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 고 범대순 선생 영전에 엎드려
| 2014. 05.24(토) 10:37 |   |
신록의 오월, 하늘은 높고 맑은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합니다.
이 흉폭한 야만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들은 어찌하라고,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길을 가다가, 나무그늘에서 만난 한줄기 바람이고자 하신 것입니까? 후학들은 영전에 엎드려 망연자실 애통해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신고(辛苦)하신 줄은 알았지만, 평소 그 어디에서도 병색이란 찾을 수 없을 만큼 한결같이 푸르른 기상으로 우뚝하셨고, 앞으로 5년쯤은 끄떡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셔서, 저희는 그런 줄로만 알고 시시때때로 가까이 모시고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 영전에 엎드려, 추모의 말씀을 올리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선생님을 모시고 산행을 할 때면, 젊은이들도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발걸음이 가볍지 않으셨습니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이 적어진다고 했습니다만, 후학들에게 의연한 모습만 보이지 마시고 한 번쯤 ‘아프다’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2012년 여름 졸저 ｢역사 앞에서｣ 발문에, “그는 나에게 산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산을 배웠다. 무등산이다. 다만 산을 느끼게 하고 산을 사랑하게 만들고 오늘 무등산이 나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게 만들었다"라고 쓰시고, “서석대 100회 등정의 가파른 현장에 그가 같이하였다. 중단하고 싶을 때, 지치고 힘들 때 무너질 번한 나의 산행은 늘 그가 부축하고 그가 나를 일으켰고 마음속에 그와 같이 있으면 힘이 살아났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등을 무등이게 하셨고, 그 아랫마을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시다니, 불초한 후생들이 잘못 모신 죄가 큽니다.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놀라 부르짖으니, 눈물이 흘러 비 오듯 하였습니다. 미혹한 저희들 이제 어디 가서 글을 물을 것이며, 누구에게 인생의 법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문하에 다닌 것은 비록 늦었으나, 서로 마음이 통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무등산에서 호연지기를 배우고자, 작년 이맘 때 꼬박 이틀 동안 산행을 할 때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었고,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살이에서 맘이 맞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호연지기란 본원적 우주 생명의 호흡이라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무등산이 나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신 뜻은, 호연한 정신의 불이 붉게 타오르는,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선생님께서는 자유로운 영혼에 드셨으니, 분단의 벽을 허물고 백두산에도 오르시고,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도버해협을 건너서 오든도 만나시고, 대서양을 건너 로버트 프로스트와 시를 논하시다가, 태평양을 건너 돌아오시는 길에 후지산도 둘러보십시오.
온 세상이 탐욕으로만 달려가는데, 뉘라서 천성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홀로 의연하게 남을 해하지도 않으셨고, 역사의 질곡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 가실 때가 되어 승화하셨으니, 무슨 여한이 더 있으시겠습니까? 타고난 천성 깨끗한 그대로, 저 하늘 높이 오르시어, 부디 후생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뒷사람인 저희들은 다만 슬퍼할 뿐입니다.
2014년 5월 22일
문하생 정규철 삼가 올리나이다.
* 정규철 :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이사장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