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센집의 추억- 오센집을 아십니까?

10일~23일까지 예술의 거리 은암미술관
'삼바가라쓰' 양수아 배동신 강용운 추억

2017. 11.14(화) 10:50

50,60년대 지역 예술인들이 술마시며 뜨겁게 예술논쟁하던 실비집
강용운 배동신 양수아 등 ‘삼바가라쓰’가 모여 ‘빨간마후라’ 불러
문화통 2017년 봄호 특집자료 제공… 은암미술관 재개관 기획전


1950년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 광주지역 미술인, 특히 비구상 미술인들의 아지트였던 오센집과 ‘삼바가라쓰(3마리의 까마귀)’라 불리던 양수아 배동신 강용은을 추억하는 전시회가 열려 광주화단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오세집의 추억전’ (11월 10일~23일 광주 은암미술관)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 전시회에는 양수아 배동신 강용운 선생의 작품과 함께 아카이빙 자료들이 함께 선보여,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잊고 지냈던 이야기들을 꺼내주었다.
이번 전시회는 인터넷신문 문화통(발행인 지형원)이 발간하는 문화통 plus 2017년 봄호 특집기사 ‘오센집을 아십니까?'를 근거로 은암미술관(관장 채종기)이 수개월여 준비를 거쳐 공개했다, 특히 이 전시는 2층에 있던 은암미술관의 주 전시관을 1층으로 옮기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끝낸 뒤 가진 재개관전이라는 점에서 전시내용과 기획과 전시장 모두가 화제가 되었다.
오센집은 오씨(吳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던 실비집이었다. 전일빌딩 후문 건너편에 있는 지금의 ‘봉구스 밥버거’ 자리에 있었다, 이곳은 주로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공무국 직원들이 일을 끝낸 뒤 잠깐씩 들러 목을 축이던 곳이다. 가끔 편집국 기자들도 들렀지만, 기자들은 어쩌다 들르는 곳이고 주로 공무국 직원들이 석간(12시 발행)작업과 내일 자(字) 일부 간지를 끝내고 납을 씻어내기 위해 돼지고기 안주에 막걸리를 들이키던 곳이다.
저녁시간 이후에는 주로 예술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비구상 미술인들이 가장 많았다. 거의 날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양수아 (1920~1972)였고 배동신(1920~2008) 강용운(1921~2006)이었다. 양수아 배동신은 동갑이고 강용운이 한 살 아래였지만 ‘잘 싸우는 친구’였다.

3마리 까치라고 하여 ‘삼바가라스’라 불려

이들 세 사람을 가리켜 ‘삼바가라스’라고 불렀다. 3마리의 까치라는 뜻인데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양수아는 저순도의 경성 사과주를 좋아했고 배동신은 맥주를 좋아했고 강용운 소주파였다. 술이 거나해지면 노래 가락이 흘러나오는데 맨 처음은 늘 양수아가 ‘빨간마후라’를 시작했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 빨간 마후라를 목에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마라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양수아가 3절로 된 이 노래를 시작하면 배동신과 강용운이 3절까지 따라 불렀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부르는 일종의 ‘오센집의 노래’였다. 양수아가 별세했을 때 미술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는데 그날 장송곡이 바로 ‘빨간 마후라’였다.
실비집 주인 오센은 매우 속이 좋은 사람이다. 항상 졸고 있는 듯한 얼굴이지만 그 까탈스런 람들의 주정(?)을 한마디 불평 없이 들어주었던 따스한 사람이었다는 것.
양수아가 좋아하는 경성 사과주는 주로 김종일 최종섭 박상섭 등이 공급(?) 했다. 전남일보 문화부장이던 임병성, 서양화가 장지환 김용복 우제길, 김종일 명창준 등이 드나들었고 강연균도 가끔 들러 술값을 내고 가곤 했다. 당시 술값을 가장 잘 낸 사람은 마음씨 좋은 박상섭이었다.

강연균 화백과 최종기 관장이 전시회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1차는 오센집, 2차는 감나무집 3차는 장동 ‘도깨비 대학’

전일빌딩 부근에는 오센집 말고 또 하나 술집이 있었는데 바로 구 동구청 뒷골목의 영흥식당 부근의 ‘감나무집’이었다. 오센집에서는 주로 막걸리를 팔았고 감나무집에서는 맥주를 팔았다. 집에서 술이 거나해지면 감나무집에 들러 맥주 한잔 더 마시고 가는 곳이 금남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던 강용운의 집이었다. 강용운의 집은 장동 55번지로 지금의 장동로터리 연합빌딩 옆에 있는 일본식집이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술꾼들이 강용운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예술적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이 들이 닥치는 날은 장동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도깨비 대학’이다. 새벽까지 떠들면 뭔가 토론하는 것이 마치 대학 강의실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1965년~1972년까지가 전성기

일본 유학파인 양수아 강용운, 배동신 등 이른바 ‘삼바가라쓰’가 오센집을 중심으로 예술적 격정을 쏟아낸 시기는 대략 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라고 할 수 있다. 양수아는 일본유학을 마치고 목포사범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56년 광주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58년 제2회 현대작가미술 초대전(조선일보), 66년 개인전, 71년 첫 서울전 (국립공보관화랑)을 가졌다. 이후 다시 광주와 여수에서 개인전을 한차례씩을 갖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 세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오센집을 열심히 드나들던 시기는 50년대 후반에서 1972년까지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한국의 화단은 잘 다듬어진 그림을 배격하면서 강렬한 추상주의와 기하학적 추상주의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 초 축소주의 및 대중예술과 함께 하는 단색화법으로 이어졌다.
그는 비구상의 거리로 뛰쳐나와 고독한 예술의 뒤안길을 걸어갔다. 때문에 그는 생전에 단 한 번의 영화로운 예술의 활화산을 피우지는 못했다. 한국전쟁기간 동안인 1951년에는 지리산에 입산, 빨치산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성격이 매우 내향적이었으며 현실을 거부하고 규격을 싫어했으며 자유인이었다.

배동신은 이 무렵 진도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광주로 올라왔다. 진도에서 올라온 뒤 얼마 안 돼 일본인 아내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귀국하는 바람에 세상에 홀로 남은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마사에가 떠나버린 뒤 배동신은 그야말로 좌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사에에 대한 연민과 등에서 칭얼대던 어린 딸, 두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를 더욱 절망과 나락으로 내몰았다. 그럴 때마다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동전을 넣고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짱, 마짱”와타나베 마사에를 부르는 소리는 처절했다.
배동신은 제자였던 김영규와 신혼살림을 차리고 광주여고 옆 2층집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그의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의 개인전이나 단체전 참여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50년대의 기록은 거의 없고 68년 ‘수채화창작가회 창립전 초대회장’ 황토회 창립전 참가(1970년), 구상전 추대회원(1972년) 등이 전부다.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73년 서울신문회관에서 20회 전시회를 가졌고 그 이듬해 일본 동경 미술가 화랑(9월)과 오사카 한국화랑 개인전, 그리고 1976년 서울 회화랑에서 제 23회 개인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게 된다.
배동신은 최근 수채화 작품 ‘소녀상’이 세계적인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eBay)에서 150만 달러(약 17억원)에 낙찰돼 이목을 끌었다.

1959~1960년 강용운-오지호 비구상미술논쟁 유명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강용운(1921~2006)은 동경제국미술학교에 유학, 4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1947년 전남여고 교사로 부임한다. 이후 추상미술의 외로운 길을 걷다가 목포에서 양수아를 만나 추상회화의 화우를 얻게 된다.
1949년 광주사범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긴 뒤 이듬해 광주 미국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57년과 1958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 초대전’에 잇달아 출품하면서 중앙화단과 교류했다. 1960년대 초 한국예총 전남지부 1,2대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의 ‘오리진’ 부산의 ‘혁’과 함께 3대 한국 비구상미술 그룹의 하나로 꼽히는 에뽀끄 (1965년)가 발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59~1960년 강용운이 오지호와의 전남일보(현 광주일보)에 40여회에 걸친 ‘구상-비구상논쟁’은 전남현대미술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로 기록되고 있다. 오지호의 ‘비구상미술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맞서 벌인 이 지역 최초의 미술논쟁이었다.
한편 이 지역 비구상 미술의 텃밭이 되었던 에뽀끄가 창립된 것은 1964년 2월 광주 YMCA 2층 강당에서 열린 박상섭 최종섭 명창준 비구상 3인의 전시회가 계기가 되었다. 오지호-강용운의 비구상 논쟁이 있은 데다 전남도전에서의 비구상 미술 푸대접 등으로 의기소침한 상태였는데 비구상 3인전이 열리자 비구상 미술운동의 구심체로서 에뽀끄 창립을 결의했다.

그러니까 오센집은 1959년 강용운-오지호 논쟁을 계기로 비구상 미술인들이 결집하는 장소로 자리를 잡게 되며 에뽀끄 창립을 계기로 그 세력이 크게 확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이른바 ‘삼바가라쓰’가 주로 출입했던 이곳에 에뽀끄 멤버들이 드나들었던 1965~1972년까지가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오센집은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날마다 만났던 한 사람이 너무 쉽게 떠나버린 뒤의 공허함, 인생무상 같은 것들이 이집을 드나들던 모두에게 엄습했을 것이다.
“양수아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은 서울전이 생각 밖으로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언론인 위증선생은 “양수아 선생이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달리 서울전에 많은 애착을 가졌는데 실패하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오센집과 Y살롱은 광주의 문화중심지

한편, 양수아 선생과 막역한 사이였던 위증 선생은 양수아의 서울전을 위해 시화전을 열었다. 기관장과 기업인들이 양수아 선생을 돕기 위해 한 점씩 사주는 바람에 솔더아웃이 되었고 부인 곽옥남 여사에게 전달돼 대망의 서울미문화원에서 서울전을 갖게 된 것.
그러나 서울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서울의 김종일 화실에 칩거하면서 얼마간 술로 세월을 보냈다. 하는 수 없이 곽남옥 여사가 서울로 올라가 함께 광주로 내려왔는데 이후 여수 전시회를 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위증 선생은 지금도 그날의 모습이 선명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떠나버린 뒤 오센집은 물론 광주가 참으로 쓸쓸해졌다고 회고했다. 마치 전쟁 막 끝난 것처럼 교교해졌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 오센집은 흔적도 없고 마음씨 좋은 오센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해 불행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오센집은 60,70년대 광주 Y살롱과 함께 광주문화의 중심이자 진정한 에술살롱 이었던 것이다.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