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여행

“이 연주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될 것입니다.”

2016. 01.27(수) 15:56

박승유

베토벤과 그의 교향곡 이야기를 꺼내자면 큰 무게감과 숭고함,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감히 어떤 말부터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하여 비엔나 무직페어라인의 11월호 카탈로그에 실린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의 음악전문 기자 엘레오노레 뷔닝의 글을 빌리고자 한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당연히 한 개의 교향곡 이상의 의미다. 그것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 선언, 아이디어의 산, 예술적 종교의 유토피아, 유언, 서약, 사물을 비추는 스크린, 국가의 기념물, 삶의 조력자와 같다”

지난 11월 10일부터 14일까지 베를린 필하모닉과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비엔나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투어를 마쳤다. 10월 12일~16일까지는 베를린 디지털 콘서트홀에서, 11월 3일~7일까지는 파리 필하모닉 홀에서, 비엔나 투어 이후에는 17일~21일까지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총 4번의 연주를 가졌다.

카라얀과 아바도가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로 있을 당시, 레전드 급 연주로 베토벤 전곡을 해낸 이력이 있었고, 베토벤을 좋아하는 전 세계 음악팬들의 기대가 사이먼 래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이먼 래틀의 해석이 어떻고, 어떤 연주를 했던 간에, 5일 연속으로 하는 연주를 한번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다른 나라로 이동하며 한 달 동안 20일을 연주해야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단한 일이고, 베토벤이라는 큰 산에 올라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업적인 것은 분명하다.

샤이먼 래틀

비엔나에서는 베를린 필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러 온 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연주 투어가 래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로서 주는 마지막 선물(올해 6월에 키릴 페트렌코가 그의 후임으로 선정되었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베토벤의 교향곡이 비엔나에서 작곡되고 초연되었기에 비엔나에서 하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주변 이야기 1 - 오케스트라의 연주 여행
단체가 움직이는 일이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 여행 또한 만만치 않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필자의 오케스트라 연주 여행 경험에 의하면 연주가 거듭될수록 피로감에 눌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런 점을 배려하여 베를린 필은 연주를 돌아가면서 할 수 있도록 많은 인원이 함께 왔다. 연주가 먼저 끝난 단원들은 미리 다음 도시로 출발하기도 했고, 악장과 수석들도 연주를 분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오케스트라 외에 큰 악기들의 운반이나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 무대 진행, 전문 사진사까지 스태프들도 같이 와서 베를린 필에 완전히 녹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오케스트라가 행여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새라 최대한 음악에 맞춰서 촬영을 하거나 숨죽여 이동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에서 세계 일류 악단의 세심한 프로정신을 보게 되었다.

주변 이야기 2 - 유명 인사들의 참석
오스트리아의 수상 하인츠 피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무직페어라인의 감독 토마스 안간과 빈 국립오페라 극장의 극장장 도미니크 메이어 등도 참석하여 역사적인 밤을 함께 했다.

주변 이야기 3 - 파리 테러 참사
파리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나온 다음 날인 14일, 사이먼 래틀은 9번 교향곡을 하기위한 마지막 리허설 무대에 무거운 표정으로 올랐다. 끔찍한 일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하며 묵념을 제안했다. 연주회에도 마찬가지로 극장장이 무대에 올라와 "이 연주는 폭력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될 것입니다. 전에는 없었던 것처럼 더 강렬하게, 더 아름답게, 더 헌신적으로 음악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번스타인의 말을 인용했고, 사이먼 래틀도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베토벤의 뜻을 전하며 연주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전 인류에게, 전 세계에게, 모든 국가에게, 지극히 개인에게도 시공간을 넘어 모든 순간을 위한 것인 듯한 베토벤의 메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는 맥락의 앞서 언급한 엘레오노레 뷔닝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극한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을 비엔나서 전하며...

박승유/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첼로) / 빈 국립음대 지휘과 학사 졸업/현, 빈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 과정 (오케스트라 지휘, 합창 지휘, 오페라 코치) / 빈 한인 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

박승유 통신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