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祐含칼럼> 寶海,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
2018. 06.14(목) 13:33확대축소
보해(寶海)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조회사의 하나다. 전라도 사람치고 ‘잎새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이는 ‘소주예찬’에서 “저가 가진 열기를 낮추어 / 투명 잔에 실금 하나 그리고 있어도…티 없이 맑아서 좋더라.”고 노래했듯이 막걸리와 함께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는 서민의 술이다.

보해양조를 창업했던 고 임광행 회장(1919~ 2002)은 ‘보해’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그가 사는 목포 앞바다가 ‘보배로운 바다’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좀 더 크게 말하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3면의 바다가 풍요의 물결이 되어 서민들의 배고픔을 씻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생산한 소주가 보해였고 회사의 이름이 되었다.

3.4년 전에 나왔다가 생산이 중단된 ‘아홉시 반’이란 17.5도의 저도수 소주가 있었다. 시계에서 아홉시 반을 표시해놓으면 사람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이다. 겸손과 감사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 이름 속에는 이른바 ‘속엣말’을 하고 살자는 의미도 있다. 아홉시 반쯤이면 돌아갈 사람들은 가고 그래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남아서 ‘가슴속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라는 뜻의 철학적 의미도 들어 있다.

보해 창업자인 임회장은 우리나라 주류업계 1세대로 장인정신과 올바른 기업정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목포상업전수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잡화상회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이후 주류도매상을 하다가 1950년 목포양조장을 인수해 양조업계에 뛰어들었다. 1968년 극심한 가뭄으로 술 소비가 줄어 한때 부도의 위기가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보해장학회를 만들고 소년소녀가장돕기 등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했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은 부도의 위기에 있었던 70년 초의 이야기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전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영원히 묻혀 버릴 것 같은 조급함도 있다.

임회장에게는 목포 오거리 어디쯤에서 실비집을 하던 죽마고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내 친구 임광행’을 자랑하는 재미로 살았다. 그에게 임회장은 생존의 이유였고 임회장은 그에게 따스한 스폰지(?) 같은 사람이었다. 실비집 주인은 보해가 어려움에 처하자 평생을 모은 저금통장을 건넸다. 서민들이 푼돈으로 허기를 메우는 실비집 수익이 얼마나 될까마는 임회장은 고군분투하여 부도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동안 만나지 못하게 된다. 임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정신없이 살아야 했을 것이고 실비집 사장은 그런 임회장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기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참의 세월이 흘러도 임회장이 오지 않자 ‘너 죽고 나죽자’를 결심한 것이다. 사냥용 총을 들고 임회장 사무실로 달려갔다. 아니 쳐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총소리 대신 두 사람의 통곡소리가 들렸고 통통 부은 얼굴로 손을 잡고 사무실을 걸어 나왔다

임회장은 그를 잊고 지냈다는 자책감으로 용서를 빌었고 그는 친구가 자기를 버린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한 십경을 그렇게 통곡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세상 떠날 때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다. 어디 이런 우정이 두 사람 뿐 일까마는 사람의 냄새가 나서 참 좋다.

갑자기 ‘보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쓸쓸히 퇴장하는 지자체장들 때문이다. 출마 당시 세상을 바꿔놓을 것 같이 이야기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은 석고대죄할 일이다. 그럼에도 선거용 출판기념회를 열고 ‘사절(謝絶)’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주머니를 닫지 않은 ‘짜잔한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필부(匹夫)로 살았던 실비집 주인과 도가(稻家)의 회장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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