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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4일(화요일)

특집 -광주·전남 지방신문사 어제와 오늘

광주·전남지역 일간지26개 등록, 18개 발행
군민신문 등 주간지 120여개…목포 15개로 가장 많아
2013. 06.20(목) 14:14확대축소
2012년 말 현재 광주전남지역에 등록된 일간지는 모두 26개다. 소문으로 떠돌던 ‘스물 몇 개가 된다더라’의 실체가 확인된 셈이다. 여기에 지역에 배달되는 중앙일간지와 경제지까지를 더하면 50여개가 넘는다. 신문홍수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선 시·군에서 발행되는 ‘00군민신문’‘00일보’ 형태의 주간신문도 광주 20개, 전남 94개로 모두 114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일간신문 및 주간신문 가운데는 등록을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신문발행을 중단한 회사들도 상당수다.
일간지 가운데서는 광주전남아침신문, 일간광주신문, 아침일보, 호남일보, 일간호남일보, 한반도일보, 매일광주신문, 광주전남아시아경제 등 8개지가 발행되지 않고 있어 실제는 18개 지방신문이 발간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문은 광주일보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이 없어지고 광주일보가 탄생했다. 그 다음 무등일보와 전남일보가 1988년에 등록을 마쳤다. 나머지 24개 신문은 2000년대 이후에 등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전남매일, 광주매일, 남도일보, 광남일보, 전광일보 등 5개 신문은 2000년 이전 등록되었지만 법인변경으로 등록일이 늦어진 경우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18개 일간지의 실질적인 사주의 사업은 건설관련 직종이 10개로 가장 많았다.
주간지의 경우 광주 5개 자치구에서 20개, 전남 22개 시·군에서 94개 발행돼 1개 자치구에서 평균 6개의 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 시·군·구 가운데 가장 많은 주간지가 있는 곳은 목포시로 15개다. 그 다음이 여수 8, 광양·화순 7, 강진·진도·함평 6, 나주 5, 순천·영암·해남·담양 4, 완도·영광·무안·고흥 3, 구례·장성 2, 곡성·장흥 1개 등이다. 제호는 지자체의 이름을 붙인 ‘00신문’ 13개, ‘00일보’ 4개, ‘00군민신문·00군민일보’ 9개 등으로 00신문이라는 제호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주간신문의 등록연대는 해남신문(1989), 전남동부신문(1992), 여수신문(1994), 화순군민신문(1996), 예향진도신문(1996), 영광신문(1997), 격주간 진도뉴스(1997), 전남도민신문(1998), 강진신문(1998), 격주간 화순의 소리(1998), 광양신문(1999), 목포투데이(1999) 등이 2000년대 이전에 등록을 마쳤고 나머지 대부분은 2000년 이후 창간되었다.
신문사 제호(좌로부터 옛 광주신보, 옛 전남신보, 옛 목포일보, 옛 동광신문)

지역 최초의 신문은 목포신보
광주·전남에 근대적 신문이 탄생한 것은 일제시대다. 청일전쟁후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항구도시에 거점을 확보해 신문을 만들었는데 1881년 12월 부산에서 맨먼저 ‘조선시보(朝鮮時報)’를 만들었고 그 다음 1889년 인천에서 ‘조선주상보(朝鮮週商報)’를 발간했다.
목포에서는 일문판 ‘목포신보’가 1899년 6월 16일 창간호를 냈다. 목포신보는 일본인 야마노다키조(山野瀧三)가 주간으로 시작하여 격일간을 거쳐 일간으로 발행되었다. 일본인들끼리 보는 기관지 성격의 신문이다. 사옥은 본정(중동)에 있었다. 창간 당시는 순보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1일과 6일날 4·6배판 8면형 4단조 신문이었다. 창간당시 일본에서 천엽(千葉) 기자가 초빙돼 왔으나 1년여 만에 떠났고 창업주인 산본(山本)이 2년만인 1901년 손을 들고 말았다. 이에 목포거류민회가 사무실을 목포금융조합 2층으로 이전해준데 이어 산본(山本)을 목포상공회의소 이사직에 앉혀서 계속 신문을 발간하도록 도와주었다. 당시 발행부수는 120~130부로 기록돼 있다.
이 같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목포신보가 정상화 되지 않자 거류민회 대표 곡원(谷垣)이 자본금 1만원의 목포인쇄주식회사를 설립, 사옥을 다시 중동으로 이전하고 격일제로 발간했다. 1909년 2월 1일부터는 일간으로 발간했다. 이후 1919년 산구용삼(山口龍三) 사장이 자본금을 2만원에서 5만원으로 증자하고 목포인쇄주식회사를 전남인쇄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어 광주의 광주신보사를 인수함으로써 전남지방에서 발간되는 2개의 신문사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해방후 목포에서 처음 신문을 낸 사람은 손수겸(경성일보 목포특파원)이다. 손수겸은 1945년 10월 19일 목포신보 후신으로 목포신보 속간호를 내고 나서 이듬해인 1946년 초 강대석, 문재철, 김철진 등에게 목포신보를 맡기고 광주로 올라와 광주신보를 창간한다.
강대석은 1946년 목포신보를 목포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였다. 1947년 화재가 나자 영해동 삼중정(三中井)백화점자리로 옮겨서 발행했는데 1950년 10월 북한 공산당에 의해 삼중정백화점이 또 다시 전소돼 12월에야 재발행이 이뤄졌다. 1952년 주식회사 체제로 바뀌면서 김문옥 사장이 취임하게 된다. 목포일보는 1965년 호남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으나 김문옥 사장이 별세함으로써 부인 장기순이 경영일선에 나섰다가 1967년 공화당 정권의 김병삼에게 인계하게 된다. 김병삼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김대중에 패배하자 1971년 강기천 사장에게 이양했다. 그러나 호남매일신문은 1973년 5월 31일자로 폐간된다. 1960년 7월 1일 이호중에 의해 목포매일신문이 창간되었으나 1961년 5.16 포고령 11호 언론기관 정비계획에 따라 폐간되었다.
한편, 목포신보사를 떠났던 천엽 기자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주간지 ‘兩字新聞’을 냈으나 1년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1924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사·지국이 개설돼 1929년 경찰성토대회,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등을 전국에 알렸다.

광주신보·목포신보 통폐합 전남신보 탄생
이 무렵 광주에서는 일본인 가타오카(片岡議)가 일어기관지 ‘광주신보’를 발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총독부가 1941년 1도 1사 주의라는 명분으로 언론통폐합을 단행, 광주신보와 목포신보가 없어지고 새롭게 전남신보가 탄생한다. 전남신보는 제호만 바뀌었을 뿐 시설과 진용은 광주신보 그대로였다.
해방 후 전남신보의 유일한 한국인 기자였던 김남중(전 광주일보 회장)은 해방되자 한국인 사원들을 규합, 신문발간에 나섰다. 목포에서는 경성일보의 목포주재특파원이었던 손수겸(孫守兼)이 옛 목포신보 자리에 목포신보를 발간했으며 손수겸은 1946년 광주로 올라와 명창순, 고광표 등의 도움으로 조선중보(朝鮮衆報)를 발간했다. 광주에서는 이무렵 건국준비위원회가 ‘건국특보’‘건국신보’를 발간하다 중단한 바 있다.
김남중이 주간 겸 편집국장을 맡았던 전남신보는 1945년 12월 미군정청에서 관리권을 얻었다는 이은상(李殷相)이 나타나 건준전남도위원장 박준규(朴準圭)를 앞세워 인계를 강요해 사장 박준규, 부사장 이은상, 기획국장 김남중으로 개편된다. 전남신보는 1946년 박준규 사장이 물러나고 이은상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호를 호남신문으로 바꾸고 가로쓰기를 시작했다. 호남신문은 전남신보의 사옥과 윤전기 등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조선중보는 고광표, 명창순이 신문사를 떠나고 호남신문과 합병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아 신순언(申淳彦)을 명예사장으로, 박철웅을 사장으로 영입, 광주신보로 새출발했다.
1945년 10월 선미봉(宣美峰)이 창간한 광주민보가 있었으나 미군정청 압력으로 동광신문으로 제호를 바꿨고 고광표에게 발행권을 이양했다. 고광표는 주필겸 편집국장에 고영환을 영입하고 반공보수 논조를 견지했으나 6.25 때 사멸되고 말았다.

해방직후 여수에서 대중보·주간해방신보 발간
해방직후 여수에서 박병호(朴炳昊)에 의해 대중보(大衆報)가, 이진문(李珍文)에 의해 주간 해방신보가 발간되었다. 대중보는 1947년 정재완(鄭在浣)이 인수, 주식회사로 체제로 개편한데 이어 1948년 1월 여수일보로 제호를 변경했다. 그후 여순사건으로 시설이 불에 탄 뒤 1949년 5월 복간했으나 1950년 6.25사변으로 소멸되었다. 1951년 복간해 날카로운 필봉을 구사했지만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폐간 조치되었다.
지방언론은 당시 신탁통치 반대, 호남의 11 폭동, 나주의 반석근 사건, 여순사건, 6.25 등 사회상 기록하는데 진력했다.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호남신문 광주신보 동광신보는 종군기자단을 편성했으며 중앙지들도 종군기자단의 기사를 게재하는 등 활약이 컸다. 이 과정에서 호남신보가 오보한 여순사건 주모자 중의 한사람인 김지회의 체포기사가 국내는 물론 AP, UPI, 로이터 등에 전재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6.25사변으로 북괴군이 7월 23일 광주로 진입했을 때 광주의 3개 신문사 기자들은 23일까지 신문을 발간하고 광주인근에 은신해 있었다. 그러다가 인민군 수색에 걸려 호남신문과 충장로 1가에서 발행되던 노동신문이 인민일보의 제작에 본의 아니게 협조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수복 후 최초의 신문은 광주신보·전남일보
수복 후 광주에서 맨처음 발행된 신문은 광주신보다. 손수겸이 10월 1일자로 속간호를 냈다. 다음으로 전남일보가 발간되었는데 이 신문은 훗날 김남중이 발행한 전남일보와 다른 전남도의 기관지로 판권 없이 발행되었다. 전남일보는 호남신문의 속간이 늦어지자 전남시국수습협력위원회 선전부가 귀속재산인 호남신문 사옥을 인수해 발행한 것이다.
6.25사변 전 호남신문, 광주신보, 동광신문 등 3사 체제였던 이 지방 언론계는 6.25때 동광신문이 자연 소멸되고 광주신보와 전남일보의 양립 체제 속에서 광주신보가 위세를 떨쳤다. 광주신보는 새로운 엘리트를 규합,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전남도 기관지 전남일보는 선전까지 맡아 역부족이었다.
이에 전남일보도 1951년 봄, 진용을 강화해 전남일보와 전 호남신문, 전 동광신문 등 3사 간부가 모여 발행인 고광표, 주필 김남중, 편집국장 한규종(韓圭鍾), 편집부국장 고문석(高文錫) 서두성(徐斗成) 등으로 진용을 재편했다.
그러나 광주에 복귀한 이은상이 전남도를 상대로 사옥명도소송을 제기하고 호남신문 사원들을 규합해 사내가 동요했다. 1951년 호남신문 사원들이 통행금지 시간에 전남일보 사옥을 강점하여 호남신문 속간호를 발행했다. 사옥 명도소송에서 호남신문이 승소하자 전남도 기관지 전남일보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에 김남중이 이은상에게 호남신문의 사옥과 시설을 넘겨주고 나와 부산 임시정부로부터 전남일보 판권을 허가받았다. 이 신문이 바로 광주일보의 전신이다.
신문사제호(위는 옛 전남일보, 좌는 옛 전남매일, 옛 호남신문)

▲광주일보
현재의 광주일보는 1952년 2월 10일 창간된 전남일보의 후신으로 1980년 전남매일신문과의 통폐합으로 새롭게 태어난 신문이다. 그러나 지령은 구 전남일보를 이어 6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구 전남일보의 사주는 호남신문 편집국장과 전 전남일보 주필을 역임한 김남중이다. 이후 아들 김종태, 손자 김형준에 의해 3대를 이어가다 2003년 대주건설에 경영권을 이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남일보 창간 당시 김남중은 이은상이 사옥명도소송으로 호남신문을 되찾아가자 사옥과 시설을 넘겨주고 나와 부산 임시정부로부터 전남일보 판권을 허가받았다. 최초의 사무실은 광주 충장로 1가에 있는 대한통신전남지사 2층을 임시로 사용했다. 이 신문은 구 전남일보의 속간이자 창간이기도 했는데 처음 발행된 신문의 지령은 395호였다. 19년만인 1971년 속간을 창간으로 표기했다.
2월 11일자 월요일 타블로이드 2페이지를 석간으로 발행했다. 편집 겸 인쇄인 김남중, 허가번호 454호, 발행소는 광주시 충장로 1가 5번지 전화 132번, 월정 구독료 4천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2000여부를 인쇄했는데 1면 머릿기사는 ‘판문점협상’ 기사였다. 편집국장은 김남중이 겸하고 문화부장 허연, 취재부장 김재희, 기자 김영국 전조영 최일출 정상진 최일현 문윤식 박찬하 박석창 정봉래 천백원 등이 참여했다.
광주일보의 사옥은 충장로 1가 대한통신전남지사 건물에서 1952년 금남로 5가 현 한일은행 건너편 대호다방 자리(건물주 최동복)로 옮겼다가 1955년 3월 6일 금남로 2가 구 동구청자리 전일인서관으로 이전했다. 그 다음 1958년 충장로 3가 하니문화관(천지빌딩 자리)을 매입, 이전했으며 1962년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시대를 열었다. 전남일보는 1980년 5.18 민중항쟁 직후 6월 1~10일까지 발행을 중단했으며 그해 12월 1일 광주일보로 통폐합되었다.
그해 11월 12일 밤 서울의 보안사령부와 각 지방의 파견부대에서 신문방송사장들을 불러 강제 서명토록 했다.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이 51 : 49로 합병되었으며 대표이사 발행인 김종태, 명예회장 심상우로 변경되었다. 이에 앞서 전남매일은 임시이사회를 열어 심상우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대표이사로 윤선호 이사를 선임한 바 있다.
한편, 광주일보에 통합된 전남매일신문은 1958년 김일로(金一鷺)가 주간지 ‘농촌중보’를 인수하여 운영하다 이를 폐간하고 1960년 9월 26일 전남매일을 창간했다. 광주신보와 호남신문, 전남일보 일부 사원을 영입하여 운영했다. 주필 서두성, 편집국장 이교은 등이다.
김일로가 1966년 타계하자 부인이 경영을 맡았고 1969년까지 박철(朴 澈)사장이 운영하다 1971년 로케트전기 심씨 일가에 신문사를 매각하게 된다. 심상수 사장, 심상우 부사장이 운영진으로 참여했다. 당시 논설실장 한상운, 편집국장 임재수였으며 1973년 심상수 사장이 회장으로, 심상우 부사장이 사장으로 바뀐다. 1980년 폐간당시 사장 심상우, 부사장 윤선호, 수석논설위원 신용호, 이사겸 편집국장 정공진 등이다. 1980년 11월 전남일보와 강제 통폐합까지 20년 2개월간 존재했다. 폐간당시의 지령은 5806호다.
광주일보는 광주시 광산동 78번지 전남매일사옥에서 창간식을 갖고 1980년 12월 1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명예회장 심상우, 상임고문 박진동, 사장 김종태, 부사장 윤선호, 지역사회개발연구소장겸 논설위원 최승호, 논설주간 신용호 편집국장 마삼렬 등이다.
광주일보는 1987년 창업주 김남중 회장이 타계한 뒤 회장 공석상태로 있다가 1994년 회장 김종태, 사장 최승호 체제가 되었으며 2002년 창업주의 손자인 김형준이 맡았다가 2003년 대주건설에 경영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후 손영호 백인호 김진영 유제철 사장을 거쳐 김여송 사장이 맡고 있다.
한편, 1950년대 잠깐 존재했던 신문으로 남도일보(南都日報)가 있다. 1959년 9월 황금동 54번지 창간해 5.16군사정변 후 폐간되었다. 발행인 겸 사장 서태관(徐泰寬), 편집국장서리 한상운 등이 참여했다.
1987년 발표된 6.29선언 제 5항은 ‘언론자유 창달을 위해 관련된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6.29선언 이전 종합일간지가 32개지에서 1992년말 112개로 350% 증가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등록된 신문은 전국종합일간지 23개, 지방일간지는 114개로 모두 137개다.(2012신문산업실태조사)
광주·전남에서도 전남일보(이훈동)가 1988년 7월 9일 석간으로 창간했고 이어 무등일보(박성섭)가 1988년 10월 10일 조간으로 발행되었다. 광주매일(조간·고제철)은 1991년 11월 11일, 전남매일(석간·안광양)이 1989년 6월 29일 창간되었다. 주간신문으로 호남교육신문(1986.10. 26. 김영용) 도민신문(1990.5.13. 서태관) 전라경제신문(1991.9.16. 김용삼) 빛고을신문(1991.9.28. 강요한) 등이 창간되었다. 지역신문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는데 여수 한남일보(1990년) 해남신문, 완도신문, 고흥신문, 순천신문, 영광 옥당골신문 등이 그 무렵 창간되었다.

▲무등일보
6.29 선언 이후 이 지역에서 최초로 등록된 신문으로 1988년 1월 15일 발기인총회 거쳐 2월 12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4월 17일 문화공보부 실사, 25일 정기간행물 등록을 마쳤으며 10월 10일 창간식을 가졌다. 발행인 겸 사장 박성섭, 편집국장 김효중, 논설주간 서재일 등으로 진영이 짜여졌으며 1990년 5월 30일 광주시 북구 중흥동 699-5번지 신축사옥에 입주했다.
무등일보는 1995년 덕산이 부도를 내면서 폐간되고 주식회사 라인문화에 매각되었다. 가든백화점과 라인건설 측이 무등일보 인수를 희망한 상황에서 사원투표를 거쳐 라인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999년 라인건설마저 부도가 남으로써 7월부터 12월 5일까지 휴간을 했다가 박희서 논설위원을 대표이사 발행인으로 하여 사원주주제 형태로 복간했다. 이듬해 하나로문화 공동대표이사로 김정수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후 2003년 3월 김명술, 11월 오종택, 2006년 3월 김명술, 6월 전용준 사장이 경영에 참여해 오늘에 이르렀다.
사옥은 중흥동에서 라인으로 넘어오면서 서동 KBC사옥으로 이전했다가 호남동 대원빌딩으로 옮겼다. 2000년 9월 김정수 사장이 참여하면서 상무지구 BYC빌딩으로 이전했다.

▲전남일보
1987년 6.29 선언이후 두 번째로 등록된 신문이다. 그러나 창간 날짜로 보면 첫번째 신문이다. 조선내화 주식회사 이훈동이 창간했으며 기존의 전남일보와는 무관하다. 1988년 8월 24일 창간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10월 12일 설립 등기를 마쳤다. 1988년 4월 25일 등록증 교부. 광주시 북구 중흥동 700-5번지 사옥에서 1989년 1월 7일자로 창간했다. 발행인 이훈동, 부회장 이정일, 사장 최종수, 부사장 윤선호, 논설주간 박인성, 편집국장 문순태 등이 참여했다. 이후 이정일 임원식 윤선호 박경엽 등이 사장을 맡았다.
전남일보는 2009년 이정일 사주가 사망한 뒤 유족이 경영하는 클럽 900, 대주기공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상태에서 2013년 자립경영 체제구축에 나선 상태다.

▲전남매일신문
1989년 6월 29일 창간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광주일보로 통폐합된 전남매일과는 무관하다. 사주 겸 발행인은 안광양(安光洋)이었으나 출발부터 삐걱거리다가 1991년 발행인 은인기, 사장 기대응, 편집국장 박형구 등으로 바뀌었다. 이후 발행인이 1997년 이연풍(건설업), 2000년 유동국 (유통업)으로 넘겨졌다가 경영을 포기함으로서 2005년 최영기 전무가 맡았다. 이후 언론인 김영용이 2006년 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6년 삼능건설(회장 이승기) 인수해 언론인 신용호 사장이 발행을 맡아오다 2012년 최영기 직무대행 체제로 개편되어 있다.

▲광주매일
1991년 1월 29일 광주지법에 법인설립등기를 마치고 11월 1일 창간하였다. 사주겸 대표이사 회장 고제철(高濟哲), 사장 김효중, 편집국장 김원욱 등이다. 그러나 금광이 2001년 고경주 사장시절 노조와의 갈등으로 경영에서 손을 뗌으로써 1년간의 휴간기간이 있었으며 2002년 사원주주 형태로 2002년 12월 복간했다. 이후 2006년 9월 남양건설(회장 마형렬)이 인수하면서 광주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복간당시의 지령은 5859호이며 발행인은 언론인 출신 김원욱을 거쳐 서영진사장으로 이어졌다.

▲광남일보
1995년 5월 22일 법인이 설립되어 그해 12월 12일 창간되었다. 가든백화점 이화성 회장이 발행인, 사장 신용호, 편집국장 정태열 등이 창간주역이다. 이후 1998년 제호를 호남신문으로 바꿨다가 2004년 다시 광남일보로 복원했다.
가든에서 신문을 경영할 당시 대표이사는 신용호, 윤선호, 전진한을 거쳐 1998년 공이송, 2003년 정태열, 2005년 박행환으로 이어졌으며 2008년 아시아미디어그룹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8년 김선남, 2008년 심재민, 2009년 박성태, 2009년 김진영, 2011년 이승범이 대표이사를 맡았으며 2012년 10월 삼일건설이 인수하면서 다시 김선남 대표이사가 복귀했다.
사옥은 쌍촌동에서 돌고개 구 삼능건설 빌딩으로 옮겼다.

▲남도일보
1998년 5월 10일 광주타임스로 창간했다. 경영진은 대지건설 회장 정윤삼, 사장 박성호 등이다. 이후 2005년 제호를 남도일보로 변경했으며 2006년 정윤삼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박성호 대표이사가 경영을 전담했다. 2000년 정치인 유준상이 회장을 맡았으며 2012년 1월 납골당 관련 사업을 하는 김상풍이 회장으로 새로 영입돼 박성호 대표이사와 공동 운영하는 형태다.
사옥은 광주천변 광주타임스 건물을 사용하다가 2009년 남구 방림동으로 옮겼으며 2011년 서구 쌍촌동 운천저수지 옆으로 이전했다
한편, 1950년대 남도일보(南都日報)가 잠깐 존재했으나 현재의 남도일보와는 무관하다.

▲전광일보
전남도에 등록된 유일의 일간지로 순천에 본사가 있다. 1997년 현재의 사주인 박양주가 김한태(대학강사)에게 경영권을 넘겼는데 김한태가 제호를 서남일보로 변경했다가 다시 전남도민일보로 변경하자 2005년 전광일보로 재등록 했다. 전광은 전남과 광주를 일컫는다. 보성에서 지역언론사 주재기자로 활동하던 박양주가 사주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시군에 지사가 있고 광주에 취재본부를 두고 있다.

▲호남매일
2000년 동서일보 출신 서정오(작고) 김준수(현 대표) 김병우(현 편집국장) 김한태 등이 창간했다. 초대사장 황하택, 부사장 김용대(지방 주재기자 출신) 등이었으며 이후 2001년 방송인 출신 구양술(2001년), 서울 삼원그룹 회장 김현재(2002년), 김한태(2004년), 구양술(2005년), 김준수(2011년) 등이 운영을 맡았다. 김준수 대표가 취임하고 나서 2012년 김현재 전사장이 회장으로 복귀했다. 김준수 대표는 건축업 종사자로 창간당시 감사로 시작해 전무를 거쳐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호남신문
광남일보가 호남신문이란 제호를 사용하다가 2004년 다시 광남일보로 제호를 변경한 뒤 전 호남일보 출신 김형철이 창간, 현재까지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편집국장은 대한일보 출신 강서원이 맡고 있다.

▲전남도민일보
전광일보 창업주 박양주로부터 신문을 넘겨 받은 김한태가 서남일보로 제호를 바꿨다가 다시 전남도민일보로 제호를 변경했다. 김한태 대표 당시 실질적 자본주는 보성출신의 이용권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 법인 변경을 통해 대주주인 이용권이 운영하고 있다.

▲조간호남일보
2000년 무등일보 업무국 출신 이현철이 호남일보라는 이름으로 창간했다 이후 박성렬을 거쳐 김덕천으로 넘겨졌다. 이현철이 제호사용금지 가처분신청에서 승소하게 되자 호남일보라는 제호를 사용하지 않고 2009년 조간호남일보로 변경했다. 2008년부터 회장 김용남, 고문 김덕천이 맡고 있으며 발행인은 무역업을 하는 장우인에서 2013년 최옥수로 바뀌었다.

▲광주타임즈
2008년 10월 17일 언론사 업무국 출신의 이자형이 창간했으며 경영난으로 우진종합건설 정신호 회장을 영입해 운영해 왔다. 그러나 우진종합건설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지원이 어려워지자 미지급 급여를 주식으로 전환해 사원주주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이자형이 맡고 있으며 편집국장은 전남매일출신 김미자다. 사옥은 중흥동에서 현재 광주-송정간 도로변 세정아울렛에서 김대중컨벤션센터쪽으로 가는 길에 있다.

▲남도투데이
2008년 목포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면서 호남일보 목포주재기자 출신인 박효장이 사주이며 부인인 오효순이 대표를 맡아왔다. 2011년 전남매일 출신 김덕선을 대표로 영입했으나 2013년 1월 사임하고 다시 오효순이 대표로 복귀했다. 현재 편집국장은 명 촉이다. 명 촉 국장은 호남매일, 도민일보, 희망일보, 대한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희망일보
나주지역 주재기자 출신 정호응이 2006년 중흥건설 한광선 전무를 사주로 영입, 일간호남일보로 출발했다가 2011년 10월 희망일보로 제호를 변경했다. 현재는 한광선 사주가 손을 떼고 희망일보로 재출범할 당시 편집국장으로 입사했던 호남일보 출신 엄절용이 발행인을 맡고 있다.
사옥은 쌍촌동에 있다가 2012년 12월 광주시 서구 옛 삼능건설 사옥 건너편 건물로 옮겼다.

▲일간광주신문
대표전화인 062-571-7600으로 전화한 결과 ‘고객님의 사정으로 통화할 수 없다’는 멘트가 나와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남도매일
2009년 담양에서 건설업을 하면서 전남도민일보 담양주재 기자 출신 송진연이 창간, 2~3개월 운영하다 전광일보 편집국장 이홍재에게 인계 했다. 이홍재는 무등일보 광고국 출신으로 전광일보 광주지사장을 지낸 양재삼을 영입,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이후 여행사를 운영하는 송동석에 인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지역기자들이 공동운영하는 형태이며 무등일보 출신 백형모가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광주전남아침신문 및 아침일보
전화번호가 062-381-5115로 등재되어 있으나 통화 결과 주식회사 라원이 지난해부터 이 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침일보는 연락처가 없다.
‘아침’이라는 제호를 사용하는 신문으로 주) 서남일보가 일간아침신문(발행인 박국태) 전남아침신문(발행인 이상균)을 2007년 11월 2일 동시에 등록하였다. 일간아침신문으로 등록된 062-224-8900은 신호는 가는데 통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간아침신문 박국태는 창간 당시 유류업 종사자로 확인되었다.

▲일간호남일보
현재의 희망일보 전신으로 2006년 창간되었다. 중흥건설 한광선 전무를 사주로 영입해 운영하다가 2011년 10월 희망일보로 제호를 변경해 일간호남일보는 발행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일보
고흥 출신의 NGO 활동가 송원종씨가 2005년 서울에 등록했다가 2010년 광주로 내려오면서 재등록했다. 2011년 3월까지 신문을 발행하다가 현재는 휴간중이다.

▲광주드림
빅마트 하상용 대표가 2004년 창간해서 타블로이드판으로 운영해오다 2007년 5월 사랑방신문(대표 조덕선)에 경영권을 이관했다. 이후 2010년 사랑방신문이 경영에서 손을 떼자 사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행인을 영입했다. 현재의 발행인은 의료인 송한수이며 광주광역시 관내와 인근 시군에 배부대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한편, 사랑방신문은 광주시 북구 중흥동 전남일보 사옥과 인쇄시설을 인수한 뒤 전남일보 인수설이 있었으나 아직 일간지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호남일보
2001년 무등일보 업무국 출신 이현철이 창간, 이후 박성렬 김덕천 등을 거쳤다. 김덕천은 이현철에 의해 호남일보 제호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자 조간호남일보라는 제호로 변경해 발행하고 있다. 호남일보는 현재 발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주시청의 일간지 등록현황에는 그대로 이현철이 발행인으로 되어 있다.

▲매일광주신문
연락처가 없으며 현재 발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광주전남아시아경제
광남일보가 새로운 법인으로 넘어갔던 2012년 10월 이승범 전 광남일보 사장이 ‘아시아경제’의 지역법인 형식의 광주전남아시아경제를 등록한 상태다. 현재 광주·전남·북지역 경제관련 뉴스를 제공하고 지역의 운영권을 맡았다. 광주전남아시아경제 측은 향후 현지 신문제작을 위한 전단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현재는 발행되지 않으나 동서일보가 1998년 12월 3일 창간돼 1년여간 발행되다가 폐간되었다. 방송인 김영용이 영광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조광실을 자본주로 영입했으나 3억원을 지원한 뒤 지원을 중단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고 김영용 발행인마저 교통사고로 6개월간이나 입원하면서 발행이 중단되었다. 초대편집국장은 나의갑이다.
김영용은 전남매일에서 물러난 뒤 2008년 광주시 호남동에서 호남도민일보를 창간, 1년 2개월간 운영했는데 현재는 폐간된 상태다.
대한일보는 2008년 4월 29일 충일건설 회장 박양건이 창간했다. 광주전남북과 충청도를 관할지역으로 하여 창간당시에는 32면까지 발행했다. 초대 발행인은 김 정(전 광주예총사무처장)이 맡았으며 박주관 정기상 등이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다. 사옥은 폐간된 2008년까지 계림동 구시청 사거리 로터리에 있었다. 충일건설은 현재 정우건설로 이름을 바꿨으며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형원 /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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