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록: 꿈과 사랑과 낭만이 깃들인 시적인 풍경
| 2011. 09.30(금) 14:08 |   |
이육록 또한 인상파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빛나는 태양광 아래 전개되는 아름다운 자연풍경 또는 도시풍경을 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마치 빛과 색채의 마술사처럼 환희가 넘치는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 어떤 풍경이든지 색채 및 빛의 광휘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그 풍경은 이미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감각을 탈피한 회화적인 환상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보면서 탓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미적 감각이 추출해낸 환상적인 이미지에 취할 따름이다. 그의 그림에는 감상자의 미적 감수성을 사로잡는 마약과 같은 흡인력이 있는 까닭이다.
그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다름 아닌 꿈과 사랑과 낭만과 서정이 깃들인 시적인 풍경이다. 어느 나라, 어느 곳의 풍경이든지 현실에 근거하면서도 실제와는 또 다른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느낀 감동을 표현하는 데는 재현적인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인상파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는 것도 보다 자유로운 감정표현이 용이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나친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의 과잉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실제의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을 풍요로운 색채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절대자가 주관하는 것이고, 그 자연미를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것은 그 자신의 권한이다. 자연을 그대로 번안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상 또는 조형적인 해석을 통해 실제와는 다른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감정이 고조되기를 기다린다. 추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지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조형적인 영감을 얻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적지 않은 부분이 추상적인 이미지인 것도 음악적인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음악을 듣게 되면 추상적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싶은 환각에 빠질 때가 있다. 유동하는 미묘한 색조의 변화 및 조화는 다름 아닌 추상적인 음악의 전개과정에서 비롯되는지 모른다.
특히 추상적인 공간에서 인물들이 춤추듯이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음악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적인 공간에서 울리는 음악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환할 때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설령 표제음악이라고 할 경우에도 음악은 여전히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의 그림에서 추상적인 이미지가 빈번한 것도 이에 연유한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이렇듯이 그의 풍경화는 고양된 미적 감정이 만들어낸 순수한 인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그 자신의 이상적인 세계관이 반영된다. 물론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임의적으로 조작된 가상의 풍경이 아니라 실재하는 풍경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재이면서도 실제와는 다른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용되고 있다. 실제의 풍경이면서도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단순화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의 표현감정을 중시한 결과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그의 풍경화는 음악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풍부한 미적 감수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작품은 이미 현실상과는 엄연히 다른 심상의 표출이다. 실제의 자연미에서 느끼는 미적 감흥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고, 그 자신만의 미적인 감각 또는 심미적인 이해를 통해 도달한 조형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다시 말해 어느 면에서는 실제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는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의 윤리성, 즉 미답의 조형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개별적인 조형언어가 필요하다. 그가 지향하는 조형세계 역시 자신만의 표현영역을 구축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보면 서정시를 연상하게 된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비록 단출하지만 거기에 은닉된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번잡한 형태를 모두 없애거나 생략함으로써 그 전체상을 압축한 최소한의 형상만을 남기고 있을 따름이다. 시적인 정서는 간결한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압축된 형상 이면에는 현실이 존재한다. 시적인 긴장과 간결함은 이처럼 실제의 이미지를 압축하거나 함축하는 데 기인한다.
너른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마리의 백마, 황량한 바닷가의 작은 배 한척, 화면 한 귀퉁이로 밀어낸 풍경, 안개 속에 잠긴 듯한 희미한 베니스 풍경, 구체적인 형태가 보이지 않는 반추상적인 풍경 등 모두가 한 수의 서정시를 읽는 기분이다. 그는 그림으로 시를 쓴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문학적인 감수성이 남다르다. 문자로 이해하는 시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시인 셈이다. 그렇다. 그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반추상적인 이미지 속에 내포시키고 요약함으로써 시적인 함축미를 산출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아련한 꿈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마치 현실 너머 어딘가 미지의 세계를 보는 듯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물안개 피어나는 낮은 강마을의 새벽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물상의 형태가 온전히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형태는 모호한 상태로 슬며시 드러나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답답하다거나 불친절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희미하게 처리되는 형상을 통해 꿈결과 같은 아름다운 감정에 젖어들 수 있다.
그의 색채이미지는 부드럽고 온화할뿐더러 나긋나긋하다. 이는 미묘한 중간색에 대한 특별한 감각의 소산이다. 형태를 선명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깊고 은은하게 펼쳐지는 색조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비현실성은 오히려 신비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보일 듯 말 듯 존재하는 형태미 그 안쪽에 존재하는 신비적인 이미지는 실제를 내포한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색채이미지는 추상적인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어떤 특정의 구체적인 형태를 지양하여 단지 미적 감흥에 의해 유도되는 풍부한 색채이미지는 환상 속으로 안내한다. 그의 색채이미지는 태양광에 대한 진정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넘치는 빛에 의해 용해된 색채는 다채로운 색채이미지로 변환하게 된다. 어쩌면 신비스러운 중간색조에 능숙한 것은 오묘한 빛의 작용에 대한 절묘한 감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빛과 색채의 이미지를 치중하는 가운데 형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남으로써 환상적인 공간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환상적인 공간은 닫힌 현실로부터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정신 및 감정의 유영을 체험케 한다. 아름다운 꿈과 달콤한 사랑, 낭만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그런 현실로부터의 일탈이라는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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