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祐含칼럼> 사라진 彫刻, 쓸쓸한 금남로

2023. 12.21(목) 15:54

금남로가 쓸쓸하다. 은행나무가 아직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성급히 달려온 겨울 때문에 을씨년스럽다. 몇 그루의 은행나무 잎은 녹색 그대로 이고 대부분은 아직 샛노랗다.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이라는 김현승 시인의 ‘견고한 고독’이 생각나는 가을과 겨울 사이.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오늘 비 오는 금남로에 서서 윤동주의 시를 떠올린다. 6.25 전쟁이 끝난 뒤 금남로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Y살롱과 오센집, 그리고 화신다방. 금남로와 충장로를 사이에 두고 많은 예술인이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나와서 세익스피어와 장 콕도를 얘기하며 노란 달걀이 떠있는 ‘모닝커피’를 마셨다.

1950년대 이후 70년대까지 금남로는 문화예술의 꽃이 활짝 핀 르네상스의 현장이었다. 50년대에는 김현승 시인과 소설가 박화성 선생이, 60, 70년대에도 봄비의 이수복, 박 흡 시인 등이 문학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화단에서는 의재 허백련, 오지호, 배동신, 양수아 선생. 서단에서는 근원 구철우 송곡 안규동 선생. 그리고 영화 ‘이름 없는 별들’을 만들
었던 최금동 선생, 방송계의 김포천 선생이 ‘살아 있는 조각’으로 금남로에 서 있었다.
1980년대 금남로는 자유와 민주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과 함성의 거리였고 90년대 이후 한동안은 큰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공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시끌벅적했던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를 맞으면서 ‘용서와 화해’라는 언어들을 눈물로 삼키며 새로운 희망을 떠올렸다.

금남로 거리에는 하나하나 고층건물이 들어섰다. 민주광장의 분수가 새로운 모습으로 물을 뿜어 올리자 ‘반신반의’ 하면서 나가보았던 금남로는 젊음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대형 빌딩 앞에는 대형조형물이 하나씩 세워졌다. 예술의 거리를 보듬고 있는 동구청에서는 작은 조각상을 공모하여 금남로 거리에 배치하였다. 그래서 제법 예술의 도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좁은 거리에 너무 많은 조각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자 중앙초등학교 담벼락으로 잠시 옮겼다가 산수동과 지산동의 작은 공원으로 재배치했다고 한다.

문제는 문예진흥법에 의해 설치된 조형물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예진흥법 제9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종류, 또는 규모 이상의 건물을 건축하려는 자(건축주)는 건축 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또 건축주는 예술작품에 대한 예술성과 가격 등에 대해 지자체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지자체는 해당 미술작품의 관리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금남로 2가의 옛 무등빌딩 앞 김행신의 ‘어둠을 걷어 올리는 여인’과 금남로 3가 LG증권 앞 김대길의 ‘성장’이란 두 작품이 사라지고 없다. 시민들은 ‘어둠을 걷어 올리는 여인’을 보면서 광주에 어둠이 아닌 빛이 떠오르기를 소망했고 ‘성장’을 보면서 광주의 발전된 미래를 상상했다.

무등빌딩을 인수한 SM 건설은 1층의 구조를 변경하면서 조각품을 구 동구청 회사의 주차장으로 옮겼고 LG증권 건물을 인수한 NH투자증권은 리모델링이 끝난 뒤 어디론가 슬그머니 옮겨버렸다. 이들 두 회사의 ‘탈법’도 괘씸한 일이지만 ‘정기적 점검’ 의무를 지고 있는 광주시청은 이 같은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는 오늘의 금남로는 그래서 참 쓸쓸하다.

지형원 <문화통 발행인>

지형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