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원 : 초충도의 매력을 일깨워주는 문인화
| 2011. 09.30(금) 13:07 |   |
운곡 강장원은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다. 글씨를 쓰고 시를 짓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그림에 관한 한 도무지 막히는 데가 없다. 본령은 문인화가라고 해야 마땅하겠지만 수묵산수를 비롯하여 도석인물, 화조, 초충, 어해, 영모, 화훼, 절지 그리고 채색산수 등을 망라한다. 더구나 어느 화목 어떤 소재이든지 간에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도대체 미진한 분야가 없다. 동양화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화본을 곁들인 화집을 만든 일도 범상치 않으려니와 어느 화목이든지 그에 대한 이론 또한 정연하다.
이처럼 여러 방면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이론 그리고 그림에 대한 기술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다. 타고난 재능이 받쳐져야 될 일이다. 더불어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부단한 자기연마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화목을 섭렵해온 것은 경험의 폭을 넓히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한 일이었다고 보면 옳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자기 것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보여준 다채로운 화목 및 소재는 자기모색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궁극적으로 가야할 길이 문인화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 채색산수를 줄이는 대신에 수묵산수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수묵화 작가로서 반드시 공략해야 할 곳이 다름 아닌 문인화인 것을 생각하면, 이제껏 쌓아온 다양한 화목에 대한 체험은 그 굳건한 바탕이 되리라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높은 정신성의 구현도 중요하지만 그를 담을 수 있는 자유로운 손의 표현력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허황한 일이다. 적어도 묘사에 대한 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게 된 그로서는 이제 격조 높은 정신성이 들어와 살 수 있는, 그에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는 일에만 전념하면 된다. 화력으로나 연령적으로 문인화만으로도 거뜬히 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시기에 이른 셈이다.
그는 최근에 이와 같은 의지를 반영하듯 문인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수묵산수화와 선면화를 중심으로 한 문인화 전시회를 마련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문인화야말로 동양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회화적인 양식이면서 조형적인 면에서도 자유로운 형식미를 실현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조형적인 간결함 속에 실현되는 높은 예술성은 어쩌면 동양회화의 궁극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채색화가 예술성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자유로운 형식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문인화가 한결 그 폭이 넓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문인화에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그 표현의 자유로움 및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에 그리는 산수화도 문인화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단순히 사실적인 산수경을 재현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문인화적인 품격을 갖추고 있기에 그렇다. 실제의 재현보다는 심상의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이른 바 사의를 중심에 두려고 한다. 사의라는 것은 어쩌면 시적인 흥취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역시 문학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있다. 시를 짓는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적인 소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선면화에서 화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문학적인 이해 및 흥취는 그의 작업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선면화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문기는 조형적인 세련미를 돋보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기교를 뛰어넘는 조형적인 자유로움이 문학적인 정취와 교합함으로써 문기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가 중시하는 문인화의 정신성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문학적인 이해 및 깊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인 흥취가 그림 속에 녹아들게 됨으로써 거기에 정신성이 개재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시심이야말로 형태를 압축하고 집약하는 문인화의 정신과 일치한다. 한마디로 정신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심의, 또는 그 의경을 표현하는 시적인 이미지는 문인화의 결정적인 요건이다. 시심이 만들어내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표현은 전체를 함축하고 압축하는 문인화적인 이미지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 그는 산수화의 경우에도 세부보다는 그 전체를 보려한다.
그가 세필을 중심으로 한 묘사적인 화법을 지양하는 것은 구체적인 형태보다는 전체를 보려는데 기인한다. 다시 말해 세부적인 표현에 집착하다보면 그림으로서의 운치, 즉 여운을 놓치기 쉽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운은 시적인 정취와 상통한다. 따라서 세부에 대한 접근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전체, 또는 덩어리로 보려한다. 그러기에 전체적인 선이 굵고 힘차며 간결하다. 이는 역시 문인화로서의 함축미와 관련이 있다.
선면화에 대한 최근의 관심 및 열정은 문인화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을 시사한다. 최근의 선면화에서 주목할 점은 초충도로 압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문인화에서 초충도는 보편화된 화목의 하나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국에서는 흔치 않다. 그의 초충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꽃과 곤충은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선면화처럼 작은 그림에서는 초충이 화조보다 더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꽃과 곤충, 풀과 곤충은 공생의 관계에 있다. 이들처럼 자연스러운 조화의 관계가 달리 있을 수 있을까.
그는 곤충들을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에 비해 꽃이나 풀은 좀더 자유롭게 표현된다. 역시 문인화로서의 흥취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필선이 적합한 까닭이다. 형식미를 벗어나 문학적인 흥취가 빚어내는 격조와 자유로운 운필의 멋을 살려야만 한다. 그의 필선이 날렵하면서도 급박한 가운데서도 단아하며 절제가 따르는 것은 심상의 명확함과 무르익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여백의 긴장을 잃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화제가 지시하는 내용은 멋과 깊이 그리고 운치를 더해준다.
그의 초충도는 꽃이나 풀잎의 표현에서는 자유로운 운필을 허락하는 반면 곤충은 구체화시킨다. 이처럼 서로 다른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격식을 허무는 파격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적인 형태미와 자유로운 운필이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절묘한 상생 및 조화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시각적인 쾌감으로 작용한다. 이렇듯이 초충으로 일관하는 최근의 선면화는 시적인 흥취를 가지면서도 조형적인 격조를 얻는데 성공하고 있다. 새삼 초충의 절묘한 조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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