있는 댓돌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댓돌은 오랜 세월 빗방울이 떨어져 움푹 패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바위보다 강한 손가락으로 세상을 뚫고 나라가는 교훈이었습니다.”
조 학원장은 그날 이후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왔다. 옥과고등학교 교정과 전남과학대학교, 남부대학교 캠퍼스에는 이 ‘손가락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캠퍼스를 드나든 수많은 학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라고 가르치고 교육자나 학부모들에게는 ‘달걀이 깨어나 바위를 넘다’라고 말해준다. 즉 달걀로 바위를 쳐서 이길 수는 없지만 기다려서 병아리가 깨어나고 닭이 자라면 바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수만 번 변하기 때문에 일찍 포기해버리지 말고 기다려주라는 권고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
우암(愚巖) 조용기 선생.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왔다. 이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암은 자신의 호인 어리석은 바위처럼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고 또 뚫었다. 눈치 빠른 세상에서 어리석음을 통해 성공의 길을 열어간 것이다.
여기서 잠시 조용기 학원장의 생애를 들여다보자. 1926년 곡성 옥과에서 가난한 선비의 5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순천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운동을 벌였고 해방과 함께 광주YMCA 재건운동에 참여했다. 1947년 조선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숭일학교에 근무하다가 6.25가 발발하자 옥과의 자신의 집터에 천막 2채로 옥과고등학교 전신인 옥과농민고등학원을 설립했다. 이후 1990년 정선실업전문대학(전남과학대학교 전신), 1998년 남부대학교, 2002년 곡성 시니어클럽, 2005년 우암유치원 설립 등 유아원에서부터 4년제 대학까지 9개를 거느린 종합 교육센터로 발돋움했다.

개인적인 이력은 1952년 무소속으로 최연소 전남도의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전남공론사를 설립해 ‘새전남’을 창간, 발행했다. 1973년 학교 수익사업으로 주식회사 두보실업 창립, 이익금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미국 하와이 퍼시픽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행정학 박사학위 취득했다. 2000년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사학법 개정 반대를 주도했다. 2008년 개인의 전재산을 우암장학재단에 기탁했으며 201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중국정부로부터 지선장을 수상했다.
현재 학교법인 우암학원 설립자 겸 학원장, 의료법인 우암병원, 재단법인 우암문화재단 설립자, 사단법인 한국대학법인협의회 명예회장,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을 맡는 등 ‘영원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막 2칸으로 육영 시작…남부대학교 등 9개법인 일궈
첫막교실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목조건물

그가 태어났을 때 조국은 이미 일제 치하에 있었다. 심 훈(1901~1936)의 소설 ‘상록수’를 읽으며 자랐다. 일제의 탄압과 6.25의 비극으로 가난에 빠져 있는 민족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라는 신념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가난한 선비였던 부친 조동선이 일본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던 집이 불태워지고 학교마저 옮겨야 하는 등 아픔을 겪었다. 일제가 집터에 신사를 짓기 위해 집을 비우라고 했지만 이를 거부하자 집에 불을 질렀고 아버지를 옥에 가뒀다. 이 때의 일은 그가 평생을 일본을 미워하고 교육을 통해 우리민족을 일으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종형인 조용택 전도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순교를 당한 사건이다. 조 학원장의 집안은 철저히 유교를 신봉했다. 그런데 일찍 홀로된 고모가 옥과교회에 나가서 온 가족을 전도해 80명의 가족 가운데 2사람만 신도가 아니었다. 순교한 종형도 미국인 선교사 타마자 목사와 광주·전남지방의 기독교선교사업 업무를 하다가 평양신학교에 진학했다. 그런데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학교를 중퇴하고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벌이다 순교하게 된 것.

조 학원장도 이 무렵인 중학시절에 기독교를 영접하고 지금까지 옥과교회에 나가 봉사하고 있다. 우암학원의 설립이념인 애천(愛天) 애인(愛人) 애국(愛國)의 삼애정신도 기독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청년 조용기

조 학원장은 당시 타마자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린스턴대학 동창이었던 그는 한국이 비록 일제 치하에 있지만 ‘맑은 가을 하늘과 세계적인 보리밥 숭늉, 그리고 뛰어난 두뇌를 가진 청년지도자(이승만)가 있어 곧 독립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얼마 후 해방이 되었다.

애천(愛天) 애인(愛人) 애국(愛國)의 삼애정신.
학교를 시작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암송했던 성경구절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욥기8:7)라는 것이었다. 그는 늘 창대함을 믿으며 바위를 뚫었다. 맨땅에 학교를 짓는 일은 험난했다. 때로는 모함으로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고 밀린 자재값과 품삯을 갚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나 오늘이 마지막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소. 나 죽어 다시 태어나거든 좋은 학교 한번 만들게 해주시오”
어느 해 새벽녘, 수표를 막아야 하는 날이 밝아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자살을 결심하고 소나무 앞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그런데 “너 죽으라고 가만 나둘 것 같으냐?”라는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눈을 떠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해결방안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차마 죽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업자들이 딱한 사정을 봐주고 교사들이 급여일을 기다려줘 해결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천막을 목조건물로 바꾸기 위해 선산의 벌목허가를 받아 나무를 베어와 집을 짓고 있는데 느닷없이 검찰에서 체포해간 적도 있었다. 허가량보다 더 많이 베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 조 학원장은 이 같은 일을 겪으며 ‘힘이 없는 진실은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으로 25세때 초대 전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연소 도의원에 당선되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전남도의회에서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던 것.

그는 검찰에서 풀려나 더욱 학교 일에 매진했다. 아이들에게 학교 오는 길에 소똥을 주워오면 돈을 쳐주고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게 했다. 아이들은 틈틈이 농사를 배우며 자립정신을 터득했고 돈의 소중함도 배워 나갔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은 직접 똥지게를 지고 합수를 퍼서 나무에 심어주고 일요일 저녁에는 흙을 덮는 일을 수년간 되풀이했다, 그때부터 화장실과 친해진 탓일까. 조 학원장은 지금도 화장실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으면 맨손으로라도 주워서 치운다. 이런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번져갔고 지금은 적어도 화장실에 꽁초를 버리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알려진다.

롱펠로우의 ‘인생예찬’ 되뇌며 인내하다
조 학원장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 때 조용히 암송하는 글이 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가 쓴 ‘인생예찬’ 가운데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라는 대목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며 세심하게 살피는 나날 중에도/ 때로는 건성으로 지나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함과 곧고 바름을 강조하면서도/때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만이 가득 할 것 같은 특별한 날에도/ 홀로 지내며 소리 없이 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재미난 영화를 보며 소리내어 웃다가도/ 웃음 끝에 스며드는 허탈감에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일의 할 일은 잊어버리고/ 오늘만 보며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픈 날이 있습니다
한 모습만 보인다고 하여 그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들린다고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가끔은 흔들려 보며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봅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희망을 품은 시간들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시간들 안에는 새로운 비상이 있습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입니다/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조용히 이글을 읽고 나면 새로운 각오가 생기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학을 강의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글을 한번 씩 읽어보도록 강조한다. 누구나 흔들일 때가 있지만 그 흔들림을 딛고 일어서면 바위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이 조 학원장의 철학이다.

한국 최초의 학교기업 등 학교를 ‘실용의 장’으로
우암의 교육철학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도의교육과 협동교육, 직업교육이며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기업이라 할 두보실업을 창립해 그 이익금으로 학생들의 진학의 꿈을 키워주기도 했고 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시니어클럽 운영을 맡아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두보실업에서는 코오롱과 협력해 일본에서 필요로 한 옷감을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주경야독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이 때의 캐치프레이즈가 ‘낮에는 수출역군, 밤에는 자랑스런 고등학생’이었다.

시니어클럽은 주로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데 전남과학대학교에 설립된 옥과시니어클업은 색다르다. 노인들이 학교에 나와 자기가 갖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발휘해 일정한 수당을 받고 대학의 도움으로 건강관리, 신체 트레이닝 등의 각가지 혜택이 주어지고 있어 인기가 높다.

조 학원장이 시니어클럽을 설립한 것은 “인간이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손에 일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지역의 노인들과 함께 할 일을 찾고 그 자신은 늙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지만 말을 할 수 있기에 강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남은 소망이 있다면 환경오염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야생초들을 찾아 돌보고 키워서 넘겨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 일 또한 이미 학교농장에 야생초 재배를 시작했다.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 삭발

사학법 개정 반대운동 등 뜻을 굽히지 않아
조 학원장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 그것이다. 학교의 일도 일이려니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학법 개정이란 암초를 만난 것이다. 자신이 한국사학연합회장을 맡고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총대를 메지 않을 수 없었다. 난생처음 삭발투쟁도 했다. 당시 사학법의 요지는 학교 설립자는 설립자로 명예를 갖고 운영은 교사들에게 맡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 학원장은 학교마다 설립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설립자의 정신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개방형 이사를 4분의 1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면단위에 전문대학을 세우는 일이나 광주 첨단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남부대학교을 세우는 일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힘이 부치고 어려울 때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라는 신념으로 해냈으며 남부대학교란 이름은 남부에서 최고가 되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

조 학원장은 옥과고등학교에 인성예절관 건립을 추진 중인데 ‘개심원(開心院)’ 이라는 현판도 미리 써두었다. 글자 그대로 마음을 여는 집이라는 뜻이다. 구십 평생을 살아온 인생의 선배로서 진정으로 마음을 열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훈시이기도 하다.

조 학원장은 서울출신의 이연희 여사와 결혼,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이씨는 서울출신으로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한국은행에 근무하다 조 학원장과 만났다. 부친이 이시영부통령의 비서실장과 내무부 지방국장을 지낸 고위 관료의 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딸의 꿈이 ‘인간 상록수’가 되는 것이었고 농촌운동을 하는 그 청년과 만난 것이다. 그날 이후 같이 밭을 갈고 운동장에 풀을 뽑아내면서 학교를 가꿨다. 학교법인 우암학원 이사장이란 직책도 받았지만 그것은 그냥 명예 정도로 생각하고 자신이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골몰했다고 한다. 또 이연희 이사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호남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해 모교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는 등 권사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참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23평 아파트에 살면서 고생만 많이 하고 떠났는데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납니다. 삶 자체가 예배였고 그런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 하나님의 딸이었습니다.”
조 학원장은 이 대목에서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 이연희 이사장이 우암가족과 영별했던 지난 4월 옥과교회 주경수목사는 추모사에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어머니였고,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어머니였다”고 회고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장남(성범)은 우암의료재단 이사장, 차남(성수)은 남부대와 전남과학대 총장, 3남(열)은 재미사업가, 딸(성경)은 남부대 음악학과 교수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막내아들(준범)은 영문학박사로 캐나다에서 수학했으며 한국대학협의회에서 정책을 담당하다가 내려와 현재 남부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큰아들은 학교보다는 사업을 좋아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를 설립, 의료법인으로 발전시켰고 둘째가 젊어서부터 육영사업에 관심을 갖고 고생해 우암학원의 경영을 맡겼다고 한다.
한편, 우암학원은 오는 9월 18일 창학 66주년, 조용기 학원장 교직의 길 71년을 맞아 ‘우암교육사상총람’ 발간을 추진하고 있다. 우암의 교육사상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한편 후학들에게 보여준 의지와 신념, 불굴의 투지, 뜨거운 열정 검소한 생활 등을 담아 지표로 삼기 위함이다.
전남과학대학교 전경


“광주가 세계적 미용도시로 나갔으면… ”
“나는 학교를 세울 때부터 실용을 강조했습니다. 유교중심의 형이상학적 학문에서 벗어나 실용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의, 협동, 직업, 이 세 가지가 함께 가야 완전한 교육이 이뤄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용중심의 전문대학을 세웠고 남부대학교도 실용중심의 학과가 많다. 조 학원장은 지역의 원로로서 학교와 연장선상에서 한마디 고언을 잊지 않았다.

“광주가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가 해결된 뒤에 문화가 발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광주도 실용중심의 산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광주를 세계적 미용도시로 만드는 것도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조 학원장은 광주는 이미 세계적 미용도시로 나갈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깔려있다면서 광주시가 관심을 갖고 추진해가면 해외관광객 유입 등 커다란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의 모든 생애가 스며있는 손가락 바위 앞에 섰다. 스물네 살 청년 조용기는 지팡이를 든 아흔 한 살의 노인으로 바뀌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진 바위 앞에서 노 스승은 “교육은 희망을 가르치는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대담자에 대한 첫 질문은 “500원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느냐” 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질문은 “환갑 이후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무거운 숙제였다. 지난 여름은 너무 무더웠다. <지형원 발행인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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