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일 첫 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2022. 02.17(목) 16:00

조수일 시인

조수일 시인이 첫 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을 펴냈다. 시산맥 기획시선 80번째 시집이다.

시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20여 년 전부터 동서문학상 시부문 은상, 제1회송수권 문학상 등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땅의 시인들이 그녀의 출현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조수일은 나주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기독공보 신춘문예 시 부문 수상, 동서문학상 시 부문 은상, 항공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 제1회 송수권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7년 『열린시학』 등단으로 등단했다. 2022년 첫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시산맥시회, 나주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현재 일선 중학교 사서교사로 재직 중이다.
1부는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수막새의 미소’, 2부 ‘굿바이 슬픔’ ‘목련에 울다’ 3부 ‘싯담의 노래’ ‘여귀꽃’ ,4부는 ‘물방울 그녀’ ‘ 통곡의 벽 앞에서’ 각 14편씩 모두 56편의 작품을 실었다.

조수일 시인의 시들은 우선 가지런하다. 잘 정리되어 있고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요즘의 시인들은 너무 자기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독자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백’에 가까운 독백으로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그러나 조수일의 시들은 상당히 오랜 숙성을 거치고 언어의 조련사처럼 현대인들이 잃어버렸던 언어들의 먼지를 털어내 식탁에 올려놓은 듯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더러는 약간의 먼지 같은 것이 묻어 있기는 하지만 ‘쉰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더욱 그립고 정겨워지는 이유다.

어제의 시간을 모과의 오후라 부를래요
홀로 폭삭, 익어버렸으니까요

그림자를 벗어 놓고 떠나온 남녘의 어느 바닷가였어요. 간간히 드나드는 바람이 유일한 여행자. 쓸쓸히 낡아 갈 일만 남은 저물녘에 덧씌우는 당신의 방식을 힘껏 비켜 서고 싶었어요. 시야 밖. 홀로 영글어 오래 오래 매달린 가을볕의 샛노란 꿈이 나였으면.

타인의 시간으로 비행을 일삼는 나는 더는 꽃일 수 없는 야생일까요. 수직이 통증처럼 우르르 떨어지는 낙과가 당신일까요. 갈변이다가 파묻혀 벌레 슬어가는 최후일까 봐 훌쩍도 거렸어요. 높이 걸려 염탐을 일삼는 당신은 꿈의 꼭짓점. 끝내 발굴되지 않는 향기로운 꽃무덤이고 싶었던 나는 이유 없이 줄곧 어두워가는 그늘이었으므로. 암각이었으므로 그 점에 이어져 있었어요.
뚝뚝, 파발처럼 나를 선회하는 한 무리의 구름은 오랜 내일이니까요.
표제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전문이다.

‘갈변이다가 파묻혀 벌레 슬어가는 최후일까 봐 훌쩍도 거렸어요’ 라는 대목에서는 그만 목이 메인다. 갈변이란 과일에 상처가 생겨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일 터인데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비바람 때문이거나, 날짐승 때문이거나 아니면, 철 없이 던진 아이들이 장난 때문이거나..., 그러나 시인은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발견되지 않는 향기로운 꽃무덤이고 싶었다는 대목에서 착하디 착한 여인의 내면이 들여다 보인다. 크리스찬의 향기도 느껴진다.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