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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4일(금요일)

한-베트남미술교류협회장 최창준씨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베트남문화원 세웠으면…”
“20년 동안 111회 방문한 미술通…
‘베트남미술의 이해’ 발간
2014. 04.29(화) 09:43확대축소
광주출신으로 오랫동안 한·베트남미술교류협회를 이끌어온 최창준(70.崔昌俊) 회장이 최근 오랫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 미술의 이해’를 펴냈다. 이 책도 베트남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으로 작가별로 분류해 전시도록이나 평론가의 평문을 번역, 편집한 것이다.
수록된 작가는 베트남 미술의 거장인 응웬 짜 찌, 부이 쑤언 파이, 응웬 상, 응웬 뜨 옹히엠, 즈엉 빅 리엔, 응웬 띠엔 청, 그리고 쩐 루우 하우, 루우 꽁 년 등 유명작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또 1996년 하노이 미술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하노이 화가 10인전’을 소개했다. 부록으로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미술전시회 가운데 큰 규모로 열린 4건의 전시회 서문과 작품을 수록했다.

미술전문가 아닌 컬렉터로서 베트남 미술에 대한 책을 쓰기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 발품을 팔았다. 1993년 첫 베트남방문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무려 111 차례나 오갔다. 직접 작품을 구입하고 후원하는 등 메세나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직접 구입한 베트남 미술품만 300여점이 이른다. 물론 이 가운데는 하노이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응웬상의 작품을 비롯 고가(高價(고가)의 그림도 있지만 장래성을 믿고 후원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작품이 상당수다.

“ 베트남 그림을 구입하면서 투자라는 생각으로 산 작품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작가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정체성이나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작품에 매료되었습니다.”

최 회장은 “한국미술의 해답은 한국에 있다”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평론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미술이 지나치게 서구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반해 베트남의 미술은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최창준 회장은 ‘베트남 미술의 이해 1’를 발간한 것은 메세나 차원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앞으로 2년, 3년 단위로 계속해서 Ⅱ,Ⅲ권을 발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이 베트남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한-베 수교(1992년)가 이뤄진 바로 이듬해다. 평소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기에 첫 방문길에 하노이 화랑가를 둘러봤는데 뛰어난 작품성에 깜짝 놀랐다. 잘 알려진 대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통치시대인 1925년 인도차이나 미술학교가 설립됨으로써 일찍이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 1세대 작가들에 의해 베트남 근현대미술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그는 베트남 서양화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을 시작으로 1950년대 미국으로부터 봉쇄를 당한 후 전쟁의 참상 등이 주요 주제로 등장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 개혁개방을 주장한 도이머이 시대 이후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베트남 미술품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돈만 2~3억원이 됩니다. 한 번도 이들 작품값을 따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손익을 알 수 없지만 원가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손해를 봤을지 모르지만 많은 베트남 친구들을 사귀었고 나름대로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증진을 위해 큰 역할을 했기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최회장은 개인적인 컬렉션 외에도 1994년 한-베미술교류협회를 결성해 수차례의 미술교류전을 개최했다. 베트남 중견작가 20인전, 호찌민옥중시 서예전 양국순회전, 광주에 베트남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베트남 미술산책(2004년 광주시립미술관)을 주관하는 등 실로 양국의 문화교류에 큰 공을 세웠다. 한-베 미술교류협회는 서울에 회원이 더 많지만 최회장이 광주에 있어 본부를 광주에 두고 있다. 일본에서 화랑을 경영하는 송문성씨 등도 한-베미술교류협회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회장은 2007년부터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베사모)’에도 가입하는 등 그야말로 ‘베트남멘’이다.


평화우호훈장·문화진흥공로훈장 수훈
부인 김혜경 교수도 문화훈장 받아

111회 베트남 방문이라는 사실이 증명하듯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베트남 사랑을 실천했다. 이 같은 공로로 지난 2006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평화우호훈장과 문화진흥공로훈장을 받았다. 또 호찌민시로부터 국제친선공로훈장(2005년)을,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로부터 민간외교공로 장관표창(2007년)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월 13일 베트남미술협회로부터 베트남미술발전 공로로 또 하나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미술협회는 우리나라처럼 사단법인이 아니라 차관급이 회장으로 있는 국가의 조직이다.

부인 김혜경 교수(조선대학교 사범대학)도 2012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문화진흥공로훈장을 받았다. 김교수는 서울대 음대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시간만 나면 베트남으로 떠나는 남편'을 내조하면서 스스로 각종 문화교류 행사에 직접 참여하였다. 부부훈장은 베트남 정부수립 이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알려진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인으로서 베트남 정부 훈장을 받은 사람은 하노이 문화원장을 역임한 금기형씨와 대사를 역임한 임홍재씨, 그리고 호찌민 옥중시 134편을 번역, 출간한 안경환교수(조선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창준 저 '베트남 미술의 이해' 표지화로 사용된 응웬상 '소싸움'


최회장은 문화교류 이외에도 민간대사를 자임해 호남지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돕고 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 주선, 각종 국제전시회 베트남 코미셔너 역할을 하는 등 한-베 친선에 가교역할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도 전남의 곡성군, 충북 음성군의 요청으로 교류협력을 주선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가 당장 이뤄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 베트남문화원을 설립하는 것. 하노이에 한국문화원이 있지만 한국에는 베트남문화원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왕이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베트남문화원을 세워 한-베 문화교류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이다. 실제로 베트남문화원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독지가를 찾고 있다. 이 일이 더디면 우선 광주·전남지역에 살고 있는 베트남여성들을 위한 (가칭) 베트남여성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 스스로의 권익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소망이다.

최창준 회장이 이처럼 깊숙이 베트남에 정을 붙이게 된 데는 다름대로 쓰라린 개인사(個人史)가 있다.
광주 광산에서 태어난 최회장은 서중·일고 졸업하고 연세대 공대와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건국대학교에서 강사생활을 하면서 연세대 전임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1973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광주문화방송 상무이사로 내려온다. 한사코 반대했지만 부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1970년 부친이 호남텔리비전을 설립하고 이듬해 문화방송 광주라디오를 통폐합, 광주문화방송(주)으로 개편했다. 이 과정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박대통령은 호남텔리비전을 설립할 당시 대구사범 1년 선배인 최승효 사장에게 방송국 설립권을 내준 것.

최사장은 대구사범 졸업 후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가 광산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현대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박대통령의 권유를 받고 방송에 뛰어든 최사장은 전재산을 팔아 궁동에 사옥을 마련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방송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최사장의 5남 4녀로 중 둘째인 창준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아버지로부터 신뢰가 두터웠다, 그래서 둘째인 그에게 장차 방송국을 맡길 요량으로 광주로 불러내렸다. 일본 후지TV에 1년 동안 연수를 보내는 등 나름대로 많은 공을 기우렸다. 그런데 1980년 예기치 않았던 광주항쟁이 발생하면서 궁동사옥이 시민군에 의해 불타고 말았다. 이어 그해 신군부에 의해 경영권 빼앗기고 1982년 부친이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방송국 사옥이 불에 타면서 건물과 고가의 방송기자재, 2,200여점의 고서화와 근대사 자료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100억원이 넘은 고가의 작품들이 연기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80년 광주항쟁 겪은 뒤 문화방송 넘겨주고 베트남으로

최창준 회장은 그날 이후 대주주가 아니라 소주주(주식 49% 보유)로 전락, 상무라는 직책만 수행하다가 1989년 모든 주식을 넘기고 MBC를 떠났다. 부친은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 방송국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49% 주식마저 매각을 종용하는 바람에 상무였던 최회장이 부친도 모르게 주식을 넘겨주었다. 당시 MBC의 가치를 생각하면 수백억원에 이르지만 10분의 1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셈이다. 뒤늦게 이같은 소식을 접한 부친은 몇날 며칠을 잠을 못이루었고 최회장은 부친에게 ‘장문의 사죄편지’를 올려야 했다.

최회장은 광주MBC가 지금의 월산동에 신사옥을 신축해 이전하자 궁동사옥에 창작스튜디오를 만들어 30여명에게 전기세 정도만 받을 정도로 임대해주었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관리비도 감당하지 못하자 임대료 대신 작품으로 받아 주는 등 나름대로 작가를 돕기 시작했다, 당시 궁동작업실에는 우제길, 한희원 채종기, 고영을 씨 등이 입주해 있었다. 이후 우제길씨와 유수종씨의 후원회장을 맡아 일본 전시회를 주선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베트남 미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베트남 미술계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했는데 의외로 그곳의 미술과 사람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지금 정말로 한국과 한국인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 많이 진출해 있어 앞으로도 더욱 돈독해질 것입니다.”
자신이 베트남에 처음 방문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관계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다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혈맹'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순천대에 250억원 상당의 부친소장품 기증

방송국을 떠난 뒤에도 평통자문위원과 키와니스 부총재 등을 역임하는 등 사회봉사 활동을 폈던 최회장은 1999년 부친이 수집, 소장해온 고서화와 간찰 등 2,700여점(250억원 상당)을 순천대에 기증했다. 기증품 가운데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이 그린 각종 고서화 300여점을 비롯 이황, 김정호, 박규수, 송시열 등 조선시대 문인학자와 한묵의 서첩 등 1,300점, 목민심서 필사본 등 조선시대 문집 100여권, 류관순, 최익현 기우만, 김태원 등 항일독립지사의 유묵과 간찰 1,000여점, 황매천과 관련이사 문묵 등 모두 2,700여점이다. 이 자료들은 현재 순천대 박물관에 보관돼 전시중이다.

부친의 영향으로 고문서나 각종 자료수집에 관심이 많은 최 회장도 자신이 수집, 보관하고 있던 순천농업학교 교우회지 창간호 등을 기증 순천대학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광주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 전시물과 자료를 기증하고 직접 역사관 선임연구원을 맡는 등 자료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서울 인사동이나 광주 예술의 거리 등을 돌면서 고문서나 간찰 등을 살피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선친 강운 최승효(崔昇孝. 1917~1999) 선생이 남긴 자료와 편지글 등을 엮어 강운통신이라는 이름으로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69호 478페이지를 발간, 선친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나 친인척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 통신 가운데는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글, 연하장 등도 들어 있고 1980년 광주MBC 화재 당시의 사진과 통폐합 자료 등도 담겨 있다.

한편, 최회장은 지난해 전두환 전대통령 일가가 여론에 밀려 재산을 토해내는 장면을 보면서 나름대로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민주국가에서 사유재산을 마음대로 빼앗았던 사람이 이제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당신도 한번 고통을 느껴보라는 한풀이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잃은 것이 있으며 얻는 것도 있듯이 국내에서 명예와 재산을 잃어버렸지만 베트남에서 친구와 문화를 얻은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베트남을 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운데서도 팜 띠엔 번 전 주한 베트남대사와는 각별한 사이다. 지난 2005년 제 1회 호찌민 옥중시 서예전을 시작하면서 베트남 대사관에서 첫 만남을 가졌는데 한국말이 유창한데다 젠틀한 외교관이어서 친해질 수 있었다. 부인도 광주의 자택을 방문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지금도 베트남에 가면 맨 먼저 만나는 사람이다. 현재 번 대사는 삼성전자 현지법인 상근고문을 맡고 있으며 조카 3명이 목표대학교에 유학중인데 최회장이 현지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VINH시에 살고 있는 응모 쩌우(CHAU)씨, 그리고 사진작가 겸 컬렉터 응웬만푹씨. 하노이 최고의 아트딜러 황티녹( Hwang Thi Ngoc ) 등 여러 사람이다. 하노이 뿐 아니라 호찌민시를 비롯한 지방도시에도 후원자 내지 친구들이 많다.
“베트남 미술시장 규모는 한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홍콩 등지의 아트페어에서 베트남미술을 주목하고 있어 미술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최창준 회장은 앞으로 머지않아 베트남미술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컬렉션들도 빛을 보겠지만 그보다 먼저 이 지구상에서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과 더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아직은 그림 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을 때 그림을 사도 좋고 작품발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한국에 초대하여 견문을 넓히도록 돕자고 말한다.

그는 베트남작가 가운데 작고한 브이 쓰언 파이(BUI XUAN PHAI) 응웬상 (NGUYEN SANG) 쩐 타잉 럼 (TRAN THANH LAN)과 생존작가인 레꽁 타잉 (LE CONG THANH) 람득만 (LAM DUC MANH) 등을 좋아한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작가정신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한편, 최회장은 이번에 발간한 ‘베트남 미술의 이해’ 이전에도 방송국에 근무할 때 ‘지방시대와 전파 미대어’ ‘문화방송의 역할’ 등을 펴낸 바 있다. 일본어는 매우 유창한 편이고 영어도 웬만한 대화는 가능하다. 그는 베트남 이외에도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기 위해 자주 해외를 나가다보니 광주·전남에서는 아시아나항공 탑승기록이 가장 많다.

“광주가 진정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아시아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최창준 회장은 문화중심도시가 되기 위한 제 1의 조건은 그 나라와 문화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형원 대표>


지형원 대표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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