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작가 김보현 1주기 추모전

23일~2월 24일까지 광주신세계갤러리

2015. 01.19(월) 13:57

김보현 작 '새와 놀다'

신세계갤러리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동양의 정신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재미 1세대 회화 작가인 故 김보현(1917-2014)의 1주기 추모전을 개최한다.

신세계갤러리 본점 (2014.12.3-2015.1.20) 전시에 이어 광주신세계갤러리(1.23-2.24)에서 전시회를 갖고 이후 센텀시티(2.26-3.30), 신세계갤러리 인천점(4.1-4.27) 전시로 이어진다.

지난해 2월 98세로 작고한 김보현은 1955년 미국으로 이주, 추상표현주의에 서예적 기법과 정신을 접목시킨 추상회화 및 낙원을 형상화한 구상회화로 명성을 얻는다. Po Kim으로 더 널리 알려진 그를 기리기 위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미술계 내외 저명인사들이 모여 추도식을 가질 정도로 김보현의 작품 세계는 그 위상과 독자성을 인정 받아왔다.

김보현의 작업은 그의 굴곡 많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보현이 보현寶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것은 그의 화업 60년에서 고작 1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후 1946년 귀국하여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김보현은 해방 후의 혼란기에 좌익혐의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역설적이게도 6.25 발발 후 인민군 치하에서는 친미반동 혐의로 시달렸다. 좌우익 모두로부터 정신적, 신체적 고초를 겪은 김보현은 1955년 일리노이 대학 교환 교수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40년간 한국은 물론, 한국 미술계와 철저히 단절한 채 포 킴Po Ki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김보현의 60년대 추상표현주의는 당대 유행하던 미국적 추상표현주의와 구분되는 독자성으로 현지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클라인Yves Klein 또는 일련의 액션페인터들이 “무의식”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스처나 우연적 효과에 집중한 반면, 김보현은 서예의 획을 긋듯 사색과 집중에서 비롯된 의식적인 붓질로 화면을 구성했다.

신세계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70년대 정밀화와 8-90년대 대표작을 비롯하여 작고하기 2년전 제작된 대작 등 30여 점이다. 70년대 고도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정밀묘사화는 추상화인 전작들과의 연계성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60년대 말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한국과의 철저한 단절 속에 70년대에 그려나간 정밀묘사화는 심리적 수행의 과정으로 보인다. “본질을 방해하는 것을 비워내고 대상만을 남겨 초월적 진실을 추구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목적론적 측면에서 그의 정밀묘사는 전작인 사색적 추상회화와 궤를 같이 한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그의 정밀회화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된 수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김보현 작 '그 후'

80년대 후반부터는 대작 유화들을 이어갔다. 이 새로운 시리즈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역동적 필치와 사실적 구상성이 한 화면에 섞여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김보현이 청년시절 고통스럽게 겪어낸 악몽의 반대편에 있는 이상향, 즉 낙원의 파노라마를 엿보게 된다. 이 시리즈의 주된 도상은 극락 같은 즐거움의 동산에서 여러 동물, 새들과 더불어 서로 뛰놀고 있거나 어울려서 쉬고 있는 누드 인물상들이다. 이 일상에서 분리된 꿈같은 낙원은 완전히 형이상학적인 세계의 것 만은 아니다. 자신의 아틀리에에 동식물이 가득한 자연을 꾸며놓고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김보현은 2014년 98세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작품 <새로운 생>은 그의 최후의 대작이다. 평생 피안彼岸의 세계를 응시해 온 김보현은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르러서 외려 화면에서 관념의 세계를 걷어낸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50여년 전 작업들보다도 더 힘이 넘치는 듯 보이는 신체의 제스처이다. 96세의 노구를 휠체어에 의지한 채 거대한 캔버스를 호방하게 메운 그의 붓질은 “온 몸으로 그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작가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다. 신세계갤러리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아 자신의 신체와 생명력을 캔버스에 오롯이 남겨 놓은 작가를 마주해 보기 바란다.

전시 기간 중 매주 토요일(1/24, 1/31, 2/7, 2/14, 2/21) 오전 11시 겨울방학을 맞이한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아트클래스> ‘알록 달록 새해 소망상자’가 진행된다. 김보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작품 속 자주 등장하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담은 상자 안에 2015년 각자의 소망을 담아갈 수 있는 미술수업이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회당 선착순 10명, 예약자에 한해 무료로 진행된다.

문의 062-360-1271


박원지 기자 mhtong@hanmail.net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