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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비-아무런 글도 새지기 않은 까닭은?
2014. 04.29(화) 10:06확대축소
전라도문화수수께끼(10) / 장성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산 33-1번지에는 아무런 글이 새겨져 있지 않은 무자비(無字碑)인 백비(白碑) 하나가 세워져 있다. 필암서원을 지나 홍길동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선비 박수량(朴守良. 1491~1554) 선생의 묘 앞에 있는 이 백비는 전남도기념물 제198호로 밀성박씨 돈재공파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석에 글자를 새기지 않은 이유는 고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비문을 새긴 것이 오히려 올곧은 삶에 누를 끼칠까 함이다. 이 비가 오늘날 청백리의 표상으로 유명한 장성의 백비다. 오늘날 전국의 공직자들이 이 비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으며 장성군청 앞마당에는 백비의 모형을 본떠 세워두었다.

박수량은 38년간 벼슬을 했고 관서에까지 올랐으나 2칸의 집도 없었다고 한다. 명종은 암행어사로부터 “끼니때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며 쓰러져 가는 초가에서 노모가 식은 죽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보고를 듣고 그의 고향인 하남 마을에 99칸 집을 지어주고 청백당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장성군이 최근 복원하여 체험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두 번 청백리로 표창을 받았다. 처음은 56세 때이고 두 번째는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인 61세의 때의 일이다.

백비의 주인공 박수량은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박종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연산군을 탄핵한 교리 김개(金漑)가 고부현감으로 있을 때 그곳에서 학문을 닦았다. 12세의 나이로 바다를 보고 망해부(望海賦)를 지었는데 전라감사는 이 글을 보고 “해남에서는 윤구(尹衢)의 문장을 얻고 고부에서는 망해부를 얻었다.”고 탄복했다고 전한다. 박수량은 23세(중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광주(廣州) 주학교수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성균관 전적 예조정랑, 사간원 정언을 거쳐 충청도 도사, 형조좌랑을 거쳐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부모의 병환을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관직을 사퇴하고 효를 다하였다.

마음가짐이 강직했던 그는 사간원 사간이 되었는데 이때 대사간 심언광(沈彦光)과 대신 이항(李沆)의 위세를 논박하고 상소를 올렸다. 형조판서로 있을 때는 명종의 신임을 받는 중추부 부사 이기라는 사람이 광주목사 임구령을 시켜 많은 잘못을 저지르자 임구령을 물러나게 하기도 했다. 이후 승문원 판교, 춘추관 편수관 ,병조참지를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 한성우윤, 공조참판, 예조참의, 호조참판, 한성판윤, 지중추부사, 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60세(명종 5)때 의정부 우참찬겸 지경연, 의금부 춘추관사, 오위도총관에 이르렀다. 이듬해 전라도 관찰사로 제수되었고 도총관을 겸하여 한성판윤 우참찬을 재차 맡았다.

박수량은 이렇듯 38년간 조정의 벼슬을 두루 거치고 중추부사로 재직하다가 64세를 일기로 운명하게 된다. 명종은 3일간 조회를 멈추고 조의를 표하였으며 대사헌 윤춘년으로부터 장례비용조차 없다는 보고를 듣고 장성까지 가는 장례비용을 하사했다. 또한 서해바다에서 빗돌을 골라 하사하였는데 누를 끼칠까 비문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묘 앞에 세운 것.

박수량은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시호도 요구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비만 세웠으며 사후 259년 뒤 순조 5년에 정혜공(貞惠公)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묘 옆의 비석은 334년이 지나 1888년에야 세워졌다. 묘지명은 김인후가, 신도비문은 송병선이 지었다. 순조 5년 라는 시호가 내렸으며 향유들은 모암서원(훼철)과 수산사에 배향 향사하고 있다.
김인후 선생이 쓴 묘비명에는 “금빛처럼 아름답고 옥처럼 단아한 자태, 안으로는 학문을 쌓고 밖으로는 행동을 자제했네. 몸가짐은 검약하고 낮춰 남을 반드시 사귀임에 해로움이 없었네. 영화가 조상까지 미쳤고 공이 죽은 후에 특이한 은총이 미쳤으니 이 경사 이어받아 길이길이 변함없이 보전하세”라고 씌어 있다.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백비는 아무런 글이 새겨지지 않자 글자 그대로 무자비(無字碑), 혹은 몰자비(沒字碑)로 불리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 우리나라 국어 대사전에도 없는 백비(白碑)로 호칭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파주·연천·양주 등 3개군의 경계에 위한 감악산의 몰자비(설인귀비), 진천 연곡리의 백비, 고려말 충신 이오(李午)의 백비, 효자 이온의 백비, 파주의 최흥원 청백리비, 함평 장산들 백비, 문경 새재의 마애 삼백비, 풍기 읍사무소의 백비 등이 있다. <炯>


지형원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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