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시집'순간의 여백'출간

삶의 여백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

2023. 03.24(금) 10:50

박영자 시인

잠잠하고 고요하다. 처음부터 잠잠하고 고요한 것이 아니다. 태풍과 비바람이 스쳐 지나간 뒤의 고요다. 마치 달그림자나 별들이 호수에 촘촘히 박혀 있는 듯하다. 무욕의 그림자, 그래서 만나는 사람과 만나는 자연의 속마음을 캐내어 전해준다.

최근 박영자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순간의 여백’을 출간했다. 시와문화간. 시인은 오래전 첫시집 ‘아름다운 인연’을 발간한 데 이어 5,6년 전 수필집 ‘순백의 향기’를 펴낸바 있다. 그때의 언어들도 ‘순백’ ‘여백’ ‘향기’ 같은 언어들이 책갈피를 꾸리고 있었지만 이번 시집은 더욱더 자신을 비워낸 뒤에나 찾을 수 있는 고독 너머의 아름다움이다.

박영자 시인은 너무 조용해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전설적인 메세나 운동가이자 피부과 의사였던 임춘평 선생의 미망인이라면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금남로 로맨티스트'로 불렸던 임춘평 선생이 몸소 예술을 즐기며 예술속에서 호탕하게 살다갔다면 박영자 시인은 그를 그림자처럼 바라보며 마음 속에 시심을 심어두고 조금씩 조금씩 꺼내 마시며 살아간다고나 할까?

이번 시집은 이른바 디카 시집이다. 스스로 시를 쓰고 사진을 찍어 매우 간결하고 쉬운 언어들로 읽은이들에게 부드러운 손짓으로 말을 건낸다. 군더더기 없는 시적 미학의 마음에 여유를 전해준다.

파란 물줄기 한곳에 모여/
편백 두레박 퍼올려도 퍼올려도/
마르지 않은 맑은 샘물/
하얀 낮달 쉬어가는 /
어머님의 품 속같은 안식처여라

‘옹달샘’ 전문이다. 박 시인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옹달샘을 통해 하얀 낮달이 쉬어가는 ‘어머니의 품속’이라고 말한다.

박영자 시집 \' 순간의 여백\'

저 배를 타고 어디로 갈까?

호롱불 그으름 코 끝에 번지고 /
신새벽 졸음 촛농처럼 내리면
어머니 한숨 담은 베북/
저 배를 타고 하늘로 갈까.

‘어머니의 베북’ 전문이다. 시인은 어린 시절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베를 차던 어머니를 짠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랄 것이다. 이제 그때의 어머니보다 더 많은 세월을 견뎌낸 또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문득 그리워지는 어머니를 추억하며 한 편의 시를 갈무리 했다.

박영자 시인은 영암출신으로 전남여고와 조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 수필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광주문협고문, 한국문협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서은 문병란 문학연구소 회원, 전남여고 문인회장, 광주5 ·18오케스트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아름다운 인연’ 수필집 ‘순백의 향기’를 낸 바 있다.

표지화는 서양화가 정송규 선생의 작품으로 옛적 어머니가 조각천을 모아 만든 상보(床褓)를 연상시킨다.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