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함칼럼> 세시봉과 지실초당

2011. 12.13(화) 09:31

올해 우리 대중문화계는 ‘슈스케’ ‘나가수’를 비롯한 오디션 열풍과 세시봉의 화려한 부활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한 케이블 TV가 시작한 오디션 열풍은 노래, 춤, 연기, K팝으로 확대되어 또 한 차례의 거센 한류를 예고했다.

오디션 열풍이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라면 세시봉의 부활은 70,80세대들의 위로연(?) 같은 것이다. 세시봉(C'est Si Bong)은 우리나라 제1호 음악감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브 몽땅의 노래에서 유래한 '세시봉'은 '아주 멋지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멋진 결실을 만들어냈다..

세시봉이 서울 중구 서린동에 문을 연 것은 1953년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팝송 등을 들을 수 있는 명소였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대학생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당시 무명가수였던 조영남, 홍익대 캄보밴드의 리더이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강근식, 사회자 이상벽, KBS 전속가수였던 박상규, 장우 등이 이 프로에서 인기를 얻어 연예계로 진출했다.

이외에도 윤형주 장영기 이장희 송창식 신중현 어니언스 김세환 등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윤형주와 송창식은 1968년 이곳에서 만나 한국 최초의 통기타 듀엣 ‘트윈폴리오’를 결성했다. 세시봉은 1964년 무교동으로 옮겼다가 5년 뒤인 1969년 폐업했지만 미묘한 매력을 가진 청춘의 광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의 세시봉보다 훨씬 오래된 ‘원조 세시봉’이 담양에 있었다. 지실초당이다. 지실초당이란 지금의 담양군 남면 지실마을에 있던 초당을 가리킨다. 담양 창평 출신의 거문고 산조 명인이자 문화운동가인 박석기(1899∼1952) 선생이 이곳에 초당을 짓고 국악교육운동을 이끌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동경제국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법조계로 진출하지 않고 거문고 산조의 명인 백낙준 (白樂俊,1876∼1930)에게 거문고를 배우고 소리를 했던 한량이었다. 박석기는 자신이 배운 거문고 산조를 한갑득(韓甲得)에게 전수했고 한갑득은 훗날 한갑득류 거문고산조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박석기는 1938년 창평 지실마을에 지실초당을 짓고 전설적인 박동실(朴東實) 명창을 초청, 판소리 운동을 시작했다. ‘광주소리’의 산실인 셈이다. 한애순, 김소희, 한갑득, 한승호, 김옥주, 장월중선, 김동준, 박귀희 등 7~8명에게 숙식 제공하면서 이들을 뒷바라지 했다. 지금 전라도 소리꾼 대부분이 이들의 제자이거나 제자의 제자들이다. 그가 없었다면 광주와 담양 일대에 ‘광주소리’는 없었다.

그는 옥과 출신의 한애순(광주시지정 문화재)을 발굴, 훗날 조선창극단의 주인공으로 키웠다, 또 1938년 12월 ‘화랑창극단’을 창립, 광주극장에서 ‘춘향전’을 공연한 뒤 서울로 진출하여 ‘팔담춘몽, 망부석, 항우와 우미인’ 등을 무대에 올려 서울장안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박석기는 김소희 명창과의 사이에 딸 박윤초를 두었는데 그 딸이 국악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세시봉과 지실초당은 한국 메세나운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훨씬 이전에도 양반가나 부호들이 예술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후원하는 일도 있었지만 ‘조건 없는 후원’이란 의미에서는 메세나운동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메세나(Mecenat)라는 말은 로마제국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에서 유래했다. 그는 정치가였지만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등 문화예술가들을 지원했고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정치에 활용할 줄 알았던 멋쟁이었다.

밤마다 어려운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후원자를 주선하는 등 예술인들의 보호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메세나는 문화예술·스포츠 등에 대한 조건 없는 후원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현재는 사회적·인도적 입장에서 공익사업 등에 지원하는 기업들의 지원 활동을 총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뒤 각국의 기업인들이 메세나협의회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1994년 발족된 한국의 메세나 협의회의도 최초의 회장은 이 고장 출신 고 박성용 금호그룹회장이 맡았다. 그가 금호문화재단을 통해 길러낸 음악영재들이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그의 메세나 정신은 영원히 빛나고 있다.

‘문화는 돈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가 되기 위해서는 제 2의 세시봉, 제3의 지실초당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지형원 (문화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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