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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7일(일요일)

6. 영암 모산리

600년 역사의 영팔정과 현대미술관이 있는 ‘문화류씨 집성촌’
초등학교 때 일기장과 앨범, 가족에게 보낸 옥중서신 등 가슴 뭉클
2016. 01.27(수) 15:34확대축소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행복마을’이다. 그 전통은 먼저 마을입구에서 만나는 전남도지정 문화재 제 105호 영팔정(詠八亭)에서 찾을 수 있고 현대는 이른바 ‘누드콘크리트’라는 최신 건축기법의 아천미술관과 가족유물관이 말해준다. ‘행복마을’이라는 것은 모산리가 전남도에서 주최하는 제1회 전라남도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모산리는 요즘 유행하는 귀촌·귀농의 1순위 후보인 셈이다. 우선 광주에서 40분 남짓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현대미술관과 야외음악당까지 갖춘 멋진 문화마을이다.

죽봉(竹峯)과 곰봉으로 이어지는 뒷산이 마을을 두 팔로 안고 있고 그 아래는 170여 호의 한옥들이 어깨동무 하듯 펼쳐져 있다. 빈터에 새로 지어진 집들도 대부분 전통한옥이다. 마치 조선시대 반촌(班村)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이 마을은 부자정승(父子政丞)이 태어난 호남의 명기(明基)로 유명하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또한 명분과 정리를 중요시했던 선비들의 후예로 자긍심이 높다.

영팔정 분비재 등 문화유적 많아

마을의 자랑이자 도지정 문화재인 영팔정(詠八亭)은 고려말 ~ 조선초 문신이자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하정(夏亭) 류관(1346~1433)이 주위 경치에 감탄하여 아들 맹문을 시켜 조선 태종 6년(1406)에 지은 정자다. 정확히 609년이 되었다. 영팔정 마당에 있는 450년 된 느티나무도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처음에는 모산리의 ‘모(茅)’자와 호인 하정의 ‘정(亭)’자를 따서 ‘모정’이라고 불리었다. 훗날 율곡 이이·약천 남구만·고경명·남이공·류상운 등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팔영시(八詠詩)로 읊어서 ‘영팔정’으로 바꾸었다. 율곡의 시는
정유재란 때 분실되었고 나머지는 글들은 편액으로 남아 있다. 정자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내부는 방이나 벽체 없이 사방이 개방된 정사각형 평면이다.

이 영팔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뒤에 있는 ‘분비재(憤肺齋)’라는 건물이다. 분할 분(憤)자에 말 나오지 아니할 비(肺)자를 썼다. ‘분하더라도 흥분하여 말하지 말라.’라는 뜻. 이 글속에 담긴 진짜 뜻은 ‘분해도 말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자신 되돌아보기와 학문에 더욱 정진할지니라.’라는 깊은 뜻이란다.

이 분비재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마을의 강당이자 서당이다. 이 분비재를 건립한 사람은 하정공의 7대손인 송계 류공신으로 알려진다. 상량문에 있는 건립연대는 조선 인조 21년 1643년으로 되어 있다. 탐관오리들이 설치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곡악아세(曲學阿世)하는 자들이 많아지자 마을의 자녀들을 이곳에 불러 교육했다고 한다. 6.25사변 때 불타 없어졌으나 1988년 정부의 전통문화유적 보존사업으로 선정돼 복원 되었다.
분비재 바로 뒤에는 죽봉사우가 있다. 사교당(四矯堂) 류 준(柳浚)의 문인들이 1665년에 건립하여 향사했으며 이후 사교당의 손자로 영의정을 지낸 약재 류상운을 함께 배향하고 있다.

하정 류관이 모산리 류씨의 파조(派祖)
하정 류관(좌) 약재 류상운


여기서 잠시 아들에게 영팔정을 짓도록 했고 모산리 문화류씨의 파조(派祖)인 하정(夏亭) 류관(柳寬)(1346 ~ 1433)에 대해 알아보자. 하정은 시조로부터 13세손으로 자는 몽사(夢思) 경부(敬夫)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1371년(공민왕 20)에 문과에 급제해 전리정랑, 전교부령, 봉산군수 등을 역임했고 조선이 건국된 뒤 내사사인으로 ‘대학연의’를 임금 앞에서 강의했다. 대사성, 형조전서, 계림부윤, 예문관대제학, 우의정을 지냈다.

대사헌을 지낼 당시 불교를 배척하고 간관을 탄핵했다는 이유로 문화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1405년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것이 전라도와의 인연이다.
1421년 다시 대제학으로 궤장(免杖. 임금이 국가에 공이 많은 늙은 신하에게 주는 안석과 지팡이를 이르던 말)을 하사받았다. 1424년 우의정에 올라 ‘고려사’를 수교(曲校: 다른 것과 비교해 교정함)해 올렸다. 1425년 벼슬을 사직했으나 허락받지 못했고, 81세가 된 이듬해 우의정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세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문화의 정계서원(程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하정집』이 있다.
청백에 얽힌 일화를 들어보자. 어느 날 장마로 집에 비가 새자, 우산을 받쳐 들고서 부인에게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서울특별시에서 하정청백리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조선초 한양과 주변에 거주하였던 청백리에 녹선된 방촌 황희,
고불 맹사성, 하정 류관, 최만리 등을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하정이 서울시민이 추구하는 공무원 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동대문구에서는 신 도로명에 하정길을 만들었다.

부자정승의 마을 …금안·회진과 함께 유명

모산(茅山)마을은 본래는 나주군 비음면(非音面) 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암에 편입되었다. 나주군에 속해있을 때 노안면 금안동과 회진과 함께 유명한 3개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금안동은 신숙주가 태어난 곳이요, 회진마을은 백호(白湖) 임재(林悌) 탄생지다. 이곳 모산리는 약제(約齋) 류상운(柳尙運)과 그의 아들 만암(晩菴) 류봉희(柳鳳輝) 부자정승이 태어난 곳이다.

본래 하동정씨와 경주이씨가 살던 이곳에 문화 류씨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약 600여년 전 하정 류관의 현손(손자의 손자) 희정(希汀, 1472~1528)이 영암군수를 지낸 것에 연유한다. 영암공 류희정이 조카 용공(用恭, 1492~1551)을 이 마을 하동정씨와 혼인시켜 살게 하였다. 또 용공은 4촌 동생인 용강(用剛, 1514~1589)를 모산으로 불러 같이 살게 되면서 이들 두 사람이 입향조가 된 셈이다.
이후 하정의 9세손인 약재(約齋) 류상운(柳尙運)은 숙종 때 영의정을 세 차례나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만암(晩菴) 류봉휘(柳鳳輝)는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내면서 부자정승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 모산리에는 한때는 문화 류씨들이 300여호나 살았으나 현재는 100여호만 남아 있다. 그래도 광주 서울등지로 분가한 세대가 2,000호가 된다. 마을입구 큰 도로변에 호남명기모산(湖南名基茅山) 대승상장구지향(大丞相杖爐之鄕)이란 비가 있다. 대승상 류상운이 지팡이를 짚고 고향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낸 곳이라는 뜻이다.

마을 가운데로 들어가면 우의정 류관, 영의정 류상운(柳尙運) 류용공(柳用恭) 류몽정(柳夢井)의 신도비가 서 있다. 그러나 약재의 아들 만암 류봉휘의 신도비는 세워지지 않았다. 당파싸움에 휘말린 데다 신원이 늦게 이뤄지는 바람에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류씨 하정공파 전 광주종회장이자 성균관 전의인 류수영씨는 “신도비를 세우기 위해서는 유림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또 직손들이 이곳에 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모산리 후손들이 이 일을 숙제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신도비는 정2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묘사나 제각 앞에 세우는 것으로 혼이 다니는 길에 세우는 비석을 일컫는다.

신도비 바로 뒤켠에는 충효정과 효자못이 있다. 송계 류공신(1579~1655)이 부친상을 당한 뒤 울타리를 막아 닭을 기르고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잡아 노모를 봉양한 데서 연유한다. 이후 노모마저 별세하자 모친과 부친의 묘소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사친곡(思親曲)을 지어 부르며 묘소를 떠나지 않고 있음이 알려져 왕이 정려(旌閭)를 지어주고 효자비를 세우도록 한 것. 송계 류공신이 바로 영팔정 뒤 분비재를 지어 향리의 자녀들을 교육시켰던 분이다.
또 모산리에는 강진 완도 해남 장흥 등지에서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이 선현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하마등(下馬嶝)이 있다.

문화 류씨 고려 개국이후 황해도 문화에서 世居

여기서 잠시 문화류씨(文化柳氏)에 대해 알아보자. 시조는 류차달(柳車達)이다 그의 후손들이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정벌할 때 군량 보급에 문제가 생기자 류차달이 수레 1,000량을 만들어 군량을 조달하였고, 그 공으로 대승(大丞)에 올라 삼한공신(三韓功臣)에 봉해졌다.

그 시조인 대승공의 묘소와 그 아래 재실인 경사루(敬思樓)가 구월산에 있었으나 재실은 6.25때 소실되고 묘소도 퇴락하였다. 재일교포로 대종회 명예회장인 류기환(柳箕桓)이 지난 2013년에 직접 북한에 들어가 성역화사업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천미술관과 가족기념관

모산 마을이 귀촌·귀농 1순위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 3천여평의 부지에 미술관과 가족유물관, 야외음악당까지 갖춘 완벽한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아천 미술관은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류수택(柳秀澤)씨가 지난 2002년 사재(私財)를 털어 세운 사립미술관이다.

5대째 살아온 집터에 세워진 미술관은 구관, 신관, 유물관, 관리동 등 4개동으로 되어 있다. 모두 동·서양화, 서예 조각 등 3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학예사와 관리직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수차례 기획전과 문화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모산리가 명실상부한 문화마을이자 행복마을임을 보여준다.
아천(我泉)이란 이름은 류수택의 조부인 류혁(柳赫)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문집에 나오는 말로 이곳에 아천정이란 이름의 정자를 지으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당시는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손자가 뒤늦게 깊은 뜻을 새긴 것이다.

이 미술관 입구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친필이 액자로 걸려 있다. 김황식 이현재 전총리, 권노갑 정동영 정대철 박희태 손수항 의원, 탤런트 김수미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다. 지금도 이 미술관에는 미술관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많아 지역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모산리에서 세거해간 경북안동의 풍산류씨들이 대형버스로 다녀가기도 했다.

가족유물관은 1층,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 산정재(山亭齋)관은 조상들의 얼과 유물 및 유품이, 2층 竹軒館(죽헌관)에는 후손과 가족들의 유품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산정재에는 수택의 5대조 산정(山亭)선생, 4대조로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낸 죽헌(竹軒)선생의 교지. 나주향교 전교를 지낸 증조부의 유물이 있다.

가족유물관을 보면서 우물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이 같은 귀한 자료들이 난리 속에서 어떻게 지켜져 왔는가에 경외심을 갖게 한다. 해남 연동의 해남윤씨 유물관에 가면 고산 유선도의 친필 ‘오우가’를 비롯해 동양의 렘브란트로 불리는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유물들을 지켜온 종부들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난리가 날 때마다 귀한 유물들을 항아리에 담아 뚜껑을 덮어 대밭에 묻어두었다는 것이다.

모산 류씨 가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독립운동가 우석(友石) 류혁(柳赫,1893~?) 일명(龍羲)의 부인이 유물들을 모았다가 며느리이자 수택의 모친인 박경애 여사에게 전해주었고 박씨가 고스란히 모아두었던 것을 가족유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특히 가족 유물관에 독립운동가인 류 혁 선생의 옥중서신이 전시되어 있다. 또 그의 초상화와 그의 매제인 정우채(광주학생 운동 주도자)의 초상화도 걸려 있다. 류혁 선생이 바로 류인학 전 국회의원의 부친이자 류수택 부시장의 조부이다.

류 혁은 1893년(고종30) 나주향교 전교를 지낸 류흥인(柳興仁)과 모친 거창신씨(居昌愼씨) 사이의 1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부친이 큰 용(龍)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어 이름을 용희(龍羲)라고 지었다. 1945년 조선농민회를 창설하여 부회장과 상임위원회 의장을 지냈으며 해방 무렵 조선공산당 전남도당 위원장에 임명돼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항일운동가로 3차례 7년 4개월 동안 광주, 목포,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였다. 이때 옥중에서 왕래한 서신이 가족유물관에 남아 있다. 류 혁은 6.25때 납북돼 뒤 그곳에서 작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천미술관 마당에 들어서면 돌에 새겨진 “유민유허(遺民遺墟)”라는 비문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풍파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그 터 위에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글은 류 혁이 1945년 6월 선친 우제(愚齊) 류흥인(柳興仁)이 사망하자 ‘유민유허’라는 글귀를 명정에 새겨 관을 덮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일본사람들이 이 땅에서 무슨 짓을 하든 그래도 백성도 살아남고 조국의 국토도 남는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2층 竹軒館(죽헌관)에는 후손과 가족들의 유품과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류수택이 여러 고을의 시장·군수와 내무부 대변인, 광주광역시 부시장 및 국영기업체 사장을 역임할 때의 모든 기록물과 대통령들에게서 받은 임명장과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과 그림 등이 남아 있다.
2층 별관에는 한양대교수, 국회의원, 한국조폐공사 사장, 세계거석문화협회 총재를 지낸 류인학씨가 이 사재를 들여 준비한 화폐전시관에 화폐와 우표가 전시되어 있다. 또 류혁 선생의 막내아들로 교보실업사장,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류 건씨의 물품과 류수택씨의 동생인 故 류춘택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의 유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故 류춘택씨는 1983년 86, 88올림픽 준비 차 미국을 시찰하고 귀국하는 길에 소련의 대한항공 격추사건으로 사망했다.

유물관 입구에는 수많은 유물들을 간직했다가 자식에게 전해준 박경애 여사의 흉상이 서 있다. 영암 구림출신으로 함양 박씨인 박경애 여사는 이념갈등 속에서 6.25사변 때 남편을 여의고 시아버지마저 6.25때 납북돼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온 여인이다. 여인의 몸으로 주조장을 운영하면서 시동생인 류인학, 류 건 형제와 자녀인 수택, 춘택과 두 딸 등 6명 모두를 대학까지 보내 훌륭한 사회적 일꾼으로 길러냈다. 특히 박경애 여사는 시동생들을 자녀처럼 키웠으며 배고픈 사람들이 술밥을 훔쳐 먹어도 모른 척 해주었던 덕인(德人)이자 후덕했던 모두의 어머니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이들 숙질간의 우애가 세상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400년 역사의 당산제 유명

모산리 산정마을의 당산제가 유명하다. 매년 정월 열나흘 날 저녁 12시에 시작하는데 마을 뒷산에 있는 천신단과 마을의 당산나무(할머니)에게 당산제를 지낸다. 약 400여 년 전부터 지내왔다고 전해진다. 6·25 전쟁 이후에 잠시 끊겼다가 1955년부터 다시 계속하고 있다.
당산제를 지내는 준비와 절차는 다른 당산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는 여러 절차가 생략되거나 간소화 되고 있지만 이 마을에서는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음이 자랑이다. 제관을 뽑거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 등도 모두 집안에 좋지 않은 일들이 없는 사람으로 정하고 일단 책임이 맡겨지면 당산제가 끝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 마을 당산이 높으막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동서로 길게 뻗은 동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자정이 넘어 당산제가 끝나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뒤풀이를 한 뒤 대를 불에 태우는데 이는 대를 탈 때 나는 소리가 잡귀를 쫓는다고 생각해서다. 정월 열이랫날 부터는 마당밟이를 하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국회의원, 교수, 의사 많이 배출

많은 선비들과 벼슬아치들의 고향이라 근·현대 들어서도 큰 인물들이 많이 배출했다. 한 마을에서 국회의원과 장관까지 배출했으나 옛날의 부자정승마을이 허명이 아니다.
“우리 마을도 현대사의 많은 아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죄도 없는 양민들이 좌우대립과 전쟁 속에서 희생되어야 했고 자녀들이‘연좌제’라는 멍에 때문에 법관이나 행정기관으로 못나가고 교육계와 의료계로 진출한 사람이 많습니다.”
문화류씨 하정공파 광주종친회장인 류재균씨는 이런 현대사의 아픔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인물들이 국가와 지역을 위해 큰일을 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현대에 들어와 정계에서는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류인곤, 13, 14대 국회의원과 조폐공사 사장을 지낸 류인학,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18,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류성엽 등이 있다. 또 김윤덕 전 정무장관의 부군인 류홍근도 이마을 출신이며, 관계에서는 류수택 전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류 건 한국관광공사사장, 류 철 전 재경부관리관, 교육계에서는 류형진 전 대한교육연합회장(류길재 부친) 류명열 전 광주교육대교수, 서양화가로 서울대 미술대학장을 역임한 류경채, 류재한 전남대교수, 류정훈 서울대교수, 류재석 한양대교수, 류지웅 경찰대교수 등이다. 특히 의료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는데 류재원 전 조대의대학장을 비롯해 류근상 전 전남대병리학교 교수, 류종현 베스트신경외과원장, 류재운 현대병원장 등 100여명에 이른다. 군계에서는 류영조 육군소장 류용걸 육군대령 등이 있다.

경제계에서는 류경렬 제일건설회장, 류태완 한국전기 두온 사장 등이 있다. 특히 류경렬은 군 출신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어 가문을 일으키고 고향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건설도급순위 79위까지 끌어올린 그는 자신의 호를 딴 창암장학회를 설립, 신북의 초·중·고등학생 모두에게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후학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있다. 또 매년 신북면과 금정면 내 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 거액을 지원하는 등 남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최혜자(最惠者, 가장 베푸는 사람)의 삶’ 살아가고 있다.
‘제일풍경채’라는 이름의 전국브랜드로 성장한 제일건설은 현재 차남 류재훈(47)씨가 건실한 경영이념을 이어가고 있다.

100명 동시수용 120평짜리 대규모 한옥

모산리는 2015년 현재 187호가 살고 있는 큰 마을이다. 이 가운데 70%가 한옥으로 지어져 있으며 신축한 한옥을 비롯한 전통한옥이 30여 채가 넘는다. 특히 마을 한 가운데 건평 120평의 대형 한옥이 세워져 있다. 넓은 마당과 정각을 갖추고 있으며 5인실 2칸, 50여명이 동시에 숙식할 수 있는 큰 방이 2개다. 샤워실과 현대식 화장실, 컴퓨터 등 복합 센터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마을법인인 한곤메(한옥·곤충·메주)에서 운영하며 5인실 5만원이며 20인 이상의 단체객도 1인당 1만원씩만 받는다. 단 식사는 한 끼는 곤란하며 2, 3끼를 먹을 경우 가능하다. 그러나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이 가까운 곳에 있어 식사에 불편이 없으며 주방시설을 오픈하기 때문에 직접 요리도 가능하다. 현재는 복합센터를 건립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50명에서 1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식사도 예약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복합센터의 최희동(80)회장과 현재 이장을 맡고 있는 류근채씨(68)는 “2009년부터 2113년까지 56억원의 국비를 들여 전댓들 농어촌 종합개발사업이 이뤄져 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면서 “올해부터는 메주를 직접 띄워 간장과 된장을 판매해 소득사업을 펴게 된다.”고 말했다.
또 인근에 장류체험 센터가 있어 학생들이 직접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띄워서 된장이나 간장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 장류체험센터와 한·곤·매메 결합하면 농어촌 소득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Tel. 061-473-0112, Fax. 061-473-0113
홈페이지 : www.woody89@naver.com

◇ 주변 가볼만한 곳

▲ 월출산 =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남원의 지리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능가산, 정주의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높이 809m이며 주봉인 천황봉에는 평평한 바위, 풀밭, 기묘한 모양의 사자봉, 벼랑길, 동굴 등이 장관을 이루며, 바람골에는 천황사(天皇寺)가 있다.
특히 정상 가까이에는 월출산마애불좌상(月出山磨崖佛坐像국보 제144호)이 큰 암벽 위에 조각되어 있다. 도갑사는 신라 문무왕 때에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월출산 서쪽의 군서면 동구림리의 구림마을은 백제의 왕인 박사가 출생한 곳으로 책굴·돌정고개·상대포 등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도갑사-정상-천황사, 금릉경포대-정상-천황사, 금릉경포대-정상도갑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 기찬랜드 (영암읍 회문리 소재) = 영암군이 월출산 천황봉자락 맥반석에서 나오는 월출산의 기(氣)와 월출산 계곡을 흐르는 청정 자연수를 활용하여 새롭게 조성된 관광명소.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선생을 기리는 가야금테마공원이 조성돼 민족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산림욕장, 웰빙 기도로, 자연형 풀장, 기건강센터, 펜션, 체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지상의 기(氣)를 모아 하늘로 솟구치는 형국의 월출산 기슭을 따라 조성된 월출산 웰빙氣도로는 월출산의 물, 숲, 바위, 길을 체험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건강도로다. 월출산 웰빙氣도로는 영암읍 氣 체육공원에서 소로원까지 1.1㎞구간의 기찬길 산책로는 3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속에 자연훼손을 최소화한 오솔길을 조성하고 자연 친화적인 목교와 쉼터 등 숲속의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됐다.
이용료는 성인 4000원, 학생 2,000원, 1,000원 등이다. 단체 3,000원, 영암군민1,000원 주차시설 500대

▲ 마한문화공원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940-1) = 영산강유역의 고대 옹관고분을 통해 영산강유역의 고대사를 조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난생설화를 모티브로 하여 옥야리 옹관고분의 발굴과정, 시신의 매장형태를 모형으로 복원하였다. 야간에 조명이 켜지면 우주선 모양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전시관의 외형은 옹관의 형상을 이미지화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전망대는 공원일대는 물론 월출산과 인근의 영산강 뿐만 아니라 나주, 무안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나주박물관과는 직선거리로 6km정도의 거리에 있다. 문의 : 061-470-279.

◇ 가까운 맛집

▲ 월지가든 =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147-2 (061-4712-8821, 010-3617-8821)
신북에서만 30년간 식당을 운영해온 광주아짐이 손맛하나로 지켜온 식당이다. 나주 반남으로 시집왔으나 농삿일로 먹고 살기 어려워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을 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킨 억척 아짐이다. 대표적인 메뉴는 짱뚱이탕과 빠가사리탕, 가물치곰탕, 추어탕이다. 귀한 용봉탕도 하는데 미리 주문해야 먹을 수 있다. 산낙지, 전복, 각종 횟감도 맛볼 수 있다.
먼저 가장 값이 비싼 용봉탕부터 소개한다.
용봉탕은 닭과 잉어를 넣거나 잉어대신 자라를 넣기도 한다. 잉어용봉탕은 모유를 수유하는 산모들에게 좋은 출산 후 보양식이며 자라용봉탕은 기력회복에 좋은 음식으로 스테미너식으로 인기가 높다. 요즘은 잉어나 자라를 황토를 먹여 키우기 때문에 비린내와 잡내를 최대한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이집에서는 닭과 자라를 과서 만든 용봉탕이다. 닭의 내장과 자라의 쓸개만 빼내고 인삼, 대추, 밤 등을 넣어 30,40분간 푹 과낸 뒤 닭과 자라는 건져내고 육수에 어죽을 쑤어낸다. 시골닭 대신 오골계를 넣기고 하고 아예 닭은 넣지 않고 자라만 넣기도 한다.
자라 1.5㎏짜리를 넣으면 22만원 정도며 닭은 넣지 않거나 자라가 조금 작으면 19만원 안팎이다. 네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양식자라이기는 하지만 손님대접으로는 더없이 좋은 메뉴라고 귀띔 한다.
짱뚱어는 강진이나 양암 쪽에서 대주는 사람을 두어 사오고 회는 완도와 강진 마량에서 가져온다. 짱뚱이는 살을 갈아서 주기도 하지만 그냥 통째로 넣어주기도 하는데 1인당 4마리를 꼴이다. 뼈가 세지 않아 그냥 씹어지고 함께 넣어주는 시래기맛이 그만이다.
주인 아짐이 제일 자랑하는 밑반찬은 매실장아찌와 각종 젓갈류다. 토하젓 하나만 하더라고 저수지가에서 잡은 것을 직접 사다가 담가 밑반찬으로 내놓기도 하지만 젓갈만 따로 팔기도 한다. 멸치젓 갈치창젓 어란젓 등도 직접 재료를 사다가 30년 비법으로 담근다.

▲ 신월 착한고기 =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152-13
(061-472-9039)
‘전라도 땅 위의 자존심’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국산 암소한우만을 고집하는 ‘착한 식당’이다. 날마다 영산포 도축장에서 고기를 가져와 요리하는데 생고기에서부터 육질 좋은 구이, 모듬구이까지 다양하다. 생고기와 육회는 앞다리살을 사용하는데 150g에 18,000원이다.
‘전라도 땅위에 자존심’을 대표하는 메뉴는 꽃등심, 살치, 갈비, 안창살 등 좋은 부위만을 내놓는데 150g에 30,000원이다. 모듬구이는 채끝살, 치맛살, 양지안심, 업진살, 부채살 등을 섞어 내는데 150g에 20,000원이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야채 셀러드, 간, 천엽 등이 일명 스키다시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오래된 묵은지와 파지, 갓김치 등이 밥반찬으로 나온다.
식당을 그리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고기’만 쓰는 착한 식당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외지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다.
글 지형원 (발행인) / 사진 임철진 (사진작가)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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